부탄 여행기 1 -부탄 행복의 비밀을 느끼다.

어느 날 페이스북에서 약간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부탄이 어떻게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됐는지 궁금하다. 가볼까?” 제안했다.

부탄도 가보고 싶었지만, 일본에 살고 있는 젊은 벗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었다. 깊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즉시 “저요~!” 손을 들었고, 손 든 사람들끼리 바로 카톡방을 만들었다.

들어가 보니 대부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일상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어서 준비과정에 참여하지 못했다. 딱 한마디 “나도 간다.” 고 던지고, 잊어버렸다.

모두 비행기 표를 끊은 상황에서야 부탄 여행이 결정됐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약간 더 비싼 돈을 내고 비행기 표를 끊었다.

누구랑 함께 가는지도 모르고, 추진하는 사람만 모두를 아는 상태였다. 김해공항에서 만나 보니 12명 중 3명은 아는 사람이다. 아는 사람 세 명도 아이쿱생협, 생명평화결사 회의에서 서너 번 만난 정도였다.

일본에 사는 친구에 대한 호기심과 부탄에 가고 싶은 마음으로 합류했는데, 사람들은 약간 의아해 했다.

모르는 사람들이랑 그렇게도 여행을 가는 경우는 처음 봤다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7월 초는 순천에 일이 많았다.

신경 써야할 일이 너무 많아서 누군가에게 여행 기회를 넘기려 했다. 그러나 이미 불가능한 시점이었다. 그래서 모든 걸 뒤로하고 떠났다. 사람들은 “너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어쩌면 더 잘 돌아갈지도 모른다.”며 잊어버리고 가자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홀가분해졌다.

막상 출발을 하자, 이 여행은 큰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점에 만일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나는 얼마나 고단했을까?
 

▲ 잘 모르던 사람들은 금방 친해졌다.

부탄 수교 30주년 기념

올해는 우리나라와 부탄 수교 30주년이라 6-8월, 3개월간 할인혜택이 주어졌다. 곳곳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났다. 김해공항에서 사람들을 만나 방콕과 인도를 경유해 부탄으로 갔다.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24시간을 비행기와 공항을 오가며 별 일 없이 보냈지만 집을 떠나 어딘가로 떠나는 것만으로도 그동안 하지 못한 여러 가지 생각이 흐르게 했다.
 

▲ 세계에서 제일 규모가 작고 착륙하기 어렵다는 부탄 파로공항. 승객이 적으니 짐 찾는 것도 금방이다.


지구에서 가장 작은 공항이라고 알려진 부탄파로공항은 사람이 많지 않아 짐을 찾아 이동하기 수월했다. 마중 나온 가이드 푼쵸는 비단 같은 하얀 천을 목에 둘러 주었다. 환영의 의미라고 했다. 천의 마무리를 어설프게 해서 나중에 다시 쓸 수 없게 생겼다. 그래도 환영의 의식을 해 주는 것이 재미있었다. 파로공항에서 1시간 동안 차를 타고 수도인 팀푸에 갔다.
 

▲ 우리의 가이드인 푼쵸씨가 환영의 인사로 하얀 머플러를 둘러준다. 몽골의 하닥과 동일하다.

초록이 가득한 풍경, 미소

부탄은 20개 지역으로 나뉘어 있고, 그중 파로와 팀푸 지역이 제일 크다. 각 구역district 마다 종(dzong)이 있고 그 안에 행정부와 중심사찰이 있다. 20세기에 들어와 중앙집권적 왕권이 강화되어 현재까지 5명의 왕이 계승하고 있다. 국민의 행복지수 개념을 만들어내고 왕이 스스로 권력을 버리고 의회를 만들었다. 현재의 국왕은 평민과 결혼하여 Dzong에서 나와 소박한 집에서 살고 있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정치의 목적

현지 가이드 푼쵸에게 “너희 나라 국왕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스마트한 지도자로 뽑혔다."하니 깜짝 놀랐다. 늦었지만 내셔널 메모리얼 초르텐과 타시쵸종에 갔다.
 

▲ 마니차가 줄지어 있다. 사람들은 시계방향으로 마니차를 돌리며 한 바퀴 돈다. 이런 의식을‘코라’라고 한다.
▲ 타시쵸종에 들어가기 위해 잠시 기다리는 동안 가이드 푼쵸씨가 이렇게 멎진 포즈를…남자의 치마 복장을‘고’라 하고 공공기관에 갈 때는 이렇게 하얀천을 두르는데 이것을‘갑니’라 한다. 일반사람과 승려, 공무원 등 신분에 따라 갑니의 색이 다르다.

타시쵸 종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전통적인 기법으로 만들었는데 전통가옥은 설계도가 없고 못을 쓰지 않는단다. 설계도도 없이 못도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 그런 엄청난 규모의 건물을 지었는지 도대체 상상이 안됐다.

종에서 일하던 공무원이 다 퇴근한 다음에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곳곳을 구경하고 절을 했다. 오래된 사원에서 저절로 정성을 다해 절을 했다. 그냥 그렇게 됐다. 왜 그랬는지 뭐라고 말할 수가 없이 경건해졌다. 해발 2300m의 도시, 둘러보면 아름답지 않은 곳이 한 곳도 없었다.

초록이 가득한 풍경과 전통가옥들이 주는 편안함과 사람들의 평안한 미소, 우리는 저절로 물들어 비슷한 사람이 됐다.
 

부탄 헌법 국토의 70% 이상 녹지로 보호

부탄 행복의 비밀을 한마디로 말하면 ‘정치’라고 말할 수 있겠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가의 효율적 운영이나 경제적 이익보다 ‘시민의 행복’을 우선하여 결정하는 정치 덕이다. 행복을 느끼는 사람의 숫자로 행복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행복하지 않은 사람을 행복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부탄 헌법에는 국토의 70% 이상을 녹지로 보호해야 한다는 명문이 있다. 건물을 지을 때 전통가옥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덕분에 부탄에서는 언제, 어디로 눈을 돌려도 히말라야 인근의 자연과 어우러져 평화로운 아름다움이 있다. 농사철에 바쁜 농민들이 외국인 광광객의 짐을 나르는 포터 역할을 힘들어 하자, “우리는 달러를 버는 사람보다, 농사를 짓는 농민이 더 소중하다.” 며 법적으로 부탄 국민들이 짐을 옮기는 일은 더 이상 못하도록 금했다. 부탄은 그런 나라였다. 부탄 행복의 비밀은 여행 첫날부터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첫날이었다. 새로운 경험 하나는 부탄의 드룩에어를 타니 기내식을 줬다. 승무원은 생선을 먹을지?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을거냐 묻지 않았고, 채식이냐 아니냐를 물었다. 국민 대부분이 불교도인 나라다웠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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