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순천을 떠난다.

2년 반 전 순천에 내려와 여행자와 지역 청년의 사랑방으로 역할을 했던 게스트하우스를 닫고 서울로 간다. 지역에서 청년활동을 하게 된 건 답답함 때문이었다. 나이와 신상을 따져 물어 위아래를 정하고 감수성 없이 던져지는 말과 행동에 대한 불편함, 비슷한 생각을 나눌 또래 친구가 없음이 외로웠다.

나만 지역에 사는 게 답답하고 떠나고 싶을까?

귤 한 박스를 사서 사람들을 모아 질문했다. 왜 지역을, 순천을 떠날 수밖에 없을까? 이곳에서 살고 싶은데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와 떠나지 않을 수 있는 조건에 대한 대화를 시작했다. 매달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나누면서 개개인의 고민을 모았지만 이것만으로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고 느꼈다.

활동의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고 청년의 목소리를 다양한 경로로 모았다. ‘순천시 청년기본조례’ 제정을 요구하고 국회의원과 시의원들을 모시고 ‘청년기본조례’ 간담회도 열었다. 거리에서 설문조사를 하고 다양한 상황과 분야에 있는 청년그룹 인터뷰도 했다. 순천청년 100명이 모여 정책제안을 하는 1박2일 캠프도 진행했다. 청년정책아카데미를 진행하고 거버넌스 파트너인 순천청년정책협의체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함께 했다.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한 열정과 애정으로 1년 넘는 시간을 거버넌스 기획자로 순천에 사는 또래 친구들에게 필요한 청년정책이 만들어지도록 민주적인 과정을 설계하고 실행해봤다. 나 혼자 이뤘던 것은 아니다. 청순넷(청년순천네트워크) 친구들과 순천시 공무원들의 열정으로 함께 일궈낸 열매다. 전국에서 사례발표를 하라고 불렀고 중앙지에, 라디오 방송에, 지역 방송에 나의 활동과 고민이 실렸다.

그럼에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숨만 쉬어도 한 달에 100만 원이 나간다. 집세, 보험, 핸드폰, 공과금과 식재료 구입 등 최소한의 소비를 했음에도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공익적 가치를 구현하고 민간영역에서 청년의 필요를 모아 거버넌스의 과정을 만들어간 한 청년의 노력과 시간은 사회적 인정, 또는 경제적 대가 그 무엇으로도 보상되지 않았다.

창업 역시 쉽지 않았다. 일자리를 구하려고 애썼지만 최저임금 일자리만 무수했다. 7년 정도 사회혁신 영역에서 경력을 가진 한 청년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면서 성장하고 정당한 보상을 받는 일자리를 구하긴 어려웠다.

결단이 필요했다. 안타까운 현실을 인정하고 이유 없이 눈물을 흘렸던 몇 달을 보내고서야 청년공간 운영과 청년정책 생성과 실행의 과정에서 내 역할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응원과 지지만으로는 안 된다. 활동하는 청년들의 헌신으로 만들어진 청년문화와 청년정책에 박수를 보내지만 누구 하나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짐은 나누지 못한다. 주변 사람 모두가 떠나지 말라고, 인재유출이라며 안타까워하지만 생활의 문제는 개인의 몫일뿐이다.

판을 만드는 활동가이자 기획자에게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지역사회의 변화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기성세대들이 해야 하는 역할 아닐까. 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청년들의 미래이고, 이는 곧 순천의 변화를 견인할 동력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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