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언론협동조합 분투기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박근혜의 당선은 순천시민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을 절망시키기에 충분했다. 5년 동안 굴속에 들어가 있고 싶다거나 이민을 가고 싶다고 했다. 그 절망의 무게는 뭔가 다른 숨 쉴 통로를 만들어야 했다.

당시 순천은 10년 넘도록 운영한 지역신문이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동네 돌아가는 사정을 몰라 답답했다. 평소 있던 것이 사라져 적응이 안 된 사람들은 신문을 다시 만들자고 했다.

가는 곳마다 그 이야기가 나오니 자연스럽게 몇 사람이 모였다. 지역신문을 만들 수 있는지, 만든다면 어떻게 만들지? 매주 만나 3개월 동안 놀았다. 그러다 정이 든 사람들은 협동조합으로 신문을 만들어 보자고 했다. 언론사를 한 번도 경영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몰라서 저지른 일이었다.

▲ 2013년 5월 농업환경 분과회의와 4호 편집회의 중, 김계수 전이사장님이 잡아온 닭을 먹고 있다.

곳곳에서 나타난 무림의 고수들

2013년 4월 5일 발행한 첫 신문에는 제작과 발송과정까지 76명의 조합원이 참여했다. 숨 쉴 통로가 필요했던 사람들이 점점 더 나타났다. 곳곳에 숨어있던 무림의 고수들 같았다. 그 만남과 인연은 모두에게 특별했다.

애쓴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협동조합으로 신문을 만드는 일이 즐겁고 가슴 벅찬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합원들이 또 다른 조직에서 중책을 맡게 됐다. 신문을 만들 동력은 점점 떨어졌다. 동력은 떨어졌지만, 조직의 규모가 커지자 직원을 4명으로 늘리고 매주 발행을 시작됐다. 대부분의 업무는 직원들 몫이 되었다. 당시 상임이사를 겸하던 이종관 편집국장은 과중한 업무를 호소했다.

▲ 2014 지역신문컨퍼런스 부대전시회 참가

과중한 업무

조합 업무를 담당할 상임이사를 선임하고 조금 나아지는 듯 했다. 그러나 최저임금 정도의 임금으로 시간외 근무를 하는 것이 비일비재한 신문사 특성상 신입기자와 조합 관리 직원은 쉽게 그만 뒀다. 이종관 편집국장과 박유경 편집기자, 2명이 신문 만드는 일을 도맡아야 하는 일이 반복됐다. 게다가 조합원들의 요구는 현실여건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뉴스타파나 오마이 뉴스와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나 120명이 근무하는 언론사와 비교하는 일은 서로를 피곤하게 했다. 결국 초창기부터 일했던 이종관 편집국장이 더 이상 못하겠다고 두 손을 들었다. 그 어려움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헤아려 보지 못하고, 또 다른 편집국장을 찾는 것으로 해답을 찾았다. 

그 후 1년이 넘도록 편집국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가 지쳐갈 때 누군가 한 사람을 추천했다. 애타게 찾던 또 다른 구원투수, 편집국장이 바뀌고 분위기가 바뀌었다. 기자와 총무 등 직원을 다시 채용하고 의욕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지향과 결이 달랐던 편집국장은 신문 두 번을 내고 그만두고 말았다.

지역신문 쉬운 일이 아니네~

우리가 신문을 시작한 5년째 되는 해, 이대로 협동조합 언론은 불가능하다는 전례를 남길 수 있음을 직감했다. 시민들의 힘으로 언론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합원 토론회를 했다. 저마다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방식의 토론회였다. 모두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했다. 무엇하나 결론을 낼 수 없는 고민들이었다. 인터넷신문으로 하자, 조합원을 정보의 생산자로 만들어야 한다, 시민기자의 참여를 늘리자, 조합원들이 친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전하자,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 지난 7월 19일 조합원 토론회 장면


그중 당장 세 가지를 실행하기로 했다. 열린 편집위원회를 구성하고, 조합원 소통을 위한 공간 이전, 관공서 출입 기자단을 만들자는 의견이었다. 평소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이 서둘렀다. 자천, 타천으로 12명의 편집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성질 급한 사람의 요청으로 바로 다음날 만났다.
 

▲ 지난 7월 21일 열린 편집위원회

예측 못한 변수

7월 21일(금) 저녁 7시 열린 편집위원회가 시작되었다. 문수현, 이정우, 박유경, 김학수, 이성훈, 김현주, 서은하, 임숙영, 이충현, 박경숙이 참여했다. 시간관계상 참여하지 못한 임경환, 김준희 조합원은 다시 만나기로 했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질서가 없었다. 우리가 바라는 지역신문은 무엇인가, 우리가 바라는 신문에 적절했던 기사는 무엇인가, 조합원이 정보의 생산자가 되도록 독려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전체 지면을 어떤 종류의 기사로 구성할 것인가, 각자 만들어 낼 수 있는 지면은 무엇인가 등의 이야기였다. 이야기 말미에는 신기하게도 다음호 신문 내용이 정리되고, 향후 논의가 필요한 내용이 열거됐다.

두 시간의 회의를 마치고 이어진 술자리에서도 심각한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먼저 이야기를 꺼낸 문수현 편집위원은 “어서 빨리 편집국장을 선임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개인적 열정에 기대는 것은 언제든 변할 수 있고 조합원은 노후화 돼 있어 누군가 책임질 사람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막걸리 잔에 기댄 한숨 섞인 말에, 몇 사람이 동시에 “아니~~그게 아니라~”며 말문을 열었다. 

1초 사이로 한 사람이 주도권을 가져갔다. “우리는 협동조합 신문으로서의 시도나 실험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는 주장이었다. “유능한 편집국장이 있었고, 다른 사람은 별 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신문이 나왔다. 조합원은 편하게 신문을 받아봤지만 몇 사람이 참여해 만든 신문은 별로 재미가 없었고, 급기야 참여는 더욱 떨어졌다. 그 상황을 재연할 수 없다”는 외침이었다. 

“개인적 열정에 기대고 있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우려는, 뜻이 맞는 조합원들이 팀으로 움직여서 극복하자.”고 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말의 주도권을 놓쳐 아쉬웠던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맞어. 나도 저 이야기 하려고 했어.”

우리에게는 그동안 팀으로 움직일 때, 혼자서 상상하지 못한 일을 만들어 낸 기억이 있다. 분위기가 바뀔 조짐이 보이자 서은하 이사가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우리의 토론과 회의 과정을 기록하자.” 실험과 시도, 모퉁이 길에 있는 순천언론협동조합의 현재를 기록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국내 최초 협동조합 지역신문을 시도했고, 어떻게 역사에 남을지 온전히 경험해 보지 못했다.

협동조합 언론이 어떤 정형을 만들 때 성공하는지 제대로 경험해 보자는 제안은 우리를 다시 들뜨게 했다.

다음날은 토요일, 조합원들 사이에 현장 취재를 통해 배우는 모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음 주 이사회가 있고, 생활글 쓰기 모임이 있다.

그 다음날 독서모임이 있고, 금요일 저녁 7시에 열린 편집위원회가 열린다. 매일 매일 또 다른 생각과 실천이 이어지고 있다.
 

▲ ‘새벽 걷기’소모임


지금의 과정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우리가 성공할지 실패할지 누구도 점칠 수 없다. 다만 이 과정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협동조합이 가진 변수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기에, 예측 못할 다양함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실패해도 괜찮다. 우리는 다만 모든 일 속에서 배우고 있다. 그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 사회 귀한 자산이 될 것이다.
 

▲ 2017 순천언론협동조합 정기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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