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우
순천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해룡천을 따라 걸어서 출근한다. 오늘 아침에 보니 청둥오리가 제법 많이 놀고 있다. 이렇게 많이 와 있을 거라고 예상을 못 했다. 자연은 사십 대 여인처럼 소리소문없이 불쑥 자신의 얼굴을 바꾼다. 그런데 요즘 세간을 맴도는 법령들 또한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연과 법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첫째로 그 둘 다 우리와 늘 함께한다. 둘 다 우리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으니, 있는 줄 잘 모르고 산다. 한국의 법령은 헌법을 중심으로 법률 1,397개를 비롯해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 총 4,644개다. (2017년 1월 현재) 우리를 촘촘하게 에워싸고 있다. 일상생활과 분리할 수 없는 하늘과 땅, 비와 바람처럼 법령도 우리와 함께한다.

둘째로 자연과 법은 눈에 쉽게 띄지 않는다. 이 둘 다 의도적으로 살펴야 알아챌 수 있다. 늘 걷던 해룡천변이라도 눈길을 주지 않으면 청둥오리가 얼마나 많은지, 목련 봉오리는 맺혔는지 모르고 지나친다. 걸음을 멈추고 옆을 돌아보거나, 눈을 옮겨 땅이나 하늘을 보아야 알 수 있다. 법이나 제도 또한 곰곰이 살펴야 우리에게 어떤 힘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해룡천에서 청둥오리가 놀고있다

셋째로 이 둘은 일정한 흐름이 있어서 쉽게 바꿀 수 없다. 자연의 흐름이 하루 이틀, 한두 해의 충격으로 변하는 건 아니다. 과도한 힘이 수십 또는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지속하여야 비로소 흐름을 바꾼다. 인구의 증가, 화석 연료의 사용, 열대 우림의 파괴 등 견딜 수 없는 힘이 쌓이고 쌓여 자연의 흐름이 변한다. 법이나 제도 또한 생활의 불편부당함과 시민의 열망이 쌓여서 변화가 일어난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변화란 먼 미래의 일이나 허황된 꿈 정도로 취급된다.

자연과 법, 둘 다 우리의 삶에 개입하지만, 중요한 점이 다르다. 도덕경에 나오듯, 자연은 불인(天地不仁-천지불인)하다. ‘자연은 어질지 않다’, ‘행함이 없다’ 등으로 해석하며, 자연은 의도하지 않는다고 새긴다. 하지만 법이나 제도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시민의 자유보다 반공 국가의 안녕을 우선하여 만들어졌듯, 선거법은 시민의 의도가 투표 결과에 제대로 반영되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이번 기회에 선거법만큼은 투표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청둥오리 수컷은 번식기가 되면 머리는 빛나는 녹색으로 변하고, 목엔 하얀 테두리를 두른다. 번식이 끝나면 원래대로 암컷처럼 흐린 갈색으로 돌아간다. 지금 광장의 변화 열기는 30년만인 듯 보이지만, 100년 만의 기회일 수 있다. 우리는 청둥오리와 달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순천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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