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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있는 힘을 다하는게 항상 최선은 아니지요?『구룬파 유치원』/ 니시우치 미나미 글, 호리우치 세이치 그림 / 한림출판사
심명선  |  isee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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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호] 승인 2017.02.04  16: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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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면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눈 보기 어렵다는 순천에 눈도 제법 내리고, 섣달 추위라 그런지 바람이 무척 거세다. 이제 몇일 후면 설날이다. 해가 바뀌고 새로운 각오를 다짐한 지 어느 새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까치 설날’말고 ‘우리 설날’을 주장하며 다시 각오를 다진다. 올해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자주 가야겠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야겠다, 글쓰기를 꾸준히 해야겠다, 숨 가쁘지 않고 여유있게 일해야겠다 등등 생각나는대로 적어본다. 늘 작심삼일이 되기 일쑤로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긴 하지만, 품었던 계획을 온전히 실천해내지 못한다해도 해보려는 노력은 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음 속에 머물던 그 다짐들이 때론 책임과 강박으로 다가올 때도 있지만, 흘러가는 시간에 내맡긴 삶이 갈 곳 몰라 헤매는 순간 희미한 불빛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늘 익숙하기만 했던 그림책 한 권이 잠시 멈칫하게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적어 내려 간 다짐들은 물론 내 머리에서 떠올리고 실행될 계획이긴 하지만, 나의 ‘우격다짐’으로 실천 가능한 것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룬파 유치원』. 그동안 아들 녀석에게 뿐만 아니라 도서관에서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읽어주기도 하며 적지 않게 손에 들었던 책이었지만, 제목을 들어도 딱히 기억나거나 떠오르는 장면은 없었다.

외톨이로 살아가던 덩치 커다란 코끼리 구룬파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세상에 나가 일을 하게 된다. 구룬파는 온 힘을 다해서 일해 보지만, 마음과 달리 “구룬파야, 이제 그만두어야겠다”라는 말을 듣게 되고 쫒겨난다. 눈물이 나려던 그때, 아이가 열 둘이나 되는 엄마를 만나게 되고, 도움을 청한 엄마를 도와주게 된다.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구룬파 유치원>에서는 구룬파가 만든 커다란 비스킷을 나눠 먹으며 구두에서 숨바꼭질도 하고, 물이 가득 찬 접시에서 수영도 할 수 있다. 이제껏 ‘외로워, 외로워’하며 울먹이던 구룬파는 아이들과 함께하며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 『구룬파 유치원』/ 니시우치 미나미 글, 호리우치 세이치 그림 / 한림출판사

외톨이 구룬파가 더 이상 외롭지 않고 행복하게 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내 마음은 왠지 답답하고 쓸쓸했다. 정글에는 냄새 때문에 모두 코를 하늘로 향하면서도 구룬파를 위해 대책회의를 열고 강으로 데려 가 씻겨주며 일을 할 수 있게 도와 주는 속깊은 친구들이 있었다. 다 컸는데도 빈둥빈둥거리고, 때때로 훌쩍훌쩍 울기도 하는 덩치 큰 구룬파에 대해 불만들도 있었지만, 구룬파의 앞날을 걱정하는 친구들이 구룬파를 ‘왕따’시켰을 리 없다. 그런데 도대체 왜 오랫동안 외톨이었을까? 뺀질거리지도 않고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성실한 구룬파는 왜 가는 곳마다 번번이 쫒겨났던 것일까?

혹시 덩치 큰 구룬파가 ‘있는 힘을 다한’게 문제가 된 것 아닐까 거꾸로 생각해 본다. 구룬파가 만든 비스킷은 너무 커다랗고 비싸서 아무도 사지 않았고, 너무 큰 접시는 연못 같아서 그 접시에 담을 정도로 많은 우유가 없었다. 너무나 커다란 구두는 아저씨가 빠질 정도여서 누구도 신을 수 없었고, 너무나 커다란 피아노는 웬만큼 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커다란 자동차는 아무도 운전을 할 수 없었다. 있는 힘을 다한 구룬파 입장에서야 풀이 죽고 전처럼 눈물이 날 만큼 억울할 노릇이지만, 일이든 사람 사이의 관계든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그것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건 아닌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있는 힘을 다 한’ 후에 함께 한 상대에게서 듣게 되는 질타는 나 자신을 겸허하게 돌아보게 하는 것보다 상대를 원망하는게 더 쉬운 법이라 자칫 관계를 망치게 되는 원인이 될 때가 많다.

마침내 구룬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그동안 쓸모없었던 구룬파의 비스킷과 접시와 구두와 피아노와 자동차는 <구룬파 유치원>에서 더할 나위없이 쓸모있는 것들이 된다. 유치원에서 구룬파 역시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그대로 풍경의 일부가 된다. 자연스럽다.

당연히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적재적소가 있다. 필요로 하는 것과 쓰임이 맞아 떨어질 때 문제가 해결되고 평안해지는 것도 분명하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제 능력에 맞는 역할을 찾아 있는 힘을 다하는 것만큼이나 관계 속에서 조화를 고민하는 것도 중요한 덕목인 것 같다. 나의 넘치는 에너지가 혹여 나와 관계 맺고 있는 누군가에게 폭력적으로 다가가서는 안되는 일이니 말이다.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는 최선이 아니라 여유있게 외롭지않게 사는 한해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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