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해
    사랑어린학교 교장

사랑하는 길벗 H형에게.
매화가 봄을 알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농부 손길이 바빠지는 춘분절기에 접어들었네 그려. 창가에는 목련꽃이 활짝 피었고 뒷간 쪽에는 앵두꽃이 늦을세라 앞다투며 피어나는구만. 그래, 사는 것은 고만하시겠지?

한겨울 어느 날이었어. 꿈을 꾸었다네. 이른 아침 길을 걷는데 건너편에서 누군가 홀로 길을 걷더군. 말을 걸었지. 어찌 이 아침에 홀로 길을 걷느냐고. 그 사람 하는 말, 어젯밤 전국 노동자총회에서 새로운 대표를 선출했는데 새 대표로 뽑혀 한 시간 뒤 열리는 취임식장에 가는 길이라 하더군. 아니 그런데 어떻게 혼자 길을 가느냐 물었지. 사람들은 밤새 노느라 얼마 전에 잠들어서 혼자 가고 있다 그러더군. 그렇게 몇 마디 나누다 서로 가는 길을 갔지. 조금 지나니 저쪽에서 사람들이 오고 있었어. 사랑어린배움터에서 늘 만나는 사람들이었다네. 이 친구들 어깨는 축 늘어져 맥없이 걸어가는데, 취임식장 쪽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닌가. 어젯밤 늦게까지 술 마시며 놀았다더니 꼴이 볼만하군. 집회장소가 어딘지도 모르고 길을 가다니… 속으로 중얼거리며, 맨 뒤에 가는 아무개에게 소리치며 말했지. 그쪽이 아니야. 이쪽으로 가야 돼. 앞 사람에게 전달해 얼른. 길을 가는 그들에게 그렇게 몇 차례 큰소리치다 나도 그 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네.

꿈을 깬 뒤였지. 길을 가는 그 사람들이 취임식장에 가는지 다른 곳에 가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집회 장소에 가는 것으로 생각한 ‘나’를 보았네. 그이들이 어젯밤 술 마시고 놀았는지 아니면 다른 일이 있었는지 모르면서 밤새 놀았다고 단정해버린 ‘나’. 그런
‘나’를 보았어. 우습지 않는가. 그리고 설령 내 생각이 맞았다 하더라도 그 길이 아니고 이 길이라고 큰소리 쳐대는 것은 또 뭔가 글쎄. 어디 그뿐인가. 얼마나 그들을 한심하게 보고 속으로 궁시렁 거렸는지… 내가 그 모양으로 살고 있더군. 착각의 그늘 아래 끊임없이 기대하고 판단하고 비난하며 그와 같이 살아 왔어.

한겨울밤 하늘님은 그렇게 ‘나’를 보게 해주셨다네. 몇날 며칠을 내용은 다르지만 ‘나’를 보는 비슷한 꿈을 꾸었지. 참 함부로 살았어. 수많은 이들 가슴에 상처를 주고 ‘나’도 같이 상처를 받으면서 말일세. 또 얼마나 만사를 지나치게 하면서 주변을 힘들게 했는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부족함만 못한 너무나도 과한 삶이었어. 그래도 그래도 말일세. 이렇게 살아온 걸 보면 얼마나 고마운지… 모두들 그런 나를 바라봐주고 감싸주고 격려해주고 기도해주는 손길 덕분 아니겠는가. 나도 이제 그들이 나에게 한 것 같이 살아야겠지? 허허허.

뒤에 알게 된 일이네만, 노동자 대표로 뽑힌 그 사람. 홀로 취임식장에 가는데 그에게서  걱정과 두려움, 불평불만 없는 묘한 평온함을 느꼈다네. 그래 하는 말인데,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람의 운동가 모습을 보았지. 마치 물에 젖지 않는 물고기처럼, 참여하면서 그것에 함몰되지 않는 사람말이야. 초연한 참여라 할까… 그래, 우리 보름달 뜨고 배꽃 피는 어느 한날 막걸리 한 잔 나누며 ‘초연한 참여’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세나. 그럼 올해 우리가 함께 드리는 기도를 올리며 이렇게 봄 인사 드리네, 안녕!

“새벽의 이름으로, 눈꺼풀 열리는 아침과 나그네의 한낮과 작별하는 밤의 이름으로 맹세하노라 눈먼 증오로 내 영혼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눈부신 태양과 칠흑같은 어둠과 개똥벌레와 능금의 이름으로 맹세하노라 어디에서 어떻게 펼쳐지든 내 삶의 존엄을 지키겠다고.” (다이안 애커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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