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학섭
    대대교회 목사

순천만국가정원에 가면 마치 궁궐처럼 보이는 이탈리아정원이 있다. 안내문을 보면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의 정원을 본 뜬 것이라고 설명한다. 메디치가는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갈릴레오, 교황, 왕비 등이 배출된 명문 가문이다. 메디치 가문은 금융업을 통해 얻은 엄청난 재력을 소유할 수 있었는데 그 재력으로 문화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서적 출판을 지원하였다. 그 결과 약 300년 간 피렌체의 문화예술을 꽃피웠고, 르네상스 시대를 상징하는 도시로 만들었다.

독일의 경우도 루터 종교개혁 이후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여 출판함으로써 독일 언어의 체계적인 발달은 물론 문화예술과 정치경제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런 일은 한국교회에서도 있었다. 한글 창제는 세종대왕이 했지만 문법이 체계화되고 발전하게 된 것은 성경이 한글로 번역되고 부터다. 성경이 한글로 번역된 이후로부터 한국사회는 놀랍게 변화하였다.

한국교회의 부흥 역시 출판과 무관치 않다. 우리나라의 초대교회는 권서인 제도가 있었다. 각 가정을 방문하여 성경과 신앙서적을 판매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권서인들은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글을 모르는 백성들에게는 글을 가르쳐 가며 성경과 신앙서적을 읽혔다. 성경과 신앙서적 출판과 보급이 한국교회를 급속도로 발전하게 하는 추진력이 되었던 것이다.

국가가 잘되고 부흥하기 위해서는 출판업계와 책방의 역할이 지대하다. 체력이 국력이 아니라 출판사의 부흥이 국가의 힘이었다. 지방도시의 부흥은 서점의 융성이 결정적이다. 서점은 그 지역의 건전한 문화를 위한 중요한 인프라다. 서점은 단순히 책만 파는 곳이 아니라 그 지역의 문화를 선도하는 곳이며, 그 지역의 미래를 엿보게 하는 가늠자다. 출판사와 서점은 나라와 민족 그리고 지역사회 건강한 문화 발전을 위해 반드시 보존하고 육성해야 할 기관이다.

한 권의 책이 독자에게 전달되기까지는 책을 저술하는 저자와 출판사뿐만 아니라 편집자, 디자이너, 인쇄업자, 영업자, 서점인, 사서 등 수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책 속엔 책을 만드는 저자와 책을 읽는 독자와 책을 판매하는 사람들의 정신까지 오롯이 담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사는 지역에 책방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한 상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문화의 근간이 무너지고 참신한 저자들의 창작활동은 멈추게 되고 출판사와 서점이 문을 닫으면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정신적인 기둥이 무너지는 것이다. 출판사가 도산하고 책방이 문을 닫으면 백성들의 마음과 영혼은 가벼워지고 만다. 사라진 책방 대신 식당과 카페 그리고 게임방과 노래방이 늘어가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출판업계가 도산하는 이유는 책을 읽는 사람이 적다는 점이 일차 원인이다. 수많은 책이 창고에서 먼지만 수북하게 쌓여가고 있다. 또 디지털 사회가 되면서 출판문화의 쇄락을 부추기고 있다. 이제 책마저 e-book이 나와서 기계로 책을 읽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책을 온라인으로 구입함으로 동네 작은 서점이 줄줄이 문을 닫는다. 머지않아 출판사는 고작 참고서 만드는 곳으로 전락하게 될지 모른다.

현 정부 탓도 있다. 창조경제 창조문화를 표방한 정부가 출판문화를 장려하고 유능한 문학인들을 육성해야 하는데, 거꾸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유능한 문학예술 단체와 예술인과 문학인들의 지원을 끊었다. 올해 들어 60년 역사의 송인서적이 부도를 맞았다. 소규모 출판사들의 줄도산과 수많은 서점까지 연쇄적인 폐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순천에는 작은 도서관이 동네마다 한두 개씩 설치된 도시다. 그런데 도서관 도시에서 문 닫는 서점이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28만 시민이 책방을 한 달에 한 번만 방문한다면 서점은 활기를 회복하고 닫았던 동네 서점이 다시 문을 열게 될 것이다. 필요한 책만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저자의 창작 활동을 돕기 위해서라도 책을 사주는 넉넉함이 필요하다. 내가 구입하는 책 한 권이 출판사를 살리고 서점의 문을 계속 열어두게 하는 힘이 된다. 순천의 미래는 서점의 번영에 달렸고, 책 읽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창간 4주년을 맞는 광장신문도 출판사나 서점 못지않게 우리 지역의 건전한 문화를 위해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어떤 중앙지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우리 지역의 소식과 정보를 충실하게 알려주는 사명을 다 해왔다. 우리 지역의 건전문화 활성화와 지역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해준 것에 감사하고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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