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박종택) 여행기

 

세계는 넓답니다. 그리고 ‘세계는 한 권의 책과 같은데,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한 권의 책 중에 한 페이지만 읽는 것과 같다(아우구스티누스).’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굳이 외국 여행일 필요는 없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여행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곳에서 자기 여행기를 읽게 된다면, 여행을 통해 얻은 것만큼이나 가슴이 벅차오를지 모릅니다.


공항 사용 설명서(공항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나라 인천공항은 매우 넓고 크고 복잡하다. 나처럼 공항을 자주 드나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머리가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느껴지며 다소 위축된다. 어디로 가야 하며, 어디에서 표를 사며, 출구는 어디고 화장실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다행히 여럿이 함께 가는 패키지여행 때는 여행사 인솔자가 나와서 모든 소개와 안내를 해주니 참 편하고 좋다. 가이드의 안내만 잘 따르면 된다. 그렇지 않고 혼자 출국할 경우는 다르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자. 아무리 크고 복잡해도 공항 내의 여러 장소 및 제공되는 서비스는 일정하게 정해져 있고, 변치 않으며, 사람들이 이용하기 편리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모르면 안내원이나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쉽게 해결된다. 처음에는 다소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조금 시간을 들여 차분히 알아보면 명확해진다. 심적으로 위축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다만, 외국 공항에서는 우선 말이 통하지 않으므로 다소 어렵겠지만, 공항의 구조와 역할은 비슷하므로 좀 더 시간을 들여 알아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은 착하고 친절하므로, 모르면 물어보는 것이 제일 상책이다.
 

비행기 사용 설명서 (기내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보통 비행기의 삼등석 내부는 좁고 불편하다. 특히 장시간 비행할 경우는 더욱 그렇다. 다행히 승객들의 지루함과 불편을 덜어주기 위한 시설이 되어 있다. 이번에 탄 아랍에미리트 항공사의 비행기를 보자. 각 좌석 앞에는 일인용 TV 화면과 리모컨이 장착되어 있었다. 거기에는 2,500개 채널, 많은 영화, 다큐멘터리, 스포츠 등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번처럼 5시간, 8시간을 줄곧 타고 가야 하는 경우, 화면을 틀고 보는 것은 거의 불가피하다고 보겠다. 그 긴 시간에 푹 잠이 온다면 좋은데 그렇지 않다면 매우 지루하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독서나 명상을 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그 많은 영화나 프로그램 중에서 적절한 것을 찾아 선택하는 것이다. 기본 화면이 영어로 표기되어 있어서, 프로그램을 찾아가는 것도 다소 어려울 수 있다.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 지나가는 승무원 혹은 옆자리 승객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나도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Lion, Enchanted, 둘 다 재미있고 감동적이었으며, 지루함을 달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보고 온 것들: 자연, 역사유물, 예술품, 도시

이번 여행에서 많이 본 것 중 하나는 자연이었다. 기차와 버스를 타고 장시간 오가며 많은 곳을 보았다. 바다, 산, 들판을 보았다. 수많은 산은 물론 알프스 정상에 눈 덮인 융프라우와 곁에 이어지는 봉우리들도 보았다.
 

안내자의 말에 따르면 어떤 날씨에는 지척의 앞도 볼 수 없고, 여기까지 왔다가 그냥 되돌아가는 수도 자주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다행히 하늘은 너무나 맑았고 햇빛은 빛나고 시야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 지금도 눈에 선하다! 햇빛에 반짝이는 만년설(萬年雪)을 이고 장엄하게 서 있는 봉우리들! 저것은 바로 신의 작품이다. 인간의 모든 작위를 뛰어넘는 창조주의 걸작(傑作)이다!

설산을 마주하고 잠깐 깊은 침묵(沈黙)의 시간을 가졌다. 순국선열(殉國先烈)에 대한 묵념이 아니라 대자연에 대한 경의(敬意) 표시였다.
 

