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타면 가끔 정치평론가를 능가할 정도의 택시기사를 만날 수 있듯, 미용실에 가면 그 동네의 재미있는 정보가 오가는 곳들이 있다.

미용실 수다는 재미있다. 한 달에 한 번, 아니면 적어도 두 달에 한 번은 꼭 가야하는 곳이 미용실이다. 우리 아파트에는 누가 이사를 오고 가는지, 누구네 집에 강아지가 입양을 왔는지, 새로 생긴 아울렛 상품이 좋은지 나쁜지, 교육에서 장바구니 물가까지 주제도 다양하다. 손님들의 수다에는 우리들의 삶도 함께 묻어 있다.

순천시 연향동 대주파크빌 상가에 이름을 기억하기 쉬운 ‘파크빌 미용실’이 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유일한 미용실로 휴일마다 손님들로 북적인다. 이곳은 고흥이나 여수 등 인근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버스를 타고 올 만큼 미용 기술로 입 소문이 난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개업한지 벌써 20년이 되어간단다. 한가할 때는 세상 이야기에 야쿠르트 빨대가 쌓이기도 하는데 동네 사랑방임에 분명하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사장님과 직원은 부부인데, 두 사람 모두 서로 사장님이라고 주장하니 아직 서열정리가 끝난 것 같지 않다. 이 미용실에는 또 하나의 직원이 있다. 문지기 또는 터줏대감마냥 입구를 지키는 웰시 코기 강아지이다. 얌전히 앉아 있는 강아지는 사람으로 치면 선비처럼 근엄하다. 단골손님이 오면 슬그머니 일어나서 인사를 한다. 푸들처럼 깡충거리지 않고 꼬리로 한번 툭 치고 가는 것이 예쁘다.
 

▲ 황순탁. 구영애 부부이영애보다 우리아내가 더 예쁘다는 남편과 살아가는 재미에 늙지도 않는 부부

순천에서 첫 남자 미용사로 개업했다는 사장님의 경력답게 미용사로서 자부심도 강하다. 이 부부는 고객과 손님으로 만나 데이트를 시작했고, 나중에 아내도 미용을 배워 이제는 직업마저 같아졌다. 벌써 서른이 되어가는 큰아들이 있다고 하니 나이를 짐작할 수는 있으나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고객들의 디자인 요구를 눈치 빠르게 보아 주는 아내, 궂은일을 꼼꼼하게 맡아주는 남편은 결혼하면서 같이 미용실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하루도 떨어진 적이 없다고 한다. 의견차이가 날 듯 싶으면 대부분 아내가 참아준다고 한다. 남편은 또 그게 고마워 서로의 의견을 더 존중하게 된다고 하니 천생연분인가 보다.

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은 ‘인사’라고 한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첫 째 덕목이 인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든 먼저 인사를 한다. 욕심없이 살아서 특별히 힘든 적은 없었다고 한다. 어쩌나! 나는 그게 어렵다.
 

▲ 셋째 아들 초코라고 불리는 이 녀석도 출퇴근을 같이 한다.
▲ 강아지 옷 뜨개질도 직접 한다. 아들이니까 ㅎㅎ

머리를 하지 않아도, 특별한 용무가 없어도 모두가 부담 없이 모여드는 동네 미용실.

사장님은 오늘도 골목길 쓱 지나가는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신다.

“선생님, 커피 한잔 하고 가세요”

작은 것 하나도 나눌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이 있어서 파크빌 미용실이 언제나 북적거리는가 보다. 살다보면 마음이 실타래처럼 꼬일 때가 있다. 미용실에 들러 잠시 머리를 맡기면 헝클어진 마음이 머리와 같이 가지런해 진다. 거기에 사는 이야기도 좀 풀다보면 어느새 두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두 분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서, 동네 사랑방인 ‘파크빌 미용실’을 지켜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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