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의 전설

조계산은 남도의 명산으로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는 불교문화의 중심이며, 순천사람의 주요한 삶의 터전이다. 
순천시 송광면 출신인 김배선 씨는 약 15년 동안 조계산과 그 주변 마을을 누비면서 주민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한 자료를 토대로,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이 책 주요 내용 중 일부를 김배선 씨의 동의를 받아 순천광장신문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연재한다. 편집국


 

김배선 사학자

송광사의 한자어는 ‘松廣寺’이다. 송광사에서 16 국사가 배출된 사실과 연결지어 송광사의 ‘ 松’자를 十八公으로 파자하여 18 국사가 배출될 것이므로 앞으로 국사 두 분이 더 탄생하신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파자(해자)에 대해 글 잘하는 사람(글쟁이)의 심심풀이이거나 예언하는 사람들의 필요에 따른 해석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물론 국사라는 제도가 없어진 요즘에야 웃고 넘길 수 있겠으나 예전에는 제법 심각한 예언으로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렸을 것이 틀림없다.

반면 송광면의 한자는 松光面으로 송광사에 의해서 이름 붙여진 송광면의 ”광“자가 ”廣“에서 ”光“으로 바뀐 것이다. 일제강점기(1912~1914) 우리나라의 행정구역을 통폐합하고 명칭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순수 우리말 이름을 다른 뜻의 한자어로 조합하거나 한자어 우리말 호칭을 실제와 다른 뜻(동음이의어)의 한자를 올리거나 이름을 확정하기가 모호한 곳은 임의로 붙인 탓에 실제와 다른 수많은 이름이 탄생하였다.

송광사 터를 잡은 보조국사와 나무솔개 이야기 

송광사에는 보조 국사께서 신통한 능력으로 조계산에 터를 잡았다는 전설이 있다.
만대 도량의 터를 고르시던 보조국사께서 모후산(나복산, 919m)에 올라 나무 솔개를 날렸더니 지금의 송광사 대웅전의 뒤편 언덕에 내려앉아 명당을 예시하므로 그곳의 이름을 치락대(鴟落臺, 원감국사시집에는 眞樂臺)라 부르고 송광사(당시는 수선사)를 세우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담양의 명산 추월산 중턱의 기암절벽에 자리 잡은 ‘보리암’에 들르면 이곳의 스님께서도 같은 내용의 전설을 들려주신다. 

“보조국사께서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나무 솔개 세 마리를 날렸더니 한 마리는 송광사에 또 한 마리는 보리암에 마지막 한 마리는 백양사 터에 내려앉으므로 각각 그곳에 명찰이 자리 잡게 되었다.”

같은 내용의 전설이지만 송광사와 보리암이 일부 다름을 알 수 있다. 

우선 나무 솔개를 날렸다는 장소가 모후산에서 천왕봉으로 바뀌고 세 번째 절이 흥국사와 백양사로 달라진 것이다. 전설이야 구전이니 세월이 지나면 부분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일이다.
송광사와 보리암에서 말하는 전설의 내용을 비교해 보건대 애초에 같은 뿌리에서 생겨난 전설이, 두 절의 지역적 특성과 요건에 따라 내용이 일부 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먼저 모후산과 천왕봉을 비교하여 살펴보면, 모후산은 조계산과 무등산의 중간에서 송광사와 보리암을 한눈에 굽어보는 위치에 송광사보다 30여 미터가 높은, 제법 무게 있는 산으로서 두 절과 전설이 구성되기에는 매우 적절한 산이다.

반면, 천왕봉은 보리암을 중심으로 모후산보다 위쪽(북동쪽)에 있는 삼신산 중의 하나인 남도 제일의 영산으로 꼽히는 명산 중의 영봉이다.

다음은 흥국사와 백양사의 비교이다. 흥국사는 진달래로 유명한 여수 영취산 자락에 보조국사께서 창건한 송광사로부터 남쪽에 가까이 있는 절로서, 같은 전설을 구성하기에는 알맞은 조건을 갖고 있다. 역시 백양사와 견준다면 모후산과 천왕봉의 비교와 마찬가지로 위치 면에서 보리암보다 위쪽에 있으며 흥국사보다 백양사가 규모와 지명도에서 비교가 안 될 만큼 큰 절이다. 이 두 가지 비교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나타난다. 송광사 측 전설에는 지역적으로 가깝고 보편적인(작은) 산과 절이 전설의 대상으로 구성되고 있지만, 보리암은 최대한 규모가 크고 지명도가 높은 산과 절이 등장한다. 여기에는 분명 그럴 만한 사유가 잠재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즉, 보리암 쪽에서는 언제부턴가 전설의 내용을 조금은 변화시킬 필요를 느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애초에 전설의 구성이 신성의 주체인 지눌로부터 시작되었다면 지눌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어느 면으로 보나 송광사가 다른 곳보다는 줄거리의 중심이 되리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전설에 등장하는 객체로서는 세 곳 모두가 동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절의 규모와 실세, 유명도에서는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난다. 보리암으로서는 처음부터 동격의 절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격을 높이는 데 일조할 수 있는 조건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송광사의 주위에서 전하는 전설과 비교한 사고의 발상은 아닐 것이다. 다만, 송광사 측 전설은 보조국사 그 자체에 중심이 있는 것이고 보리암 쪽은 자신의 위상을 높이는 데 모후산이나 흥국사보다는 지명도 높은 인근에서 찾을 수 있는 대상이 자연스럽게 지리산의 천왕봉과 장성의 백양사가 다가왔을 것으로 이해된다.

어떻든 송광사는 추월산의 보리암과 함께 그곳에 절이 자리 잡게 된 보조국사와 나무 솔개에 관한 재미있는 전설이 오래도록 아름답게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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