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근혜
더드림실버타운 대표

언제부터인지 겨울과 여름 사이가 무척이나 가까워져 버린 것 같다. 추워서 발을 동동 구르며 히터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한낮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려 에어컨 리모컨을 찾느라 분주해지는 때가 되어버렸다.

봄이 소리도 없이 떠나버리려 하는 게 아쉬워 꽃들과 함께 봄을 돌아보려 한다.

봄의 전령사 매화는 한겨울 하얗게 내려 쌓인 눈 사이로 피어올라 봄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기쁨을 선사한다.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견뎌낸 매화는 소리 없이 피어올라 한없이 여려 보이지만 강한 기개를 보여주는 꽃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봄을 느끼지 전에 피기 때문에 미처 봄을 깨닫지 못한 이들에게 봄이 왔음을 속삭여준다.

수줍은 처녀 같은 매화가 질 무렵, 새싹보다 먼저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고 야생화들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동네 아가씨들 여럿이 모여 수다를 떨듯 진달래와 함께 개나리며 동백이 앞다투어 피어난다. 그러다 드디어 벚꽃이 피면 며칠 제대로 꽃을 피우지 않아도 그 화려함에 온천지가 들썩거리고 어디서나 ‘꽃 노래’가 끊이지 않는다.

벚꽃이 질 무렵 철쭉이 피어날 때가 되면 사람들은 더는 꽃이 지는 일이 생경하지 않게 되는 듯하다. 너무 많은 꽃이 와글와글 떠들어 대서 이제 꽃에 습관화가 되고 만다.
꽃들을 따라 봄도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나간다.

벌써 여름인가 싶어 봄날이 이리도 쉽게 가버리는 것이 서러워진다. 그 많은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제대로 바라봐 주지도 못했고 마음껏 누리지도 못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봄날 그 여러 날 동안 할 일이 많았고 갈 곳이 많았으며 만나야 할 사람도 많았다. 봄날이 간다고 봄이 가고 나서야 울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다.

누구나 인생의 봄날이 있다.

그때가 몇 살 무렵이라고 말하기보다는 돌아보면 가장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때가 봄날이 아닌가 싶다.
 

어떤 이에게는 돈을 많이 벌었던 시절이 봄날일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는 시절이 봄날일 것이다.

일에서 성공하였을 때, 사람들에게 인정받았을 때, 권력을 손에 쥐었을 때….
그 시절이 언제이든지 그때가 봄날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면 지금은 그 봄날이 지나가 버린 후라는 것이다.

노인들에게 봄날이 언제였냐고 물어보면 이런저런 일들을 이야기한다.
그중에 우암님(가명 87)은 다른 어르신들과는 다른 대답을 하신다.

“봄날? 오늘이 봄날 아니여?”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할 만큼 가난했고 전쟁을 겪었고 자식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사셔야 했다.

“맨날 힘들게 살고 자식들 키우느라 봄날이 어디 있었가니? 아그들 다 잘 커서 저만큼 살고, 마누라 저세상 먼저 가서 걱정할 것 없고, 크게 아픈데 없이 이렇게 편히 사니, 오늘이 봄날이제” 하신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지나 가버린 어린 시절, 젊은 시절을 돌아보며 그때가 봄날이었다고 아쉬워만 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그렇다. 늘 오늘이 봄날인 것이다.

곧 여름이 오고 장마도 지고 낙엽이 진 후 겨울도 오겠지만, 그날그날이 내게는 봄날인 것이다. 이제 봄날이 간다고 서러워 말자.

내겐 화려한 봄날이 내일 또 시작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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