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대/화-14

 
다섯 살 된 우리 아들이 가끔 삐지면 말을 안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말도 안 하고 밥도 안 먹고, 그냥 누워만 있습니다. 저는 아들이 그럴 때마다 답답해서 죽을 지경입니다. 그래서 제발 말 좀 하라고, 그래야 니가 원하는 걸 알 수 있다고 달래도 보고 야단도 쳐봤습니다.

야단을 치고 나서 후회가 되었습니다. 야단을 친다고 아들이 말을 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더 움츠러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들이 침묵을 하면 저는 달리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바이런 케이티 상담을 하는 선생님께 잠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전화로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선생 : ‘아들은 자기 생각을 바로 얘기해야 한다’라고 생각하시는군요?

용창 : 그렇죠.

선생 : 그걸 반대말로 만들어 보실래요?

용창 : ‘아들은 자기 생각을 바로 얘기하지 않아도 된다.’ 음... 더 나아간다면, ‘아들은 침묵할 권리가 있다.’ 오, 써놓고 보니 멋진데요.

선생 : 그래요. 어떤 점이 멋진 것 같나요?

용창 : 저는 제 생각을 바로 바로 표현하는 게 아주 쉽거든요. 그리고 그게 소통을 위한 최선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겐 자기 생각을 바로 정리해서 표현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지요. 저는 저한테 익숙하고, 제가 잘하는 방식을 아들에게 강요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방식이 최선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말이죠. 어떤 사람에게 침묵이야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최선의 방식일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제 방식을 아들에게 강요하다보니 오히려 저 자신의 욕구-아들과 소통하는 욕구-는 충족시키지 못했던 것 같아요.

선생 : 예, 멋집니다. 축하합니다. ‘나는 아들의 방식으로 아들과 소통해야 한다’라는 반대말은 어떻게 들리세요?

용창 : ‘나는 아들의 방식으로 아들과 소통해야 한다.’ 그렇죠. 이것도 진실에 가깝네요. 아들을 인격체로 존중한다면 아들의 방식도 존중해야죠. 고맙습니다. 많이 정리가 되었어요.

이런 대화를 한 이후 글을 쓰는 지금까지 아들에게 야단을 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 동안에도 아들이 침묵한 경우는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들은 침묵할 권리가 있다’, ‘나는 아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대화할 필요가 있다’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덕분에 아들은 금세 수다쟁이로 돌아왔습니다. ‘진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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