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협동조합 선배 활동가에게 듣는다
①순천광양축협 전 조합장 황금영


 협동의 가치실현, 그 여정의 산 증인!
“화를 내면 협(協)자가 깨진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의 대안적 경제시스템으로 협동조합이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 시행과 함께 많은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설립․운영되고 있다. 협동조합 설립 현상을 보면 그야말로 ‘우후죽순’과 같다.

이에 순천광장신문은 협동조합 분야의 선배활동가들의 협동조합 활동 경험을 통해 ‘왜 협동조합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나눠보자는 취지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첫 번째 순서로 황금영(71세. 사진) 전 순천광양축협 조합장을 만났다. 황금영 전 조합장은 건국대 축산대를 졸업한 뒤 남들은 다 농촌을 떠나던 1973년 양돈을 시작했고, 이후 순천밀알신협 이사장과 순천광양축협 조합장을 지냈다.
 

황금영 전 순천광양축협 조합장은 순천 토박이다. 순천시 중앙동에서 나고 자랐다. 그가 어렸을 때는 지금의 순천대 뒤편에서 농사를 지었다. 당시 할머니는 날마다 새벽 4시가 되면 삼베 저고리로 갈아입고, 농사와 농사꾼이 잘 되길 기도했다고 한다. 그가 당시 건국대학교 축산대학에 진학한 것도 그런 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어려운 농촌을 부흥시키는 주역이 되겠다는 다짐이었다.

해병대 장교로 전역한 후에 순천으로 돌아왔고, 1973년부터 돼지 6마리로 양돈을 시작했다. 당시는 농사지을 퇴비 구하기도 쉽지 않을 때라, 퇴비도 생산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처리할 수 있어 1석 2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면에서 시작한 양돈은 1990년 낙안면에 있는 지금의 순천종돈장으로 옮겨 43년째 계속하고 있다. 지금은 8000마리로 늘었다. 어려움도 없지 않았다. 74년에 20마리의 모돈으로 종돈사업(새끼를 분양하는 사업)을 시작했는데, 79년에 당시 키우고 있던 700마리 중 350마리가 죽는 일이 발생했다. 뒤늦게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 보니,‘콜레라’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후로 방역을 철저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협동조합 활동에 관심을 가진 것은 밀알회 때문이었다. 밀알회는 진실, 헌신, 창조를 기치로 농촌 부흥운동을 하던 단체이다. 전남대에서 만들어졌고, 당시 순천에도 자주 농촌봉사활동을 왔는데, 그게 인연이 되었다.

밀알회는 밀알정신을 승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협동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밀알신협을 만들었다. 신협을 통해 자금을 만들어 밀알회도 지원하고, 농업지원도 하자는 취지였다. 1980년 밀알회장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81년 밀알신협 이사장도 지냈다.

밀알신협은 1981년 장천동 회관을 신축하고, 1995년 연향동 회관을 신축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당시 예수금이 450억 원이나 되었는데, 2002년 부실채권이 많아 결국 파산했다. 밀알신협의 파산 원인에 대해 황금영 전 조합장은 “당시 이사장들이 협동의 정신을 망각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자본잠식 순천축협, 경영 혁신

황금영 전 조합장의 두 번째 협동조합은 순천축협이다.

그가 순천축협의 조합장으로 선출되던 1990년에 순천축협은 45억 원의 자본금 잠식상태의 경영 위기였다. 그 때 전국 최다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그가 취임한 지 1년 만에 적자를 벗어났고, 18년 동안 조합장으로 재임한 후에 2008년에는 예수금 2134억 원, 당기 순이익 8억 4408만 원이 되었다. 괄목할 만한 경영성과였다. 순천축협은 2006년에 광양축협과 통합하여 지금은 순천광양축협이 되었다.


조합원과 소통 위해 5호 담당제 시행

그는 조합장으로 취임한 첫해 조합을 살리기 위해서는 조합원을 위한 조합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순천축협은 조합원이 2200명이었는데, 그중 1200명은 정치나 친목, 자금 이용을 위해 조합에 가입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자격이 없는 사람을 다 정리하니 1000명만 남았다.

