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우 순천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2016년 11월과 2017년 1월의 한국을 감싼 공기는 전혀 달랐다. 시간으로 보면 두 달에 불과하나, 그 거리를 재면 하늘과 땅만큼 벌어져 있다. 세상은 그만큼 빨리 변했다. 세상을 채운 사람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니고, 단지 마음먹은 농도가 빠르게 옅어졌다고 할까.

2016년 11월에는 박근혜 일당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 거세었지만, 2017년 2월에는 분노가 땅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사람을 휘감았던 분노의 농도는 옅어졌고, 서바이벌 대선 게임이 땅 위에 돗자리를 펼쳤다.

저들은 옅어진 분노의 농도를 보란 듯이 즐겼다. 청와대는 불법적 봉쇄로 특검의 압수수색을 막고, 황교안의 대통령 ‘질’(‘놀이’가 아니다)은 일상이 되었으며, 국회의 민심 이반은 여전하고, 법관의 퇴행적 판결도 꾸준했다. 국정교과서를 강행하고,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며, 헌재의  탄핵 심판을 요리조리 방해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날품팔이 꼴통 몇몇을 제외하고는 누구 하나 박근혜 복귀를 꿈꾸지 않았음에도, 박근혜 일당의 깨끗한 청소를 자신할 수 없게 되었다.

분노의 농도가 옅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분노한 시민은 사실 모래알과 같았다. 모래알처럼 하나하나는 단단한 돌이지만, 바람에 스르륵 흩어져 버렸다.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모으고 실시간으로 의견을 교류해서, 한 명 한 명이 모두 정치평론가를 능가하는 식견을 가졌지만, 서로를 결합한 끈은 느슨했고 항상 엮여있지도 않았다. 서로 분리되어 있으니 쉽게 흩어져버렸다.
 

 

흩어진 시민은 자신의 요구를 조직하지도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지도 못했다. 기성 정치인의 움직임에 민감하고, 주어진 정치 일정에 끌려다니며, 던져진 여론몰이에 무방비 상태다. 문재인의 대세몰이나 이재명의 사이다 발언, 안희정의 대연정, 헌재의 탄핵일정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예의주시한다.
 

개인으로 고립된 시민은 기성 정치판이 던져준 현 상황을 고정불변의 상수로 취급하고, 자신의 힘을 홀연히 망각해버렸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힘으로 수개월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대통령 탄핵 상황을 만들었지만, 대선 게임판으로 옮겨지자 시민의 힘은 철 지난 잡지 신세가 되고 있다.
 
고립된 개인이 조직된 시민으로 전환하는 계기는 무엇일까? 나아가 조직된 시민의 결집체이자 시민 권력의 담지자인 의회와 정당이 고유한 제 역할을 다 할 방안은 무엇일까? 우리가 개돼지가 아님을 증명하는 촛불은 아직 꺼질 때가 아니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개돼지가 아닌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하다. 얼어붙은 땅 속으로 들어간 분노가 아지랑이 따라 다시 피어올라야 할 이유다.

순천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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