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훈
  여수YMCA 사무총장

박근혜가 구속되었다. 바로 그날 세월호가 목포항 뭍에 닿았다. 어릴 때 어른들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억울하게 죽은 자의 상여가 꿈쩍을 안 해 씻김굿을 했더니 비로소 움직이더란다. 아, 세월호 원혼들이 박근혜 구속으로 한이 풀렸나보다.

콘크리트 지지율 믿고 요지부동이던 적폐덩어리 박근혜를 몰아낸 국민 촛불이 세월호를 건져 올린 씻김굿은 아니었을까. 이제 한이 풀렸으니 다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도 될까.

하지만 감성은 금물이다. 정치권도, 검찰도, 헌재도 도도한 민심의 물결에 일순 순응했지만 언제 새로운 얼굴로 돌아설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단김에 쇠뿔 빼듯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세상을 세워야 할 이유이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이 개헌이다. 1987년 민주항쟁의 성과물로 이룬 현 헌법이 시대에 맞지 않으니 새 헌법을 만들자는 것이다. 특히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가 많으니 권력분권, 지방분권을 골자로 하는 새 헌법을 만들겠다는 목소리가 대선과정에서 드높다.

한편에서는 개헌보다 선거법 개혁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정치가 후퇴를 넘어 쇠퇴한 데는 헌법보다는 선거제도가 더 문제라는 것이다. 참정권 연령(19세)이 너무 높고, 정당 득표율과 의석 비율이 일치하지 않아 민의가 왜곡되고, 과반수가 안 되는 지지로 대통령 또는 지방자치단체장이 되다 보니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현 선거제도의 허점이다.

만18세인 대학 1학년생 다수가 투표하지 못하고, 청소년들의 성숙한 정치 관심과 민주주의 훈련기회를 차단한 것이 현재의 19세 투표연령제다. 노동과 납세, 병역의무는 부과하면서 정신적 미숙함을 들어 투표권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이다. 광주학생운동, 4‧19혁명의 주역이 청소년들이었다는 점, 대부분의 나라가 18세, 심지어 16세까지 투표권을 주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핑계가 너무 얄팍하다.

지역주의에 기초한 소선거구제로 과다 또는 과소한 국회 의석수가 배정되어 국민여론을 배반하는 정치를 쉽게 할 수 있는 구조적 모순이 문제다. 3분의 1정도 표로 과반수의 거대정당을 만들 수 있다 보니 4대강 사업과 같은 대통령 치적사업을 밀어붙이는 거수기정당 노릇도 가능해진다. 전문성을 보완해야 할 비례대표제는 대통령과 정당의 패거리를 만드는 데 악용되어 갈수록 국회의 수준을 떨어뜨린다.

대통령이나 지방자치단체장 역시 과반은 커녕 그 반도 안 되는 득표로 인사권, 재정권 등 모든 권력을 독식함으로써 독재와 함께 편 가르기 정치를 하게 된다. 이는 많은 나라에서 시행하는 결선투표제가 없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이런 선거제도하에서는 아무리 그럴싸한 개헌을 해도 도로 그 모양이다. 유권자들이 정당과 후보를 신중하게 선택해 투표하더라도 자칫 사표가 되거나 엉뚱한 세력이 덕을 볼 수 있다. 찍어준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는 후회를 매번 하는 것도 그 탓이다.

그러니 새 대통령이 들어선 후 해야 할 첫 과제는 선거법 개혁이다.
첫째,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춰야 한다. 

둘째,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얻은 표만큼 의석을, 소수도 의석을, 당원과 국민의 검증을 거친 비례대표들을 배치한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대통령,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래서 최소한 과반의 유권자 선택을 받은 당선자가 정통성 있는 권력을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이다. 예쁘고 튼튼한 꽃을 피우기 위해서 토양과 재배법이 맞아야 하듯 바른 선거제도로 쇠퇴한 민주주의를 다시 꽃 피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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