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에는 사람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 김성옥 조합원. 비단과 생활해서 그런지 미소도 비단같다.

봄비가 오는 날, 숨이 차오르는 한여름의 어느 날, 낙엽이 흩날리는 어느 가을 날, 그리고 첫눈 오는 날, 우리는 모두 다른 옷을 상상 할 수 있다.

꼭 날씨만 옷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특별한 날을 맞이한다. 첫 돌부터 시작해서 처음 학교에 입학 하는 날, 졸업 하는 날, 결혼하는 날 그리고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장례식에서도 우리는 그날에 맞는 옷을 입는다. 이렇듯 옷에는 우리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다.

첫 돌에 대부분의 아기들은 그날 인생의 첫 예복인 한복을 입는다. 그 다음은 결혼식이다. 결혼식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이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 진정한 내 인생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날이다.

평생을 두고 한 번도 입지 않을 것 같은 한복이지만 그날만큼은 누구나 입는다. 고운 녹의홍상에 하얀 버선을 신은 신부는 그날의 주인공이다. 역전에서 이마트 사이에 ‘다홍치마’라는 한복점이 있다.

매일 이곳에서 결혼을 앞둔 주인공들의 새 출발을 도와주는 김성옥 씨를 만났다.

▶ 한복점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 바느질을 잘 해서 한복사업을 하게 되었나요?

전혀 아니에요. 지금은 예전처럼 솜씨 좋은 사람들이 바느질로 하루에 한두 벌 만들지 않아요. 기성복처럼 치수대로 이미 만들어져 있지요. 색도, 디자인도 다양하고, 한복디자인도 유행을 많이 탄답니다. 나는 바느질에 소질이 있다기보다 손님들의 취향을 미리 아는 수완이 있는 것 같아요.

▶ 언제, 이 사업을 시작했나요?

20년 전 순천에 와서 살았는데, 처음에는 의류업을 했었어요. 그때만 해도 한복은 대부분 맞춰 입었지요. 그런데 한복도 유행을 타기 때문에 비싸게 맞추고도 해가 지나면 다시 입기어려울 때가 많아요. 보통의 경우 1년에 서너 차례의 집안 행사에 한복을 입는데, 매번 새 한복을 맞추기 힘드니 안 입게 되죠. 그래서 대여사업을 해보면 괜찮겠다 싶어서 시작했는데 벌써 여러 해가 되었네요.

▲ 요즘엔 디자인도 색깔도 화려한 퓨전 한복들이 많고 입기에도 편리하다. 결혼식 뿐만 아니라 다양한 행사에서 한복수요가 늘고 있다.

▶ 매일 비단옷 속에서 예쁜 것만 보는 생활은 어때요?

울긋불긋 꽃 대궐에 산다고 내가 꽃이 되는 것도 아닌데, 항상 즐겁기만 하겠어요? 내가 만나는 손님들은 본인들이 주인공이 되다보니 특별한 대접을 받고 싶어 해요. 속옷에서부터 겉옷, 버선, 신발, 장신구까지 아주 세심하게 만족시켜 드려야 해요.
일생에 단 하루, 그날만큼은 예쁘게 보이고 싶은 날이니까요. 언제 어느 때나 환한 미소로 상냥한 말씨로 손님을 만나야 하니 나를 묻어둬야죠. 세상에 쉬운 일은 없어요. 그래도 사업이 잘되니 온가족이 한복 사업에 동참하게 되었어요. 군산, 익산, 광주에 각각 가족 매장이 있어요.  친지들이 우리를 한복 패밀리라고 하죠.

▶ 사람들이 요즘 한복을 많이 입나요?

예전에는 한복은 결혼할 때 입는 옷, 평생 한번 입고 나면 다시는 입을 일이 없는 옷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요즘 많이 달라지고 있어요. 그 예로 전주 한옥마을이나 고궁에서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이 많잖아요. ‘한복 놀이단’이라는 동호회도 있다고 해요. 순천도 낙안읍성에서 그런 놀이문화를 지원해주면 좋겠어요. 한복을 입고 오면 입장료를 무료로 해주면 신나지 않을까요? 우리의 전통의상이니 입어야 한다는 의무감 보다는 입고 싶어서 입는 옷이 되면 좋겠어요. 퓨전 한복은 입기에도 편하거든요.

▶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언제죠?

어머니가 군산에 사셨는데, 8년 전에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앞만 보고 살다 보니 그리 멀지도 않은 곳에 계신 어머니에게 손수 옷 한 번도 지어 드리지 못했어요.

내가 살만해지니 어머니가 내 옆에 안계시네요. 참 속상한 일이에요. 그래서 비슷한 연배의 어머니들을 만나면 가끔 무료로 옷을 대여해드려요. 내 엄마도 이렇게 좋아하시겠구나 하는 마음이죠.
 

▲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비슷한 나이의 할머니들에게 더 잘해드리고 싶다.

최근에 순천에서 활동하는 실버합창단 단원들께 옷을 제공해드렸는데, 꽃분홍 저고리를 입으니 할머니들도 곱더라구요. 그럴 때 작은 보람이 있어요.

첫날밤에 소박을 맞은 신부가 50년이 지나도록 녹의홍상에 족두리를 벗지 않고 신랑을 기다리다 재가 되었다는 질마재 신화(서정주의 산문시)가 있다. 재가 되어서도 초록 다홍으로 그 색을 지켰다 하니 혼례복에 담긴 신부의 안타까운 마음이 다가온다. 혼례복, 상복, 교복, 작업복 수많은 옷은 우리의 삶과 함께하고 있다. 그중 혼례는 가장 행복한 이야기일 것이다. 김성옥 씨는 오늘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갈 행복한 주인공 옆에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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