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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보소와 배도사 대피소에 얽힌 이야기
김배선  |  webmaster@agora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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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호] 승인 2016.12.05  1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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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은 남도의 명산으로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는 불교문화의 중심이며, 순천사람의 주요한 삶의 터전이다. 
순천시 송광면 출신인 김배선 씨는 약 15년 동안 조계산과 그 주변 마을을 누비면서 주민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한 자료를 토대로,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이 책 주요 내용 중 일부를 김배선 씨의 동의를 받아 순천광장신문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연재한다. 편집국


보소(褓沼)의 전설

   
▲ 보소
   
▲ 김배선 향토사학자

‘보소’는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가는 등산로에서 토다리삼거리 앞 70m 거리에 있는 계곡의 절벽 아래 있는 깊은 소의 이름이다. 보소(褓沼)의 한자어 뜻은 대들보 褓(보), 늪 沼(소)이다.

‘대들보 늪’ 이라는 말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보소의 이름을 이해하려면 송광사 주변에서 구전되어 오는 전설 속 사연을 들어야 한다.

보소라는 이름에는 조선시대 척불정책으로 핍박받던 송광사 스님들의 절절한 애환과 저항의 단면이 반영되어 있다.

고려시대와 달리 조선시대에는 척불정책이 시행되었는데, 조선 초기 성종 때까지는 비교적 심하지 않았다. 척불정책은 연산군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명종 때, 고려 말 이후 승려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보우선사’를 유배시키는 등 박해가 점점 심해져 영․정조 때 극에 달했다고 한다.  

당시 승려들의 신분은 팔천(8가지 천민)에 해당되어 노예나 다름없이 공역을 해야 했다. 특히 송광사 승려들의 조계산 산중노역은 하루도 그칠 날이 없었다. 이 때 ‘보소’ 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보소’와 관련해 송광사와 인근 마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전해 내려온다.

매일 노역에 동원되어 지칠 대로 지친 승려들이 그날도 관아를 짓는데 필요한 대들보용 나무를 힘들게 운반하다가 쉬고 있을 때, 이제 다 왔다고 생각한 감독이 먼저 혼자 내려가자 한 승려가 눈짓을 하였다. 뜻을 알아차린 승려들은 낭떠러지에 있는 ‘소’를 향해 대들보용 나무를 힘껏 밀어버렸다. ‘소’로 빨려 들어간 나무는 모두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나무가 없어진걸 알게 된 감독이 승려들을 상대로 아무리 조사를 해도 증거를 찾지 못하다가 승려들을 괴롭히며 찾아내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견디기 힘든 승려들이 기원을 했더니 며칠이 지났을 때 십리 밖 동강(桐江) 곡천다리 밑 ‘삼밧소’에서 대들보가 떠올랐다고 한다. 그러자 승려들을 괴롭히던 감독은 두려운 마음에 어디론지 떠나 버렸고, 이때부터 대들보가 빠진 소라 하여 ‘보소’라 부르게 되었단다.


배도사대피소의 내력
 

   
▲ 배도사 대피소

‘배도사 대피소’는 조계산의 선암사와 송광사를 오가는 길의 중간지점인 지경터(보리밥집 부근)에 있다. 1983년에 세운 대피소이다.

조계산은 1979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당시에는 조계산을 찾는 등산객이 휴일에도 십 수 명에 불과할 정도였다. 그러나 등산객이 나날이 늘어나면서 등산객의 안전을 위하여 첩첩산중인 이곳에 대피소를 세우게 되었다. 하지만 이름은 없고 그저 대피소라고만 불렀다.

대피소가 들어선 이듬해 초여름의 어느 날, 긴 머리와 수염을 기른 훤칠한 체격에 낡은 작업복 차림의 기인 한 명이 대피소를 안식처로 삼아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가 가진 거라곤 배낭에 옷가지 몇 개와 이부자리가 전부였다. 낮이면 산 속으로 들어갔고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먹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사람은 가끔씩 마주치는 공원 관리인과 ‘지경터’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최석두 씨 부부(보리밥집)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최석두 씨 부부와 가까워진 그는 끼니를 같이 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말없던 그의 기행이 조금씩 알려졌다. 그의 개인적인 신상은 자세히 알 수 없었으나 카투사 출신이었다고 한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여 지나가는 외국인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오후가 되면 배바위 근처로 올라가 밤을 보내는 날이 늘어갔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도를 닦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훗날 그것은 추운 겨울을 보내기에 알맞은 토굴생활을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추측했다.

산을 찾는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는 자리를 같이하며 풍수와 사주팔자를 봐주기도 하고, 대피소 옆 계곡의 물을 막아 피라미가 노니는 모습을 즐기기도 하는 그를 성이 배(裵)씨라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배도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대피소도 배도사가 사는 곳이라 하여 입에 입을 건너 모두들 ‘배도사 대피소’라고 부르게 되었다.

배도사가 거처하기 시작한 후 5~6년이 되었을 때 그의 제자가 되기를 자처하는 젊은이가 찾아와, 배도사는 제자까지 거느린 어엿한 도사가 되어 한동안 대피소 생활을 계속했다. 하지만 어느 날 그가 홀연히 사라진 뒤로는 그들의 모습은 영영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가 대피소 옆 계곡 물을 막아 기르는 피라미들을 보고 지나가던 외국인들이 ‘원더풀’과 ‘뷰티풀’을 반복하였다는 영어발음을 흉내 내면서 그가 도사였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목소리를 제보자들은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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