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에 4대 지방선거가 실시되면서 지방자치제도가 새롭게 부활하게 되었다. 1960년 4월혁명으로 실질적 의미의 지방자치제가 시작되었지만, 이듬해 5·16군사쿠데타로 무효화된 후 숱한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진 일이다. 그로부터 20여 년의 긴 시간이 흐른 지금 지방자치는 온전한 주민자치를 실현하고 있는가.

우리의 지방자치제도는 ‘주민자치’라기보다는 ‘단체자치’라 할 수 있다. 즉 주민들의 삶에 관련되는 사무를 국가나 중앙정부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의사와 책임 아래 처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치단체가 국가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된 지위를 갖고 사무를 처리하는 데 중점이 두어져 있다. 이러한 기조 아래서는 지방자치의 두 축인 집행부와 지방의회 간에 집행부, 특히 단체장에게 권한과 기능이 집중되는 반면, 주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의회는 극도로 왜소해져서 집행부에 사실상 종속되어 있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단체장 집권화 현상은 국가적으로 보면 과거 권위주의적 통치 체제의 잔재인 중앙집권화 경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집행부 쪽으로 힘이 쏠리는 이러한 현상은 우리 시에서 특히 도드라져 보인다. 순천행의정모니터연대가 지난해 순천시의원의 의정활동을 모니터링한 결과를 보면 1년 동안 조례 발의를 1건도 하지 않은 의원이 23명의 의원 중 9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의회에 상정된 안건의 90%는 단체장이 발의한 것이라고도 한다. 또 모의원의 경우 회의에 불참한 비율이 40%에 이를 정도로 본연의 임무에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게다가 단체장이 시의원 대다수가 소속된 정당의 당원협의회 회장을 맡음으로써 의회가 집행부를 견제하면서 시민의 의사를 충실히 반영하리라는 기대는 사실상 무망해 보인다.

시의회의 상황이 이러할진대 시정에서 주민자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민운동의 활성화가 절실히 요청된다. 시민단체는 시민들이 공익을 증진할 목적으로 결성한 자율적 결사체다. 오늘날 대의제 민주주의가 시민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는 데 명백한 한계를 드러냄에 따라 시민운동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또 시민단체에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한, 실무자가 의회로 진출해서 의정의 효율을 높이고, 시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데 크게 기여한 사례도 많다. 그러나 최근에는 시민단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갈수록 줄어들어 많은 단체들이 인적·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의회의 기능 부전 현상과 더불어 풀뿌리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진다.

시민단체에 대한 시민의 참여 문제는 논외로 치고, 순천시가 민간단체에 보조금을 지급한 내역을 보면 그 액수가 최근 수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도, 시가 주관한 행사와 관련된 보조금은 꾸준히 늘고 있다. 또 보조금 대부분이 직능단체나 관변단체, 대형 언론사 등에 집중된 반면, 공익을 목적으로 한 순수 시민단체에 대한 보조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시민운동에 대한 시 집행부의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시 집행부가 진심으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추구한다면, 시민단체를 풀뿌리 민주주의를 함께 실현해 나가는 동반자로 인식하고 그 활동을 적극 지원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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