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글쓰기 독자 투고

유월 이십삼일 아침, 오랜만에 동네 산 한 바퀴를 돌았다. 아침에 맞이하는 산은 상쾌하다. 청솔모가 나무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먹이를 찾느라 바쁘다. 산길 옆으로 하얗게 핀 개망초가 뒤척거린다. 어쩌다가 마주친 산딸기는 거무튀튀한 빛깔이어서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지나쳤다.

한 시간에 걸쳐 산길을 걸으니 배가 고팠다. 마침 빨갛게 익은 산딸기가 눈에 들어온다. 이번에는 때깔이 좋아 보였다. 배가 고프던 차에 잘됐다 싶어 허겁지겁 따 먹으면서 ‘아니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다니는데 왜 산딸기를 안 따 먹었지?’ 그런 생각을 하다 ‘아뿔싸!’ 5분 전에 본 현수막이 떠올랐다.

- 이곳은 소나무재선충병 지상 방제 실시지역입니다. 방제시간에 출입을 삼가시기 바랍니다 -

순천시 산림소득과에 방제 일정을 물어보기 위해 전화번호를 핸드폰에 입력해 놓았다. 그래놓고 산딸기를 아무렇지 않게 따 먹은 것이다. 고라니도 농약을 친 고구마순은 안 먹는다는데, 사람의 욕심이 지나치면 판단력이 흐려지는구나 싶다.
 

▲ 지난번에 산에 갔을 때 초등학생들이 친구들끼리 놀러 왔었는데, 산딸기를 따 먹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되었다. 그 초등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산딸기를 따 먹지 말라는 문구를 넣도록 건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도 산딸기 사건의 여파로 인해 이런저런 생각이 스멀거렸다. ‘내 욕심이 지나쳐 실수한 일이 뭐가 있을까.’ 또 ‘지난번에 산에 갔을 때 초등학생들이 친구들끼리 놀러 왔었는데, 산딸기를 따 먹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되었다. 그 초등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산딸기를 따 먹지 말라는 문구를 넣도록 건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딸기 사건이 일어난 지 며칠 후 점심밥을 먹는데 난데없이 파리 한 마리가 들어와 윙윙 소리를 내며 밥상 위를 날아다닌다. 반찬 중에 잘 삭혀서 말린 가오리찜에서 나는 냄새가 꾀리 하다. 그 냄새가 파리를 유혹했나 보다. 파리가 반찬에 얼씬도 못 하도록 왼손을 바삐 휘저으며 밥을 다 먹었다. 앙상하게 남은 가오리 뼈 위에 파리가 앉아서 음미하고 있다. 이때다 싶어 옆에 있던 신문지 뭉치를 잽싸게 들어 파리를 향해 내리쳤다. 파리가 죽었는지 주변을 살펴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산딸기를 정신없이 따먹던 나와 반찬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파리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그 순간 파리를 잡고 싶은 마음에서 어느덧 파리를 살리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어 버렸다.

조금 있으니 반찬 통 뚜껑에 파리가 미련을 못 버리고 붙어 있다. 바깥으로 보내 주려고 반찬 통을 집어 들었는데도 날아가지 않는다. 행여 자기를 살리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알아챈 걸까. 파리가 날아갈세라 반찬 통을 베란다까지 조심히 들고 가서 방충망을 열고, 날려 보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예전에 읽었던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조안 엘리자베스 록/민들레)라는 책이 생각났다. 차례를 펼치니 4단원의 ‘윙윙거리는 나의 신이시여’라는 소제목이 눈에 띈다.
 

▲  ‘아니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다니는데 왜 산딸기를 안 따 먹었지?’

 하나인 세상을 굳이 좋은 종과 나쁜 종으로 나누고 나쁜 종을 악착같이 제거하려는 우리의 시도는 우리의 생명을 지탱해주는 거미줄처럼 얽힌 관계들을 파괴하고 있다. 한 생물에 대한 선전포고는 우리 자신에 대한 선전포고다. 마찬가지로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을 돕기를 거부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고 지구의 생명 전체를 감소시키는 행위다. (- 108쪽 -)
                                                                        
그동안 파리는 병균을 옮기는 곤충이라는 생각을 주로 했다. 사람은 오물과 쓰레기를 만들면서 그 오물이나 쓰레기를 처리하는 파리를 혐오한다. 파리를 미워하는 마음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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