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 민주주의 강연 참가기

대한민국이 정상을 회복해 가는 풍경 중 하나는 시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방은 아직 변화의 조짐이 안 보인다. 어쩌면 지방은 대한민국보다 더 바꾸기 어려운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순천에서도 ‘정상적인’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는 열망이 높지만, 그 일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지난 6월 2일 순천시교육지원청에서 진행한 ‘시민이 결정해야 민주주의다’는 제목의 숙의민주주의 강연이 있었다. 행정학 박사인 장용창 씨가 발제하고, 토론이 이어졌다.

장 박사는 “문재인 정부가 지방분권을 강화하겠다고 하는데, 주민참여와 자치가 없는 분권은 토호세력의 창궐만 가져온다.”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주민참여와 자치를 위해 숙의 민주주의가 어떤 도움이 될지 이야기했다.
 

▲  지난 6월 2일 순천시교육지원청에서 행정학 박사인 장용창 씨의 발제로  ‘시민이 결정해야 민주주의다’라는 제목의 숙의민주주의 강연이 있었다.

장 박사는 “전문가들의 정책 결정이 계속 나라를 망친다.”며 “그동안 정책을 결정할 때 업무를 잘 아는 전문가를 위원으로 불러 예산을 결정했지만, 그 전문가들이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는 사업에 예산을 배정한 사례는 수두룩하다.”고 꼬집었다. 최근 원자력 전문가들은 원자력 발전을 계속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냈는데, 대표적인 사례이다. 원자력 발전을 계속해야만, 연간 수천억 원대의 연구비가 그들에게 배정되기 때문이다.

숙의 민주주의가 다른 토론의 방식과 다른 점은 참가자 수가 적더라도 대표성을 지닌 사람을 뽑아 결정한다는 것이다. 보통 지방정부에서 하는 공청회는 참가자들이 많으니 토론의 질이 낮아진다. 숙의 민주주의에선 제비뽑기 등 무작위 추출 방법을 통해 일반 시민 중에서 토론자를 뽑기 때문에 대표성이 높아진다. 문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일반 시민에게 어떻게 정책 결정을 맡기느냐는 비판에 대해, 장 박사는 “대중의 지식과 능력을 믿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주민참여와 자치가 없는 분권은 토호세력의 창궐만…
대중의 지식과 능력을 믿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핵심!!

 

숙의 민주주의가 가장 매력적인 이유는 참가한 사람들의 지식과 태도가 변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각종 텔레비전 토론을 보면, 서로가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해 상대방을 어떻게든 공격하고 깎아내리려고 하지만, 숙의 민주주의 토론에선 서로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모두를 위한 최선의 결정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있는 양심, 혹은 ‘공적 이성’이 발휘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숙의 민주주의 토론에선 서로의 입장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생기고, 자기 뜻을 바꿀 수도 있다. 사회적 학습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장용창 박사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대통령이나, 시장이나, 국회나 죄다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대리인들이지만, 이들이 진짜 국민의 의사를 반영해서 정책을 만드는지에 대한 깊은 회의가 광범위하게 있다. 지금은 대의 민주주의를 보완하기 위해 직접 민주주의를 도입할 시기이다. 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이 직접 참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숙의 민주주의 토론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이렇게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 시민에게 체계적으로 물어보겠다는 공약을 하는 정치인을 선출해, 시민 권력을 되찾으면 좋겠다고 마무리했다.

이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첫 번째 질문은 2018년 6월 시장, 시의원 선거를 앞두고 순천에서 숙의 민주주의적 정책 결정이 필요한 이슈는 무엇인가?

두 번째 질문은 순천에서 숙의 민주주의적 정책 결정을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든 이유는 어떤 장애물 때문인가?

세 번째 질문은 <2번>에서 찾은 장애물을 극복할 방법은 무엇인가?
 

▲  숙의 민주주의가 다른 토론의 방식과 다른 점은 참가자 수가 적더라도 대표성을 지닌 사람을 뽑아 결정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 청중들의 문제의식과 열망은 다양했다.
기본소득, 쓰레기 재활용, 에너지 자립, 도지 재생(공공청사 입지 공공적 결정), 생태 도시 순천, 순천만 보존을 둘러싼 개발 논리, 봉화산 부근 아파트 건설로 도시 확장하는 문제, 여수, 순천, 광양 통합 문제, 도시 재생(구도심만을 둘러싼 문제가 아니라 순천을 어떻게 균형 있게 발전시켜갈 것인가?), 순천만 정원 활성화 방안, 축제 예산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 것인가, 로컬푸드 활성화 방안, 복지예산을 어떻게 적절하게 분배할 수 있는가, 살기 좋은 교통을 어떻게 만들어낼까, 연말 보도블록 교체, 청년 일자리 정책, 협동조합으로 일자리 활성화, 원도심의 광장 조성, 가공품도 식품안전의 기준을 높이는 친환경 무상급식 등이 나왔다.

두 번째, 순천에서 숙의 민주주의적 정책 결정을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든 이유는? 
정책결정권자가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지 못하고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결정, 공무원이 시민의 의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시민도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못 한다. 무관심, 정책 결정 과정에 시와 의회의 견제가 충분하지 못하다. 공무원의 잦은 전보 인사, 정보가 차단, 순천시는 공청회를 하는데 형식적이다. 시민이 먹고살기 바빠 여력이 없다. 혈연과 지연, 학연, 종교적인 폐쇄성, 관료주의, 정책결정권자의 말에 순응하는 군사주의, 시민단체 자립구조를 갖지 못하다 보니, 시 정책에 참여하면서 견제기능 약화 등이 나왔다.

세 번째, 장애물을 극복할 방법에 대한 의견은 정책결정권자의 민주적 학습, 공무원 전문성, 주민 소환제(시민 의견을 결정하지 않는 정치인에 대한 기준을 완화해서 소환할 수 있게 하자), 시민이 참여할 조건을 마련해야, 야간 토론회, 광장정치, 주민들 의식 성숙, 공동체 복원, 협력과 지속적인 연대 등이 나왔다.
 

▲ 시민이 결정해야 민주주의다

토론에 참여한 임경환 씨는 “월 1회씩 숙의 민주주의 연습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 나온 이슈를 하나씩 정해서 숙의 민주주의 토론이 이어지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순천언론협동조합 변황우 부이사장은 “오늘 이 자리가 지역의 고민스러운 문제를 논의하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화답했다. 

그동안 수없이 기자회견을 하고 공청회를 했지만, 변화를 만들어낸 사례는 많지 않다. 그래도 순천은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낸 것이 많다. 

조례 호수공원을 만들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 것, 순천만 습지를 보존하고 순천의 자산으로 만든 토대를 마련한 일, 화상경마장을 막아 낸 일 등이다. 

시민단체가 지속해서 집중하고 연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시민 모두의 만족을 얻는 결론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많은 문제에 대해서는 줄곧 뒤통수만 맞아왔고, 해결되지 않은 채 갈등이 쌓여가고 있다. 그 이유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무엇보다 각자의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이웃들과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길목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 좋은 날이었다.
 

숙의 민주주의 공부 모임

숙의 민주주의를 공부하고 활용해 보고 싶은 분들을 모십니다.

▶ 일   시: 6월 22일(목), 저녁 7시~10시
▶ 장   소: 교육공간,‘너머’
▶ 선착순: 10명
▶ 참가비: 2만 원
▶ 문   의: 임경환 010 6421 4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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