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해
사랑어린학교 교장

우리들의 길벗 H 선생님께.
비님 오신 뒤 하늘은 참으로 맑고 밝습니다. 한여름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덥다고 아우성이지만 아무래도 여름은 더워야 제맛이지요. 우리 학교는 에어컨이 없어요. 교실에는 선풍기도 없답니다. 그래도 불평하지 않고 그저 신나게 지내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 이 친구들은 분명 B612같은 별나라에서 내려온 게 틀림없어요.

우리 학교는 며칠 뒤 천일기도 회향(廻向)을 한답니다. 우리는 천일 동안 마음모아 기도를 드렸어요. 함께 천일기도를 드리는 일은 이번이 두 번째랍니다.

사람이 기도한다는 것 별 일은 아니지만 요즈음은 이상한 일처럼 되어버렸어요. 나는 잊을 수 없어요. 어린 시절 새벽녘 내 머리맡에서 기도 드리는 엄마의 모습을… 사람은 말이에요, 어쩌면 두 손 모아 기도 드리는 그 순간 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전까지는 아직 엄마 품에 안긴 갓난아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어린학생들이 촛불 앞에서 고사리같은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숭고함이 느껴지기도 한답니다.

우리 학교가 천일기도를 드리게 된 것은 여러 사연이 있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 앞에 우리는 속수무책(束手無策)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면서부터예요. 그래서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늘이여, 우리를 도우소서.’라고 하늘을 우러러 간절히 기도밖에 할 수 없었어요. 그럼에도 날마다 기도 드린다는 것이 결코 쉬운 몸짓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함께 기도를 한다는 것은 산넘어 산이었어요. 우리가 그 모양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고, 그러면서도 앞장 서서 새로운 일을 도모하려는 우리의 무지(無知)한 모습을 여실하게 보게 하신 큰 손길에 고마울 따름이지요. 진실로 "내가 무엇을 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만 더욱 더 분명해집니다. 그러니 안심합시다.

선생님.
우리는 천일기도를 드리는 동안 ‘새로운 교육, 새로운 학교’에 대한 질문을 하며 깊은 사유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가 좀 더 나은 삶을 살려면 진정한 교육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 올바른 교육은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가? 더 성숙한 단계로 넘어가려면 기존의 가치관과 구조를 바꾸어야 하는데 우리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한 두려움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우리 아이들이 슬기롭고 총명하게 꽃필 수 있는 학교는 어떤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가야 하는가? 이와 같은 일을 수행하려면 절대적인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덕분에 선물-그 질문의 답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 몇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군요.

첫 번째는 가슴이 바탕이 되고 가슴이 중심 되어 살라는 말입니다. 그동안은 머리가 우리네 삶을 이끌며 가슴을 무시하면서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는 가슴이 머리를 이끌며 가슴과 머리가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 때가 왔다는 거지요.

다른 하나는 모든 일에 우리 뒤에 오는 사람들(아이들)을 앞세우고 그들이 주인공이 되도록 우리는 그뒤를 따르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답을 제시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말고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며 저마다 스스로 길을 가도록 우리는 뒤에서 도우라는 말이에요. 참으로 중요한 가치의 변화요 앞뒤가 완전히 뒤바뀌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내가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기보다는 하늘이 맡긴 일-주어진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일을 내가 한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그 일이 그 사람의 선한 에너지를 빼앗아가고 나날이 삶이 피폐해지는 반면에 하늘이 맡긴 일을 하는 사람은 힘들지만 그 일이 그 사람을 풍성하고 성숙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모든 사람들 특히 교육현장에 계신 선생님들이 하늘이 맡긴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또 다른 선물은 만나서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늘이 그 기회를 주실 거라 믿어요.
이번 주 금요일(21일)에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교육 새로운 학교’를 세우는 그 일에 함께 하실 교장선생님과 촌장 어른을 학생들이 직접 제비뽑기로 뽑는 신명나는 잔치가 펼쳐진답니다. 우리 함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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