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가게에 아름다운 사람 김은영

11월 3일 목요일, 11월 10일 목요일, 11월 12일 토요일, 그리고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 우리의 11월은 뜨거웠다.

다급하게 준비한 제1회 촛불집회 때는 흔한 종이컵에 초만 꽂아서 사용했다. 그중에 누군가는 ‘민주주의 만세’라고 또박또박 새겨진 컵을 들고 있었다. 이건 뭐지? 시민들이 나도 “글씨 있는 컵을 주세요” 라고 했지만 본부에 없는 컵이었다. 글씨의 주인공을 수소문해 보았더니 아름다운 가게의 김은영 간사였다.

▶ 촛불집회에는 어떤 마음으로 참여했나요?

재능으로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김은영씨

정확히 30년 전 1986년에는 가치있는 삶에 대해 고민하던 새내기였다.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 86학번으로 시작한 대학생활, 나도 모르게 어느새 거리의 학생이 되어 있었다. 그 시절 금남로는 나의 캠퍼스였고 87년 6월 항쟁의 거리를 지켰었다. 하지만 이제 세월이 흘렀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정의로움은 남아있지만 실천과는 거리가 먼 그저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다들 그렇게 산 것 같다. 그러다보니 세상이 거꾸로 가 있었다. 우스갯소리지만 사우나에서 아줌마들이 촛불집회에 가자는 웅성거림을 듣고 나도 참여했다.

▶ 컵에 써진 글씨가 예사롭지 않아요. 필체의 비밀은 ?
그건 사실 캘리그라피(Calligraphy)라고, 정확히 말하면 서예는 아니다. 손으로 그린 문자라는 뜻으로 글자 자체의 미를 표현하는 장르이다. 시와 글씨에 관심이 많아서 배우기 시작한 것이 벌써 4년째이다.

 

▶ 컵에 글씨를 쓴 이유는?
꽃 같은 아이들이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라고 하는데 많이 미안했다. ‘아 ~~ 미안하다! 너희들을 거리로 나오게 해서 미안하다!’ 눈물을 닦으려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붓펜이 나왔다. ‘그래! 쓰자 컵에 글을 쓰자!’ 그렇게 첫 집회 하던 날 촛불 대신 붓을 들게 되었다. 컵에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더니 모처럼 후련했다. 그런데 집회가 끝나고 나면 컵이 버려진다. 시민들이 집으로 컵을 가져간다면 쓰레기를 줄일 수도 있고 일주일동안 컵에 새겨진 글씨를 보면서 다음집회를 기다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테이크아웃용 큰 컵 200개를 사서 동료(조영석 간사님, 서선향 선생님)들과 함께 글씨를 미리 쓰기 시작했다. 칭찬 받아 좋긴 하지만 이것은 나의 표현 방법일 뿐이다.

 

그렇다. 촛불 현장에는 수많은 은영씨가 있다. 어떤 이는 사진을 찍고, 노래를 하고, 깃발을 들고, 팔던 우산을 내어주고, 방석을 만들어 온다. 또 다른 이는 커피를 끓여온다. 이렇게 여러 색깔의 김은영들이 만든 촛불은 횃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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