▲ 차창 밖으로 보이는 프랑스 농촌 풍경이다. 어디를 봐도 산이나 구릉이 보이지 않는 끝없는 평지였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농촌 풍경도 잊을 수 없다.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들판, 몇 시간을 달리고 달려도 구릉이나 산은 보이지 않고 끝없이 평지만 전개되는 농촌 들판도 볼만했다.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농부가 들판에서 일하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경작은 트랙터나 콤바인 등 대형 농기계를 이용하는 듯했다. 밀밭이 번갈아가며 펼쳐졌고, 가끔 노란 유채꽃밭도 반복해서 지나가곤 했으며, 미루나무가 한 줄로 길게 서 있었고, 어떤 곳에는 초록 풀밭 위에 소들이 한가롭게 노닐곤 했다.

런던, 파리, 로마 등 유럽의 대도시들을 보았다.
대영제국의 중심지 런던, 예술과 낭만과 사랑의 도시 파리, 로마제국과 바티칸의 중심지 로마.
이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도시에 아주 많은 관광 명소, 유물, 역사적인 건물이 있었다. 어찌 보면 도시 자체가 큰 관광지이고 박물관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많고 웅장했다. 따라서 이들 도시에서 본 여러 곳을 다 거론하는 것은 너무 무리한 일이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주마간산 격으로 돌아다녔으므로 특별한 느낌을 받기도 어려웠다. 또 다른 공통점은 이들은 과거의 전통과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서울, 동경, 뉴욕처럼 초현대식 화려함과 치장, 치솟는 고층건물 등을 자제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적어도 외화내빈(外華內貧) 하지 않았다.

대영박물관, 루브르박물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베드로 성당 등을 관람했다.
이 여러 박물관과 성당에 소장된 유물, 작품들은 너무나 유명한 것들이 많았으며, 우리가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관람 시간은 겨우 한 시간 정도였고, 관람 인파가 너무 많았으며 작품을 차분하게 감상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집트 역사와 문화의 열쇠를 푼 로제타석, 이집트 고대 미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조각품 비너스상,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베드로 성당 등 다 열거할 수도 없다. 이들 유물과 작품 하나하나의 학문적, 역사적, 예술적 가치는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모나리자는 값을 따진다면 2경이 넘어간다고 했던가?!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던 것은 이런 최고 최상의 작품들을 보아도 별로 감흥, 감동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신비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쳐다보는 모나리자 앞에 서서 나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그뿐이다! 평소 예술적 소양과 감수성을 닦아놓지 못한 자신을 탓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학생들을 입시 공부, 점수 공부에 몰입시키는 한국의 비뚤어진 교육체제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나는 세상의 돈, 명예, 높은 지위, 인기 등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인문학적 소양이 적다거나, 예술적 감수성이 부족함을 느낄 경우는 못내 가슴이 쓰라림을 자주 느낀다.게 들었다.
 

이탈리아에서의 느낌

이탈리아 볼로냐 시내를 가면서 가이드가 말했다.
“보십시오. 주변 상가가 아직 열리지 않았지요? 이곳 사람들은 오전 10시에 문을 열고, 오후 6시에 닫습니다. 저녁에는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긴 식사를 하면서 각자 하루 지냈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들은 서둘지 않습니다!” 시간을 보니 9시 40분인데, 차창 밖을 보았더니 실제로 대부분 상가는 닫혀 있었다.

이것은 비단 이탈리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영국, 프랑스도 마찬가지였다고 느꼈다.
이들의 생활태도는 여유 있고 서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남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중심을 가지고 사는 것이었다. 나는 무조건 이들 선진국을 모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서둘지 않고, 식구끼리 긴 저녁 식사 동안에 대화하고, 자기 주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태도는 매우 바람직하다고 본다. 우리는 너무 ‘빨리빨리’다. 식구가 함께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얼마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가! 끊임없이 더 큰 집, 더 좋은 차, 더 멋진 치장을 위해 경쟁하고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주관을 가지고 사는 것, 얼마나 편안하고 조화로운 삶인가!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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