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은 남도의 명산으로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는 불교문화의 중심이며, 순천사람의 주요한 삶의 터전이다.
순천시 송광면 출신인 김배선 씨는 약 15년 동안 조계산과 그 주변 마을을 누비면서 주민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한 자료를 토대로,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이 책 주요 내용 중 일부를 김배선 씨의 동의를 받아 순천광장신문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연재한다. 편집국


 

김배선 사학자

옛날하고도 머~언 옛날 순천 송광사의 해우소는 어찌나 높(깊)던지 인근뿐만 아니라 멀리 중국까지도 소문이 났을 정도였고 비슷하게 구례 화엄사의 가마솥도 엄청나게 커서 밥을 한 번 지으려면 쌀 씻는 공양주들 수십 명이 있어야 할 정도로 크다는 소문이 온 나라에 자자했다고 한다. 

어느 날 구례 화엄사의 허풍이 좀 심한 스님 한 분이 송광사의 해우소 얘기를 듣고 궁금하여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궁금증을 풀어 버리기로 작정하고 마침 여름 해제 기간이 된 지라 직접 송광사를 찾아가 확인하기로 하였다.

이 무렵 송광사의 스님 한 분도 화엄사의 가마솥 얘기를 듣고 화엄사 스님과 마찬가지로 잡념이 일자 화엄사에 한 번 다녀오기로 마음을 굳혔다. 역시 송광사의 스님도 허풍에는 일가견이 있었던가 보더라! 그런데 두 스님이 출발한 날짜가 공교롭게도 같은 날 같은 시에 출발하게 되었다.
 

▲ 송광사 해우소

이른 새벽에 출발한 두 스님은 각각 상대방의 뒷간과 가마솥을 상상하면서 열심히 걸었다. 화엄사 스님은 “송광사 뒷간이 깊다지만 깊으면 얼마나 깊겠어? 우리 가마솥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되겠지.” 이렇게 생각을 했고 송광사 스님 역시 “화엄사 가마솥이 크면 얼마나 크려고 송광사 해우소를 보면 기절을 할 거야!” 이렇게 중얼거리며 땀방울이 맺히도록 열심히 걸었다.
얼마쯤 갔을까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스님을 동시에 발견하고 가까이 가서 합장하여 인사를 나누고 나서 마침 다리도 아픈지라 잠깐 쉬어갈 양으로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나란히 앉았다.

“스님께서는 어느 절에서 오시는 길입니까?

네 화엄사에서 여름 정진을 마치고 만행에 나서는 길인데 송광사 뒷간이 하도 깊다기에 둘러보러 가는 길입니다. 스님께서는 어디로 가는 길이십니까?”

“송광사에서 오는 길인데 화엄사 가마솥을 구경하러 가는 길입니다”

두 스님은 속으로 옳다구나! 한 번 시험해 봐야지 하고 송광사 스님이 먼저 물었다.

“마침 잘 되었습니다. 화엄사 가마솥이 얼마나 큰지 말씀 좀 해 주시지요?”

화엄사 스님이 대답했다 “제가 새벽에 떠나 올 때 공양주 수십 명이 쌀을 씻고 있었는데 아마 지금 반쯤이나 채웠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얼마나 놀라는지 슬쩍 눈치를 보았으나 무심하기가 그지없는지라 오히려 속으로 놀라면서 과연 수행이 보통이 아니구나 생각하고 물었다.

“송광사 뒷간은 얼마나 깊은지요?” 송광사 스님은 잠깐 머뭇머뭇하고 나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뭐 깊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새벽 출발하기 전에 해우소를 다녀왔는데 아마 지금 중간쯤이나 내려가고 있을 것입니다.”

화엄사 스님은 그만 입을 다물지 못하고 돌아서고 말았다는 전설이다.

 

민재 화장터 이야기

민재 다비장 터

“민 재”는 송광사 주차장이 있는 외 송 마을의 건너편 골짜기로 해서 산척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150미터쯤 올라간 편백 숲이 있는 곳에 송광사의 화장터(다비장)가 있다.

어쩌다 화장이라도 있는 날이면 뭉글뭉글 타오르는 검은 연기가 “용을 그렸네! 꽃을 그렸네! 혹은 새가 되어 날아갔네!” 하면서 수군거리곤 하였으며 아랫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공동묘지 등과 같이 무서운 장소로 곧잘 비유하는 곳이기도 하다.

평촌 마을 사랑방 이야기에 이런 것이 있다.

“밤도 깊어가는 산간의 초겨울 어느 날 사랑방에 모여 놀던 젊은이들 사이에 용기(배짱)에 관한 자랑이 무르익어 그중 유난히 호기 부리기를 좋아하는 젊은이를 나머지 사람들이 부추기기 시작했다.

“너 공동묘지에 가서 엊그제 쓴 묘에 홀랑 벗고 절하고 올 수 있어?”

“물론이지!”

“정말, 내기할까?” “그래 좋다. 꼬리 내리면 알~지?”

용기백배 달려드니 여러 사람이 슬그머니 물러서더니

이번에는 누군가가 집터 골 “순×가 목메 단 나무에 머리 풀고 올라가서 가지 하나 꺾어 올 수 있어?”

“그까짓 것 누워서 떡 먹기지 말은 필요 없고 내기만 붙어 줘 어~”

역시 뒷말을 흐리고 말았다.

다시 한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너 민재 화장터에 가서 00 스님 화장 자리에 말뚝 박고 올 수 있어?”

“두말 많고 내기만 붙어 주라 그랬지 않아!”

“좋아 그럼 무슨 내기를 할까?”

이리하여 지는 쪽에서 막걸리 한 말과 안주를 사기로 하고 젊은이는 말뚝 하나를 들고 민재(화장터)를 향해 도포를 휘날리며 빠른 걸음으로 뛰는 것처럼 걷기 시작했다. 화장터까지 1Km가 훨씬 넘는 거리다. 날씨는 싸늘한데 젊은이를 보내놓고 혹시나 하여 서너 사람이 멀찌감치서 뒤따라가기로 했다.

화장터에 도착한 젊은이는 묵직한 돌 하나를 집어 들더니 말뚝을 박기 시작했다. 툭 툭 툭 그리고는 그만이었다.

멀찍이 숨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기다리던 사람들은 돌아올 시간이 넘었는데도 아무 소리가 없자 서서히 불안한 생각이 들며 겁이 나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살금살금 다가가 보니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젊은이가 기절해 있지 않은가?

“말뚝을 박을 때까지만 해도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살펴보니, 이게 웬일인가? 자기 도포 자락 위에다 말뚝을 박아놓고 급하게 돌아서려다 끌려 넘어져 기절한 것이다. 모두가 어처구니가 없어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젊은이를 교대로 둘러업고 내려오니 도중에 정신을 차렸다.

사랑방에 도착한 사람들은 시치미를 뚝 떼고 귀신이 뭐라 하드냐고 물으니 젊은이가 하는 말인즉, “허연 귀신이 다짜고짜 목덜미를 잡아 당겨 땅바닥에 처박는 바람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나?”

내기에 진 젊은이는 막걸리를 사고 그 이후로도 언제까지나 민재화장터 귀신 이야기만 나오면 꼬리를 감추었다.”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