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과 사회복지를 병행하며 삶의 질 향상해 온 퀘벡
 

▶『퀘벡모델』을 쓴 이유는?
 

▲ 차별과 위기를 극복한 퀘벡의 사회적경제를 616쪽에 걸쳐 기록한『퀘벡모델』

20세기 중반까지 프랑스어권 주민들이 사는 퀘벡은 캐나다에서 가장 가난한 곳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1960년대 ‘조용한 혁명’ 이후 협동조합을 비롯하여 각종 사회운동과 사회연대경제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캐나다에서 가장 잘 사는 지역에 속하게 되었다. 경제성장과 사회복지를 병행하면서 꾸준히 삶의 질을 향상해 온 것이다. 만약 퀘벡 사람들이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 혼자만, 우리 집만 잘살면 된다”고 생각했다면, 한국처럼 정경유착과 비리가 판치는 약육강식의 사회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퀘벡은 협동과 연대의 정신을 발휘하면서 공공성을 중시하는 사회가 구성원들의 품위있는 삶을 지켜주고 지속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 많은 사람이 한국사회는 협동조합이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말을 한다. 불신이 깊고 경쟁이 심하기에 나오는 말이다.『퀘벡모델』의 서장을 읽으며“신뢰하기 때문에 협동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협동하기에 신뢰가 일어난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일상의 협동과 협동의 제도화를 만들어 낸 퀘벡의 사례를 잘 배우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인 면과 이타적인 면을 함께 갖춘 존재이다. 언제, 어떤 조건에서 사람들이 더 이기적이 되고 이타적이 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좋은 사회를 만들려고 한다면 이타적인 사람들만 모여서 할 수는 없다. 또 모두가 이타적이 되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사람들 사이에서, “사회 전반적으로 어떻게 협동을 유도하는 제도를 만들어 갈 것인가? 공공정책을 어떻게 시민사회 친화적으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한테도 좋고, 사회에도 좋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영국의 로치데일 협동조합은 개개인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니까 잘 된 것이다. 결국은 개인들의 이해관계를 충족하면서 사회에 기여하는 활동이 지속가능한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우선 “이것이 당신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해야 설득력이 있다. 물론 어릴 때 학교교육에서부터 성인기에 언론, 시민단체, 지자체 등이 다양한 평생교육을 통하여 협동과 연대의 문화를 풍부하게 가꾸어 가는 프로그램과 정책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한 묘안은 없다.
 

▲ 김창진 교수

▶ 퀘벡은 생산협동조합, 소비자협동조합, 노동자협동조합 같은 전통적 협동조합 형태도 많지만, 최근에는 각종 연대협동조합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특히 연대협동조합은 사회복지나 여가활동 부문에서 활발하다고 하는데, 협동조합이 지역에서 의미있는 활동을 어떻게 잘할 수 있는가?

퀘벡은 각 협동조합들이 전문분야끼리 네트워킹이 잘 되어 있다. 농협인 ‘라꾸페데레’는 농민들이 농촌에서 트랙터에 주유해야 할 장소가 멀어서 불편하자 주민의 필요에 의해 ‘소닉’이라는 주유소 체인을 만들었다. 단지 사업 그 자체의 확장을 위해 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농협처럼 조합원이 확보된다고 해도 섣불리 금융으로 확장하지 않는다. 이미 전문성을 가진 금융협동조합과 연대하며 자신의 분야에 더욱 집중한다. 그 와중에 라꾸페데레와 ‘아그로푸르’는 경쟁관계에 처하기도 했지만, 아그로푸르는 낙농업에 집중하면서 라꾸페데레는 그 부문에서 더 이상 사업을 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한편, 협동조합도 대기업이 될 때 성장의 논리를 추구하며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아그로푸르는 한국에서 서울우유 정도 되는 우유전문 협동조합인데, 대기업으로 성장한 다음 가티노지역의 우따웨도 우유공장이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폐쇄했다. 그러자 지역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소비자들은 그 동네에서 생산한 원유를, 왜 몬트리올이라는 먼 대도시에까지 가져가서 가공하여 다시 시골에 판매하는가에 분노했다. 그래서 지역개발협동조합(CDR)의 도움을 받아 자기들끼리 생협을 만들고, 새로 우유공장협동조합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지역주민들이 SNS등을 통하여 자발적으로 홍보하면서 지역주민의 소규모 협동조합이 대규모 협동조합이 무책임하게 철수한 공백을 훌륭하게 메운 것이다.
 

▶ 퀘벡 협동조합의 민주적인 거버넌스는 잘 이루어지나?

이사회에서 정책 결정이 이루어지지만 단위 조합들의 의사결정을 무시하는 형태는 아니다. 몇 년 전에 <비전 2020 프로젝트>가 ‘퀘벡협동조합·상호조합위원회(CQCM)’ 대표인 모니크 르후에 의해 추진되었다. 기존의 협동조합 방식을 넘어 퀘벡 전체가 한 차원 질적으로 도약하기 위해 혁신을 시도했다. 모니크는 민간은행에서 경력을 인정받아 데잘댕협동조합은행으로 스카우트된 사람이었다. 그 사람으로서는 민주적인 거버넌스를 통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면 얼마나 답답하겠나? 찬성도 있었지만 지역에서 강한 반대가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사업을 하면 성과는 나오지만 협동조합의 가치는 어디로 가나? 결국 그 프로젝트는 중단되었다. 
이처럼 일단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면 여러 조직들이 단일한 목소리(single voice)를 내기 위해 결정사항을 받아들이고 협조한다. 무조건적인 반대보다 상황의 문제점을 모니터링하고 조합원의 의견을 반영하여 계속적으로 토론하고 회의한다. 특히 사회연대경제 분야의 경우에는 “회의만 하면서 돈 쓰는 집단”이라는 편견도 작용하여 최근 자유당 정권이 들어선 다음 주정부의 대폭적인 예산 삭감을 당하기도 했지만, 회의가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과정이라고 생각한다.  
 
▶ 퀘벡 협동조합의 조합원 참여는 어떤가?

일반대중은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 수준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소비자들이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비율도 낮은 편이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소비자 협동조합 ‘MEC’는 등산용품(아웃도어 전문) 협동조합으로 캐나다 전역에 약 20개의 점포가 있다. 1971년 밴쿠버의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생들의 등산 동아리로 시작했다. 현재 조합원이 300만이 넘는다. 캐나다 인구의 약 10%에 해당한다. 어떻게 총회를 하고 의사결정을 하나? 지역별로 모이거나 하는데, 참석률이 1%도 안 된다. 물론 이는 수십만 명 이상의 조합원을 거느린 모든 소비조합들의 한계이고 고민거리다. 그래서 MEC는 화상회의 방식을 도입하기도 한다. 또 상품개발을 할 때 조합원의 의사를 적극 반영한다. 인터넷에 올리면 적극 반영한다. 불어로 교육하는 거의 모든 학교에는 학교협동조합이 있다. 학창 시절에 조금이라도 협동조합을 접하는 경험은 아주 중요하다. 나중에 그들이 협동조합이나 사회연대경제 활동에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고 참여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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