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대장 존』/ 존 버닝햄 글, 그림 / 비룡소

▲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이제 곧 3월이다. 방학 내내 밤늦게 자고 해가 중천에 뜬 뒤에야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던  아들 녀석의 새 학기가 걱정된다. 느슨해진 몸이야 조금 더디더라도 천천히 제 자리를 찾아갈테지만, 규칙과 공부 외에 아이들의 딴 생각엔 관심 없는 학교가 그 시간을 기다려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데, 나 역시 성실해보이지 않는 녀석의 생활 방식에 딴죽을 걸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 또는 교사로 대표되는 어른들의 권위에 눌려 몸과 마음을 움츠리며 권위에 복종하면서 자라길 바라지도 않는다. 머리 모양과 옷차림에 관한 신체적 정신적 규제, 언어폭력과 체벌, 징계와 처벌까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방적인 가르침 속에서도 자기만의 세계를 잃어버리지 않으며 뚜벅뚜벅 걸어가는 씩씩한 ‘존’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존이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선다. 해가 막 뜨기 시작한 이른 시간이다. 눈도 채 뜨지 못한 채 새벽길을 걸어간다. 해가 뜰 무렵부터 집을 나서야 하는 걸 보면 학교까지의 거리가 꽤 먼 것 같다. 존은 학교에 늦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한다.
 

 

학교 가는 길 하수구에서 나타난 악어는 불쑥 나타나 존의 책가방을 덥석 문다. 악어에게 장갑 하나를 던져주고서야 겨우 책가방을 찾아 허겁지겁 학교로 달려간다. 다음날 서둘러 학교에 가는 존에게 이번에는 사자가 나타나 바지를 물어뜯는다. 간신히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 사자가 심드렁해져서 돌아갈 때까지 나무 위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 또 지각이다. 다음날 해뜨는 시각에 존은 또 서둘러 학교로 간다. 이번엔 다리를 건너는 존에게 갑자기 커다란 파도가 밀려와 덮친다. 파도가 가라앉고 물이 빠질 때까지 난간을 붙잡고 매달려있다 허겁지겁 학교로 달려간다. 역시 오늘도 지각이다.

결코 존이 의도한 일이 아니었지만 매번 존은 지각을 하고 만다. 교사에게 존에게 일어난 일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지각을 했다는 결과만 있을 뿐이다. 교사는 검은 학사모와 검정 가운을 입고, ‘존 페트릭 노먼 맥헤너시’라고 철저히 객관적 존재로서 아이 이름을 부르고, 300번, 400번, 500번 반성문을 쓰라는 벌을 내린다. 마치 판사처럼 권위주의적인 교사 앞에서 아이들은 ‘피고자’다. ‘증언’하듯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지만,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강력한 처벌 앞에 놓인다. 존의 이야기는 거짓말로 규정되고 격리시켜 반성문을 쓰게 하는 벌을 받는다. 또 거짓말하면 회초리로 때리겠다고 겁까지 준다. 존이 학교 가는 길에 만난 악어가 사실은 도룡뇽에 불과 할지라도, 덤불 속에서 불쑥 나타난 사자가 사실은 동네 개일지라도, 다리를 덮친 산더미 같은 파도가 사실은 조그만 개울물에 불과 할지라도 이러한 상황들은 존에게 찾아온 어려움이었고, 당황스러운 순간이다. 장갑을 잃어버리고, 바지가 찢어지고, 옷이 물에 젖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지각을 하게 되어 누구보다 존은 속상하다. 그런데, 존이 학교에 늦은 이유를 설명하는데도 믿지 않는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교사는 존에게 관심이 없다. 단지 모두가 지켜야 할 규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에 화가 날 뿐이다.

존이 또 학교에 가려고 길을 나선다. 이번엔 가는 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제 시간에 도착한다. 앗! 그런데 “존 페트릭 노먼 맥헤너시, 난 지금 커다란 털복숭이 고릴라한테 붙들려 천장에 매달려 있다. 빨리 날 좀 내려다오.” “이 동네 천장에 커다란 털복숭이 고릴라 따위는 살지 않아요, 선생님.” 어른들의 권위주의적 지배를 향한 조롱이다. 결말에 이르러 교사의 위험을 모르는 척하는 통쾌한 복수는 쉽게 풀리지 않는 교사와 학생, 어른과 어린이 사이의 단절된 관계를 잘 드러내 보여준다. 위계적인 질서와 구조 속에서는 서로를 모르는 척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 보여 마음이 답답하다. 그러나 어른이 아닌 어린이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려고 하고, 어린이의 마음을 위로하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존 버닝햄의 말처럼 “교사가 서까래에 매달린 고릴라에게 보복을 당할 때 대부분의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권위주의에 대해 많은 통찰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권위주의적 위계질서의 가장 아래쪽에 존과 같은 어린이가 있다. 학교 가는 길이 멀고 자신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는 교사 때문에 힘들었지만, ‘다음 날에도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학교에 가려고 길을 나’선다. 조금이라도 자기 의지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보려고 길을 나서는 아이들을 응원하며 그 길에 함께 하려고 노력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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