당시의 순천축협은 조합과 조합원이 유기적으로 소통하지 못했다. 그래서 조합원 사업컨설팅과 조합원 5호담당제를 도입했다. 당시의 직원 50명을 4개의 조직(20호)을 담당하게 하여 1000명의 조합원과 소통하고, 품종별 조합원 교육도 시행했다. 품종별 조합원 교육은 1992년 농림부에 건의해 정책사업이 되었다. 

그리고 조합 경영쇄신을 위해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조합의 업무를 5개 분야로 나눠 주간업무목표제를 도입했다. 매일 분야별 점검회의도 가졌다. 월요일에 열리는 총괄회의에는 조합 이사도 참여시켜 조합 상황을 공유했다.

조합장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 매일 7시까지 출근해 업무를 점검했고, 업무와 지점평가에서 성적이 나쁘면 일요일 아침에 조계산에 소집해 냉수마찰 등 극기훈련도 시켰다.

조합의 업무회의는 물론 이사회와 대의원총회 등 모든 회의는 1시간 이내에 끝내도록 했다. 이사회와 대의원총회는 사전 간담회를 마련해 안건을 설명하여 소통하고, 조합장 인사말도 2분을 넘기지 않았다.
 

협동의 가치 실현, ‘교육’이 관건
 

 

황금영 조합장은 “협동조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조합원이나 직원이 ‘함께 생각하고, 함께 일하며, 함께 즐거워한다’는 협동혼을 가져야 조합이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원들이 세상의 변화를 읽을 수 있도록 자기계발 교육비를 지원하고, 그 스스로도 조합장 재임 중에 많은 교육에 참여했다. 조합장 재임 중 노동조합이 설립되어 노사관계를 공부하기 위해 고려대 노동대학원에 등록하고, 외식산업을 배우기 위해 서울대에 등록하는 등 각 대학의 특수대학원 교육을 받았다. 바쁜 업무 중에도 “우선순위를 바꾸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교육에 참여했다.


협동조합도 사람이 하는 일, 직원이 ‘꽃’

조합장으로 재임 중에는 직원 채용방식도 남달랐다. 당시 많은 협동조합이 조합원이나 지인의 자녀를 채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황 전 조합장은 자신의 18년 재임 중 100명을 채용할 때 모두 공채했다. 계약직도 마찬가지였다. 공채 때는 서류전형과 필기시험, 면접 등으로 나뉘는데, 면접은 조합장이 함께 술을 마시거나 등산을 하면서 체크했다.

그는 “협동조합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로 직원은 협동조합의 꽃이다. 직원은 월급쟁이가 아닌 협동조합 운동가가 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체력이 기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직원을 채용할 때 친인척이나 선거 때 도와준 사람은 채용하지 않았다. 지인을 채용하면 업무를 추진할 때 사적인 감정에 휘둘릴 수 있고, 편 가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협동조합 방식으로 업무를 하면 안 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 협동조합 임원은 자리에 욕심내면 안 되고, 협동조합 철학을 구현하는 리더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순천광양축협 조합장 18년을 하면서 봉급을 한 번도 가져가지 않고 활동비로 썼다”고 말한다.


활동할 땐 ‘사실’ 과 ‘감정’ 구분해야

황금영 전 조합장은 “나는 협동조합에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협동조합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고 말한다. 그래서 후배 협동조합 활동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도 “협동조합은 힘과 마음을 합쳐야 한다. 협동의 ‘협’자는 열 십(十)자와 힘 력(力)자 3개를 합한 것으로 희생을 감내해야 함께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는 특히 “사실과 감정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말하다보면 자칫 감정으로 흐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협동을 하려면 조합원 간 마음과 힘을 합해야 하는데, 누군가 화를 내면 협(協)자가 깨진다고 한다. 한번 불신하게 되면 마음과 힘이 모아지지 않고, 상처가 깊어지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말이다. “협동조합을 하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다. 열심히 한다고 해도 주변에서는 아닌 것을 기다고 하고, 긴 것도 아니라고 해버린다. 그래서 술만 마시면 눈물이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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