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랬다.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은 ‘노동’이고 좋아서 하는 것은 ‘일’ 이라고.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그것도 중년을 넘어선 나이에 그런 일을 찾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결국 찾아낸 사람도 있다. 건축업, 여행사, 원예치료사까지 공통점이라곤 없어 보이는 세 가지 일을 해내고 있는 특이한 이력의 조수연 씨를 만났다.

▶ 자신을 소개한다면?
순천시 매곡동에서 나고 자랐다. 7남매 중 여섯 째 딸이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취업이 우선이라는 부모님 뜻을 거스르지 못하는 착한 딸이었다.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지만 나는 별로 그립지 않다.

칠남매가 북적거리는 집은 꿈 보다는 양보를 먼저 알게 해주었다. 그렇게 열아홉에 사회에 나와서 세상을 일찍 배웠지만, 좀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은 쉽게 포기가 되지 않았다. 결국 모았던 돈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 지금 하는 일은?
일찍 세상을 배운 탓에 건축업을 시작해서 경영을 해왔다. 예쁜 두 딸들도 키우면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눈과 입을 닫고 싶은 순간이 있다. 나는 ‘너무 일찍 내 몫을 포기하고 양보하면서 살았구나, 그것이 습관이 되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더 많은 후회를 하지 않고 살기 위한 선택을 했다. 안정적이었던 일을 그만두고 여행업을 시작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여행은 즐거운 긴장감을 준다. 여행이 일이 되니 참 좋다.

▶ 너무나 뻔한 질문인데, 취미는?
망설임 없이 등산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과 친구들과 지리산을 종주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어쩌다 산에 오르게 된 후 그 매력에 푹 빠져 주말에는 거의 매주 산으로 향한다. 3년 전 한라산 등반 때 사고로 발목을 다쳐서 지금은 등산을 못하고 있다. 코끝에서 산 내음이 스멀거린다.

▶ 산이 왜 좋은가?
산은 언제나 나를 기다려주고 반겨준다. 나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에게 애써 복잡해지고 싶지 않고 힘들어 보이는 것도 싫다. 하지만 그곳에 가면 이내 솔직해 진다. 그곳은 겹겹이 쌓아둔 나의 해묵은 이야기를 들어준다. 가끔 어느 한곳에 풀 한포기가 보고 싶어 산행을 한 적도 있다.
 

▲ 시계반대방향 <사진 1> 크리스마스 리스(원예치료용 재료)  <사진 2> 유치원생이나 치매환자들도 만들 수 있는 작은 원예작품.  <사진 3> 본업이 여행사라서 답사다니기 <사진 4> 바빠도 촛불집회는 꼭 참여 한다 <사진 5>  나무와 꽃들이 주는 정서적 교감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 없다.

▶ 원예치료사는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
식물을 좋아하다보니 원예에도 관심이 생겼다. 정성으로 가꾼 식물이 꽃을 피우면 기쁨을 느낀다. 식물을 만지면 힘든 일도 잊혀 진다.

순천시에서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시작한다고 하여 바로 등록한 후 배우고 봉사를 다니기 시작한지 벌써 13년이 되었다. 식물을 기르는 사람은 스스로 보호자가 되어 사랑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 양육과 책임감을 배우고 문제가 생겼을 때 결단을 내릴 용기를 배운다. 어린학생들 뿐만 아니라 병원에 있는 환자들과 치매가 있는 어르신들에게도 치료봉사를 다닌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다.

▶ 지금도 꿈이 있나?
아직도 꿈이 정말 많다. 두 딸들과 치열하게 사느라, 남에게 흠을 보이기 싫어서 나에게 혹독하게 했다. 하지만 이제는 청소하지 않은 집에 친구를 초대할 용기, 요리하기 싫을 때 사먹을 용기, 아끼지 않고 옷 사 입기, 피곤한 단정함보다 작은 흐트러짐을 선택했다. 남의 이목보다는 내가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보자. 망가지자.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자.

빨리 발목이 나아서 산에 오르고 싶다. 작은 동산에 수목원을 만들어 원예치료를 적용해보고 싶다. 그리고 좀 더 있다가 마지막 꿈-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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