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때마다 노동현장을 찾는 신선식 선생님

▲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와 함께 (앞 줄 왼쪽에서 세번째 신선식 선생님)


방학을 앞둔 7월이면 ‘여름 투쟁사업장 성금 모금’ 문자가 온다. 세상에 아무 걱정할 것 없는 부부교사인 순천여자중학교 교사 신선식 씨의 문자다. 무더운 여름날, 어김없이 아픔을 겪고 있는 현장의 땡볕을 찾아다니는 그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 언제부터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을 찾아다니게 됐나?
아마 2012년 1월에  시작한 것 같다.

▶ 푹 쉬고 싶은 여름방학에 굳이 무더운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을 다니는 이유는?
2011년 말 ‘전태일  노동대학’을  졸업했다. 사이버 노동대학이다. 3년 동안 ‘노동착취 없는 인간해방, 평등세상은 가능한가’ 고민했다. 전태일 노동대학을 졸업하면서 타락해 가는 자본주의의 실태를 현실에서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배낭을 메고 ‘선식이의 세상 구경’에  나서게 되었다.

▶ 그동안 다녔던 곳은?
처음에는 비정규직 사업장, 소규모 사업장, 장기투쟁사업장, 농성 중인 사업장 중심으로 다녔다. 가장 힘든 곳을 가자는 생각이었다. 수많은 청소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노동자들을 만났다. 추운 겨울에 천막에서 칼잠을 자는 노동자들을 보았다. 공공기관에서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들을 만났다. 첫 해에 다녀와서 모금을 시작하고, 추석과 설날 성금을 보냈다. 방학 때 방문할 때는 직접 성금을 전달했다. 주변의 많은 분들이 마음을 모아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진중공업 85크레인에 올라간 김진숙 노동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희망버스가 조직되었고, 유성, 생탁, 밀양, 쌍용차 등 수많은 희망버스를 탔다. 희망버스는 투쟁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하나의 희망이었다.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뜻있는 개인들이 모여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연대의 새로운 형태가 만들어졌다.

▶ 누구와 이런 기획을 하나?
주로 같이 활동을 하는 전교조 선생님들과 의논을 했다. 제가 일 저지르면 다른 분들이 함께 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 그동안의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첫해에 만난 광주 서구청 청소노동자들이었다. 서구청 소속이었다가 민간 위탁되면서 해고되었다. 대형차들이 지나가면 바닥이 흔들리는 인도에서 천막 농성을 하고 있었다. 저녁에는 귀마개를 하고 잤다. ‘해고는 살인이다’고 쓴 하얀 상복을 입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60세가 넘은 그분들의 말씀이 아직도 귀를 울린다. “늙어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려니 쉽지가 않다. 학교에서 노동조합에 대해서 좀 가르쳐 달라. 유럽에서는 초등학교부터 노동조합을 가르친다.” 다행히 일정을 마친 얼마 후 복직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 순천시민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2012년에는 쌍용차 해고자의 죽음을 막아 보자고 국민은행 앞에서 1년 가까이 분향소를 운영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은행 앞에서 현수막을 들었다.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아픔을 남의 일로 생각하지 말고 관심을 갖자는 것이다. 우리가 남의 아픔을 모른 척 하면 남들도 나의 아픔을 모른 척 할 것이다. 그러면 힘없는 사람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진다. 힘없는 사람들의 유일한 희망은 함께 연대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