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섭
    순천여고 역사교사

이번 촛불혁명 과정에서, 기록이 법의 심판이나 역사 정리에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최순실의 태블릿 피시, 고영태의 문서, 정호성 비서관의 녹음 파일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큰 위력을 발휘했다. 특히 안종범 수석이 꼼꼼하게 기록한 업무일지는 대통령의 잘못을 입증하는 명확한 근거가 되었다. 비록 26대의 파쇄기에 인멸된 자료가 상당했을지라도 권력 핵심부에서 작성된 1차 자료의 가치는 수많은 보도 기사에 비할 바 아니다.

역사는 기억한 만큼 발전한다는 말이 있다. 세월호의 진상 규명 작업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힘도 피해자 유족과 국민의 기억 투쟁 덕분이다. 권력은 끊임없이 참사의 기억을 감췄고, 지우려 했다. 이에 맞서 유족들은 억울한 희생의 진실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제주 4․3항쟁, 5․18항쟁의 진실이 일부라도 규명되고, 국가 폭력에 대하여 보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기록의 힘이었다.

역사를 정리하려고 할 때 행정기관의 자료가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민간의 자료도 중요하다. 국가기록원이 민간기록의 중요성을 알고 이제라도 수집하려고 하는 것은 잘한 일이다. 지역의 역사에서 소중한 것은 사회운동으로 표출되는 지역민의 움직임이지만, 국가 기관이 여기까지 관심가질 리는 없다. 동학농민운동이 정리될 수 있었던 것은 황현이라는 재야 사학자, 천도교 측의 각종 기록 덕분이었다.

최근 순천에서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3년 동안 지속적으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촛불을 이어 왔다. 촛불혁명 기간에는 매주 한두 번씩 집회를 열어왔으며, 한일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합의에 반대하며 조례호수공원에 시민 성금을 모아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 다행히 순천광장신문이 있어서 시민의 의로운 움직임을 보도해 왔지만, 충분하다고 볼 수 없다. 발행 주기가 주간에서 격주간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소식에 묻혀 이전의 행사 보도는 소략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사회관계망으로 소식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미디어환경이 변화되어 신문에 대한 의존도가 이전에 비해 약화된 탓도 있다. 광장신문이 시민을 대변하는 한편, 지역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하는 역사 기록이 되게 해야 한다.

지역사회나 단체의 책임자들이 먼저 잘 기록하고, 기록을 잘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촛불집회를 이끌어 오신 분들의 메모, 적극적인 자원봉사자들의 사진 한 장도 소중하다. 아울러 단순 참가자들이 챙긴 유인물 한 장, 배지 한 개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순천남교와 순천고에는 학교 역사관이 잘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학교 역사와 졸업생 수에 비하면 충분한 것이라 볼 수 없다.

2017년, 올해는 6월 민주항쟁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순천대학교 학생들과 YMCA를 중심으로 한 사회단체의 헌신적인 항쟁이 있었고, 천주교 매곡동 성당의 후원이 있었으며, 많은 시민과 학생의 참여가 있었다. 관련 기록은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내년은 여순사건 발발 70주년이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가 조사 규명한 것은 진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사건의 1차 희생자는 얼마 남지 않았고, 어린 시절 목격한 이의 수명도 많이 남은 것은 아니다.

순천시에서는 몇 년 전부터 시정자료실을 두고,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수집된 자료 일부를 두 차례 전시한 바 있지만 이름 그대로 시정자료를 중심으로 한 것이어서 지역민의 삶과 의식, 움직임을 대변하는 자료는 아니다.

순천시사도 마지막으로 발간 한 게 1997년이다. 20년 동안의 변화를 반영하고, 미진하게 정리된 부분을 보완할 단계에 와 있다. 발간 직전에야 편찬위원회를 만들어 자료 수집한다고 부산떨기에 앞서 지역 관련 자료를 차분하게, 체계적으로 수집해 나갔으면 좋겠다. 자료를 갖고 계신 분들이 타계하기 이전에, 지저분하다고 옛 기록을 버리기 이전에 우리 지역의 사료를 담을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