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황우 
 순천제일대학교 교수 
 공학박사

그리스어에서 손을 뜻하는 키랄성(Chirality) 또는 카이랄성은 수학, 화학, 물리학 등의 과학 분야에서 비대칭성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이것은 자신을 거울에 비춘 모양과 자신이 포개어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키랄성은 과학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존재한다. 당선을 목표로 하는 후보자와 투표를 매개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유권자는 언뜻 보기에 공통의 정치를 희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도저히 포개어지지 않는 상대를 바라보는 비대칭성이 있다. 어떤 점이 그럴까?

대통령 선거일이 5월 9일로 다가왔다. 역대 대선 중 가장 많은 15명이 출마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국민의당 후보의 양강구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동안 문제가 지적되었던 지역 대결구도도 사라졌고, 이념적 대결 양상도 누그러졌다.

이번에 선출할 대통령은 탄핵정국에 양분된 국민갈등의 봉합, 긴박하게 돌아가는 북핵 정세 변화에 따른 한반도 위기의 극복부터 일자리 창출을 통한 침체된 경제 활성화, 양극화 해소를 위한 공정사회 구현 등 민생, 경제, 외교, 안보 등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능력과 도덕적인 대통령이 요구되고 있다.

중국 전국시대의 유학자인 순자(荀子)는 “해가 추워지지 않으면 소나무 잣나무의 진가를 알 수 없고, 일이 어렵지 않으면 군자의 가치를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어려운 환경에 놓여봐야 인재를 알아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과거에 유권자는 이러한 인재(후보자)를 선택할 때 돈 적게 쓰는 후보, 건전한 대안을 제시하는 후보, 부지런한 후보, 지역감정을 부추기지 않는 후보, 겸손한 후보 등을 기준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번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정신이 건강한 후보, 외모에 너무 신경 쓰지 않는 후보, 토론을 기피하지 않는 후보, 비선에 억매이지 않을 정도의 똑똑함을 갖춘 후보, 솔직한 후보 등도 대통령의 덕목으로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유권자들은 이번 대선에 출사표를 낸 후보자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덜 사악한 쪽을 뽑아라”는 <군주론>의 마키아벨리 충고처럼 최고의 후보자를 뽑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덜 악한 후보자를 뽑는 네거티브적인 행위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선거에서 절대적 기준에 의한 최고의 후보자를 뽑지 못하고 차악의 후보자만 뽑아야 할까? 후보자의 자질 문제일까? 유권자의 혜안 문제일까? 아니면 인간의 한계일까?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도 자신이 최고의 후보라고 자랑하는 후보자와 그러한 후보자에게 별로 변별력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유권자 사이에는 도저히 하나로 포개어지지 않는 키랄성이 있다.

그래서 차악을 뽑는 일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투표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의 박태근 기자의 말처럼 선거는 후보자를 선출하는 일일 뿐 아니라 “대표자에게 우리가 공공성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필자는 아직까지는 이번 대선에서 스윙보터(swing voter)다. 어떤 후보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란 뜻이다. 물론 필자와 가까운 지역의 정치인이나 지인이 나에게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의 당선 필연성과 상대방 후보에 대한 당선 불가성을 이야기하며 지지를 요청하지만 난 아직도 고민의 세계에서 플로팅(floating)을 계속하고 있다. 후보자 간 변별력과 장단점을 아직까지 구별하지 못하겠다.

이번 대선은 단순히 대통령 한 명을 뽑는 게 아니다. 새로운 정권을 담당할 세력을 함께 뽑는 것이다. 그래서 난 탐욕과 사욕, 독선과 아집이 적은, 그래서 그나마 합리성이 많은 후보자에게 내 표를 던지려고 하고 있다.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