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전어는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 가을 전어의 맛을 약간의 과장을 곁들여 재미있게 표현한 말이다. 그렇다면 남도의 봄을 비슷한 형식으로 표현하면? ‘남도의 봄은 집나갔다 돌아온 며느리도 다시 나가게 한다.’ 뭐, 이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봄이 시작되어 온 천지가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되기 시작한 요즈음의 남도는 정말 맘 다잡고 돌아온 며느리를 다시 집밖으로 나돌게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아름답다. 순천 금둔사와 선암사의 홍매화를 시작으로 구례 산동계곡의 노란 산수유꽃, 광양 다압의 하얀 매화꽃, 섬진강 변과 쌍계사 가는 길의 연분홍 벚꽃, 그리고 조만간 온 산을 선홍빛 붉은 색으로 물들게 할 보성과 장흥의 철쭉꽃까지, 진정 남도의 봄은 집 나갔다 돌아온 며느리는 물론 목석같은 남정네의 잠들어 있던 감정까지 살랑살랑 건드려 깨워 한시도 집에 머물러 있지 못하게 할 만큼 그렇게 아름답다.

철따라 아름다움과 민초들 이야기 숨겨진 순천만
정말 이 맘 때에는 남도민이라면 누구나 남도에 사는 행복감을 충만하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던가? 이 꽃나무들이 펼치는 아름다운 세상은 그리 길지 못하다는 아쉬움이 있다. 더군다나 제 때를 지난 이들 꽃나무들의 초라한 뒷모습은 아름다움은커녕 도리어 허무함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남도의 짧은 봄을 찬란하게 장식하는 꽃들이 만들어 내는 세상처럼 화려하지는 못할지라도 순천에는 사시사철 언제가도 제 나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멋진 장소가 있다. 바로 순천만이다. 지난해의 묵은 갈대들 사이로 이제 막 파릇파릇 싹을 틔우며 부쩍부쩍 자라나는 갈대들의 성장은 새 생명 탄생의 숭고함을 느끼게 하며, 둥글게 원을 만들며 마치 자신들의 세력을 뽐내듯 위풍당당한 성장한 갈대들의 군락은 커다란 S라인 물길과 함께 풍만한 건강미를 자랑한다. 갈대들이 서서히 노란 옷으로 갈아입고 하얀 깃털을 사방으로 흩뿌릴 때쯤에는 가는 청춘을 화려하게 장식하려는 듯 칠면초 같은 염생식물들이 순천만 갯벌을 빨갛게 물들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차가운 바람과 함께 하얀 눈이 순천만에 수북이 내릴 때쯤에는 눈 쌓인 하얀 갯벌과 새파란 물길 그리고 누렇게 변색한 갈대 군락의 조화가 그대로 한편의 장엄한 그림을 만든다.
이처럼 순천만은 사시사철 제 나름의 아름다움으로 이제는 전국적인 명소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는 그 아름다움의 가치를 인정하여 국가 지정 문화재 명승 41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지역민으로서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순천만이지만 조금만 눈길을 돌리면 순천만 곳곳에는 그 순천만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주민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과 그 생생한 흔적들이 널브러져 있다. 어디 주민들의 삶의 모습뿐이겠는가?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이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옛 민초들의 이야기가 이제는 때로 역사가 되어, 때로 전설이 되어 순천만을 더욱 아름답고 풍요롭게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순천만의 아름다운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 속살까지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무릇 순천만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순천만 곳곳을 둘러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순천만은 그렇게 하기에 매우 적합한 길을 가지고 있다. 바로 순천만길이다.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에 버금가는 순천만길
세상에는 아름다운 길이 참 많이 있다. 그 중 제주도의 올레길은 맑고 푸른 바다와 오름이 잘 어울린 아름다운 길이며, 지리산 둘레길은 지리산 기슭을 따라 산과 나무와 들판과 작은 오솔길들이 어울린 아름다운 길이다. 하지만 순천만길은 순천만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순천만과 어울려 살고 있는 우리 민초들의 삶의 모습과 마을 이야기, 그리고 많은 역사와 전설과 함께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오직 순천만길 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엄주일
순천효천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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