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4월 13일(목), 14:00 ‘4·19혁명의 세계사적 의의 및 현재적 계승’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가 열린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2017년 4월 13일(목),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14:00부터 17:00까지 세 시간 동안 ‘4·19혁명의 세계사적 의의 및 현재적 계승’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 2017년 4월 13일(목), 14:00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300여 명 참석자의 열띤 호응과 관심 속에 ‘4·19혁명의 세계사적 의의 및 현재적 계승’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는, 4·19민주혁명회 등 4개 단체가 주최하고 4·19혁명국민문화제위원회가 주관한 국제학술회의였는데 국가보훈처, 서울시, KBS한국방송, 동아일보 등의 후원으로 간단한 기념식에 이어 외국 교수 2명의 주제 발표와 국내 대학교수 4명의 토론 등으로 이어졌는데 300여 명 참석자의 열띤 호응과 관심 속에 ‘4·19혁명 세계 4대 민주화혁명 추진 1,000만인 서명’ 운동과 함께 열렸다.
 

▲ 2017년 4월 13일(목), 14:00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4·19혁명의 세계사적 의의 및 현재적 계승’이라는 주제의 국제학술회의에 앞서 4·19혁명 세계 4대 시민혁명 추진 1,000만인 서명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줄을 선 참석자들.

이에, 최근 전 세계적인 관심사가 된 우리나라의 ‘촛불 혁명’의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 등재 및 노벨평화상 수상 추진 등의 움직임에 발맞추어 4·19혁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어 관련 학술회의 내용을 지면에 소개하고자 한다.

주제발표에서 미국의 던컨 교수(John B. Duncan / UCLA)는, 미군이었던 시절의 본인 눈에 비친 한국은 ‘가난하고 춥고 고약한 곳’이었다며 ‘햇볕에 아름다운 붉은 고추를 말리는 정경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이어서, ‘4·19혁명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기는 하지만, 장기간 지속한 일련의 민중항쟁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생각’한다며 당시 한국의 젊은이들은 ‘4월 혁명으로 인해 고양된 만큼이나 1961년의 군사쿠데타로 절망했다며, 4월 혁명의 배경에서 민족주의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고 했다.

또한, 그는 4·19혁명을 ‘전 세계 학생운동의 출발점이 아니라면 최소한 그 전조였다고 주장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만하다’고 했지만, ‘4월 혁명과 타국의 학생운동 사이에 어떤 종류의 직선적인 인과관계를 구축하기는 어렵다’라며 아쉬워했다.


4·19혁명의 세계사적 가치, 전 세계에 알려야
4·19혁명, 세계 4대 시민혁명 추진해야
한국의 시민사회 운동, 새로운 정치 흐름의 원동력

 

이어진 주제발표는 하버드대학교 폴Y. 장(Paul Y. Chang) 교수 순서였다. ‘한국 민주주의를 위한 4월 혁명의 유산’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는 ‘1948년에 약속되었는데 40년간이나 한국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고, 안보와 발전을 위해 희생되었다.’라며 ‘민주주의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쟁취해야 하는 것이었다.’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시민사회는 ‘입법, 사법, 행정, 언론에 이어 제5부라고 불릴 만큼 영향력 있는 정치세력’이라고도 했다.

최근 세계적인 관심사가 된 촛불 혁명에 대해서도 그는, ‘작년 가을과 겨울에 벌어진 한국의 촛불 시위는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수개월에 걸쳐 수백만 명의 사람이 박근혜 정부의 부정부패에 맞서는 평화적 시위에 결집했다. 대규모 시위와 평화적 집회라는 두 가지 결합이야말로 가장 인상적인 것이다’라며 찬사를 보냈다.(The candle light protests this past fall and winter in South Korea are unprecedented. 
Furthermore, millions of people mobilized for several months in what amounted to 
peaceful demonstrations against the corruption of park Geun-hye’s government. 
It is perhaps the combination of the size of protests and the peaceful nature of the 
gatherings that is most impressive.)
 

토론에서, 김정인(춘천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4월 혁명을 놓고도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위해 희생을 마다치 않았던 한국인의 저항의식이 어디에서 발원하는 것인지, 즉 민주주의 역사의 기원을 고민하는 경우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거의 없었다.’라며 민주주의가 광복 이후 ‘미국에 의해 제도와 문화로서 이식되었다는 선입견이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데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이어, 4월 혁명에 대해 ‘진보적 민족주의와 결부하여 학원 자유·공명선거·민주개혁 및 독재 철폐라는 민주주의적 요구가 아래로부터 제기되어, 최고 권력자를 끌어내린 전후(戰後) 최초의 시민혁명이었다.’라며 19세기 민중항쟁과 1960년의 4월 혁명은 ‘민주주의 역사라는 하나의 줄기 속에서 살필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라고 했다.

오제연(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토론에서, ‘4월 혁명이 같은 시기 일본과 터키에서 전개되던 학생들의 항쟁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라면서도 4월 혁명이 국제사회에 미친 영향력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사실의 적극적인 발굴, 관련 연구의 활성화와 더불어 과장되지 않은 합리적 설명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박태균(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4·19혁명과 87년 체제, 그리고 촛불 항쟁’이라는 주제의 토론이 이어졌다.

박 교수는,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배운 것이 4·19와 5·18이었는데 ‘4·19는 20년이 훨씬 더 지난 역사였고, 5·18은 폭동이었다.’라고 회상하며 ‘4·19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3·1운동을 들었을 때의 느낌이었다고 할까?’라며 조심스럽게 토론에 임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4·19혁명으로부터 시작된 시민의 힘이 2016년과 2017년에 한층 더 발전되었다며, ‘시민사회가 원했던 바를 4·19혁명과 87년 체제가 제대로 이루지 못한 그 이면에는 그 당시 사회가 요구하던 다양한 층위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 모든 것을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묻어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라고 진단하고 그것이 지금의 한국 상황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며 4·19혁명의 의의에도 주목해야 하지만, 그 이후의 상황 전개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토론에 나선 이기호(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는, 한국 시민사회의 뚜렷한 특징으로, 민주화의 가치와 도덕적 정당성을 사회적으로 획득해가는 과정에서 청년들의 도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역사적인 순간에 ‘시민권력’이라는 새로운 중심을 만들어왔으며 한국의 시민운동은 무력에 의지하지 않았다는 점 등 세 가지를 꼽았다.

그는 또한,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이 주목받는 이유는, 대통령을 하야, 구속, 탄핵을 시키는 힘을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의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비전과 에너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라며, 4·19혁명의 정신이 촛불집회와 역사적으로 만나듯이 세계의 시민과 연대하여, 자본과 권력, 군사력에 의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평화, 생명, 정의의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민주주의를 키워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며 토론을 마쳤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들은 하버드대학교 폴Y. 장(Paul Y. Chang) 교수의 찬사가 귓가를 맴돈다. 가슴에 또렷이 남아 있다.

한국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여러 행위자가 권력이 아닌 민주주의를 위해 일할 때 무엇이 가능한지를 전 세계에 “보여줬다.” 국민은 시위했고, 국회는 표결했으며 법원은 판결했다. 적어도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한국은 모범적인 민주주의로 주목받게 되었다.
(South Korea did “show” the world what is possible when the different actors in 
democratic polity work for the shake of democracy rather than for the shake of power. 
The people protested, the legislature voted, and the court judged. For the reason alone, 
South Korea has been thrust in the spotlight as an exemplary democ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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