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는 국가도 시장도 아닌 시민의 참여로 경제위기와 불평등을 극복하고, 협력과 연대, 평등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 지구촌의 새로운 행진이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협동조합 사례로 기록된 영국의 로치데일은 조합원 각자의 이익이 협동조합의 이익으로 귀결되었다.
순천광장신문은 순천 사회적경제의 희망을 여는 바탕은 연대와 협동이라는 생각으로 순천의 사회적경제 기업을 소개하는 지면을 시작한다. 좋은 시스템은 개인에게도 이익이 되고, 사회 전체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도시민이 자본과 노동을 제공하는 융합농경 지향
 

“할머니 풀 베어 줄께요. 제초제 하지 맙시다”

이호성 씨가 문성마을에 들어온 뒤 1년 넘게 외치고 다닌 말이다. 외지인이 농약을 하지 말자고 한다고 통할 리 없으니, 풀을 베어 드릴테니 제초제를 사용하지 말자고 설득했다. 예초기를 1년에 한 대 씩 사야 할 정도로 매일 마을의 풀을 베었다. 그래도 잡초를 이기지 못하고, 제초제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급기야 그는 토지를 임대해 3년 동안 묵혔다가 농사를 짓기도 했다. 처음에는 오해를 하는 사람도 많았다. 풀을 베고 있으면 “저것이 돈이 어디서 나오니까 하지…”라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가끔 측은하게 보는 사람도 있었다.

이호성 씨는 백화점에서 유통업무를 담당 했는데,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던 때 병이 찾아와 건강을 위해 시골을 찾았다. 과로로 쓰러지는 등 온 몸이 아파, 종합병원이 되어서야 “내가 왜 살지?” 하고 돌아보게 되었다. 한적한 풍광을 찾아 들어온 시골은 비닐봉지와 농약병이 뒹굴고 있었다. 일단 살기위해 농약 냄새를 안 맡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풀베기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자연을 벗 삼은 몇 년 만에 몸도 마음도 조금씩 회복되었다. 게다가 동네 사람들의 마음까지 얻었다.

현재 주암면 문성마을은 대한민국 농업이 주목할 만한 곳이 되었다. ‘두레농업’이라는 마을 공동 작업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마을 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공동경작을 통해 2014년에 가구당 200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 이후 옻 된장, 와송 음료, 우슬 식혜, 절임배추, 꾸러미사업 등을 통해 소비자와 교류하며 안정적인 소득을 이루겠다는 꿈을 만들어 가고 있다.
 

▲ <사진1>: 방문객들을 위해 도넛 만들기 체험을 한다. <사진2>: 마을 중간에 놓여있는 장독대 <사진3>: 인의지 회원들이 1년에 세 번 찾아와 농사를 돕는다. <사진4>: 문성마을에서 초등학생들이 두부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친구 17명을 소집해서 만든 인의지(人以地)주식회사는 작년 말 회원이 2400명이 되었다. 소비자도 농산물을 못 믿는 판국에 믿게 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돈을 30만 원 내면, 1년에 세 번 방문해야 생산물을 보내준다. 같이 농사를 짓는 것이다. 3~4월 파종 때 딸기체험이나 감자를 심고, 여름휴가로 와서 놀고, 가을에는 수확하러 온다. 오가며 만나고, 만나면 신뢰가 생긴다. 농민들 힘든 것을 보고, 내가 먹은 농산물을 확인한다. 이렇게 안 팔리면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하는데, 대부분 팔린다. 감자를 캐면 보통 40%는 버리는데, 회원들이 오면 순서대로 가져간다. 도시민에게 자본과 노동력을 제공하라는 도시융합농경을 지향한다. 정회원의 숙식은 무료다.

지금 문성마을은 농지의 70%가 농약을 안 한다. 판매가 보장되는 콩은 100% 무농약이다. 판매를 책임지니까 농민들이 따라준다. 콩은 4000원에 수매하는데, 가공을 하면 4만 원이 된다.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다. 그가 처음 문성마을에 들어올 때는 집 일곱 채가 비었는데, 지금은 25가구가 모두 살고 있고, 더 들어오고 싶어 대기 중인 사람도 있다. 마을에 젊은층이 들어오고, 2014년엔 전남 행복마을 콘테스트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인/터/뷰- 문성마을기업 이호성 사무국장
“마을마다 보물이 있다. 발견하지 못했을 뿐”

▶ 마을운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동력은?
2008년 문성마을에 들어온 뒤 2009년에 시작했다. 혼자서 부단히 뛰어 다녔는데,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을 생활공동체지원센터가 지원했다. 2013년 주민역량강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그것의 영향이 컸다. 2014년엔 농어촌 활성화지원센터의 교육을 받았다. 두 차례에 걸친 교육을 받으면서 구태, 관습을 다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 마을에서 가장 의미있었던 활동은?
우리 마을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두 명 있다. 다른 사람과 일하면 부딪치니 일자리가 없다. 두부를 생산하는데, 두부 뚜껑을 인쇄하는 대신 스티커를 붙이는 방식으로 일자리를 만들었다. 그동안 방에만 누워 있었던 사람이 일을 하면서 거동하게 되었다. 지금은 마을의 자부심이다.

▶ 마을기업을 이끄는데, 장점이 있었다면?

▲ 문성마을기업 이호성 사무국장

유통 분야에 20년 넘게 근무해서 고객이 무얼 원하는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접근해 갈 수 있는가를 먼저 보게 된다. 문성마을의 옻나무 숙성 간장은 주민역량강화 보물찾기를 위한 동네 한바퀴에서 나왔다. 상품이 뒷받침했고, 상품을 유통시킨 것은 경험을 접목한 것이다. 사실 마을마다 보물이 있는데, 찾아내지 못한다.

▶ 몸이 아팠다는데, 어떻게 열심히 일할 수 있었나?
농민을 착취한 장본인으로 죄 값을 치르는 거다. 유통을 하는 사람은 농민들의 성향과 습성을 공부한다. 상대를 알아야 물건을 잘 살 수 있으니까. 주암에 1000만 원 들고 딸기 사러 오면 농민들은 몫 돈을 챙기고 빨리 끝내고 싶어 한다. 농민이 하우스를 세 동에 1000만 원에 팔려고 내놓으면 “네 동에 1000만 원 하자”고 제안해도 받아들인다. 소비자에게 낮은 가격에 팔면 우리 물건을 산다. 그 이익은 사업주들이 다 챙긴다. 이익을 많이 내는 사람이 잘한다고 칭찬해주니 그 맛에 일하다 골병이 들었다. 아파서 농촌에 돌아와 보니 내가 얼마나 몹쓸 짓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농민들 관절이 무너진 것을 보며 죄를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일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생산은 문제가 없는데, 소비자가 구매하고 돈을 보내지 않아도 돈을 보내달라고 전화할 사람이 없다. 일할 젊은 사람이 없으니 홈페이지를 만들어도 가동도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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