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연대경제의 미래,‘퀘벡모델’ 
차별과 위기를 극복한 퀘벡의 사회적경제 

퀘벡은 캐나다 10개주 중 하나로 캐나다 남동부에 위치하며,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면적은 154만㎢로 서울의 2000배가 넘지만, 인구는 800만 명 정도다. 퀘벡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협동조합이 가장 발전한 곳으로 3000개의 협동조합이 있고, 조합원은 880만 명이 넘는다. 조합원 수가 퀘벡 전체 인구수보다 많은 것은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협동조합에 가입해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이 창출하는 일자리는 7만 8000개, 연간 매출은 180억 달러(약 19조 8000억 원), 자산은 1000억 달러(약 110조 원)를 기록하고 있다.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적경제는 퀘벡주 전체 경제의 10% 정도를 차지한다.

퀘벡은 사회적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다. 퀘벡은 프랑스 전통을 물려받은 곳이다. 캐나다는 1500년대 프랑스 식민지였다가 1700년대 영국의 식민지로 넘어간 역사를 갖고 있다. 프랑스계와 영국계가 300년 이상 함께 살고 있는 나라이다. 하지만 캐나다를 두고 벌인 전쟁에서 최종 승자는 영국이었고, 패자는 프랑스였다. 때문에 영국계가 사회의 주류세력이 된 반면 프랑스계는 많은 차별을 받게 된다. 프랑스계는 박해받는 소수민족이었다. 소수민족이었던 프랑스계는 강한 독립성과 자치성을 갖게 된다. 퀘벡의 변화는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프랑스계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 개선을 위한 정치, 경제, 문화 개혁이 진행되었다. 프랑스인이 차별받지 않도록 만인의 평등을 보장하는 종교, 교육, 사회복지 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변화는 1980년대에 일어났다. 당시 서구 자본주의가 그랬듯이 캐나다도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었다.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로 인해 정부 주도 발전 전략도 한계에 부딪혔고 당연히 사회복지 지출도 줄어들었다. 당시 두 갈래 대응책이 있었다. 시장에 맡겨 효율성을 높이는 민영화의 길과 지역공동체의 사회적 경제를 활용하는 길이다. 퀘벡은 후자의 길을 선택했고 차별과 위기를 사회적경제로 극복했다.

사회적경제가 잘되는 이유

1. 사회연대금융
퀘벡이 사회연대경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재정적 기반이 충분했다는 것이다. 그곳을 취재할 때 반복해서 들은 이야기가 “우리는 돈은 문제가 안돼요. 어떻게 사업을 할지가 문제”였다. 200조가 넘는 자산을 가진 데자르댕 신협이 있고, 이곳은 기존의 협동조합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20여 개 기금을 운영한다.

가장 혁신적인 상품은 ‘상띠에 신탁기금’이다. 협동조합 상품 중에서도 가장 인정받는 인내자금이다. 15년 동안 갚지 않아도 된다. 2~3년 만에 갚아야 한다면 협동조합 본연의 가치에 충실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퀘벡과 우리나라가 다른 점은 우리나라가 이윤만 쫓고 사회 기여는 편법인데 반해, 퀘벡은 주식회사도 사회적 기여에 함께한다. 퀘벡에서 장사해서 이익을 얻으니 기여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은 데자르댕 본사 모습. 퀘벡에서는 어디를 가나 데자르댕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북미 최대 신용협동조합인 데자르댕은 퀘벡의 크고 작은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들의 대부이고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주역이었다.

2. 지역개발 협동조합 네트워크
지역개발 협동조합 네트워크(이하 CDR)은 퀘벡의 협동조합이 발달한 두 번째 이유이다. 몬트리올 라발은 퀘벡의 중심이다. 17개 행정구역으로 나뉘는데, CDR네트워크는 11개이다. 전문가 협동조합은 협동조합 전문가들이 모여서 지역사회에서 신생 협동조합이 잘 만들어지도록 지원한다. 세무, 조직, 법률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설립을 지원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모니터한다. 노동자 주주 협동조합처럼 기존의 사업체를 협동조합 형태로 전환하는 것도 지원한다. 11개의 CDR이 연합회를 만들고, 협동조합 상호조합 위원회로 가입한다. 민간인들이 CDR을 만들어서 성과를 보이니, 1980년대부터 확산되기 시작했다. 지역개발 협동조합을 통해 일자리가 만들어지니 주정부에서도 지원을 시작했다. 매년 10억 씩 지원하고 협동조합을 몇 개 신설하고 몇 개의 일자리가 나왔는지에 따라 추가 인센티브를 지원한다. 성과를 낼수록 지원금을 더 받는 식이다. 그 외에도 퀘벡에서 50개 정도의 기업에서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한다.

3. 노동자의 경영참여
캐나다는 이미 그 사업장 안에서 협동조합으로 모인 사람이 기업을 인수하여 노동자 협동조합이 되거나 연대협동조합으로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중소기업의 순조로운 계승이 이루어진다. 협동조합의 비중을 늘리는 특이한 방법이다. 노동조합처럼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경영에 반영하려는 장치가 협동조합이다.


한국과 퀘벡의 다른 점------------------

우리나라-사회운동‧노동운동을 국론 분열세력이라고 탄압
퀘벡-진보정당으로 정권 교체하며 사회운동을 합법화


퀘벡은 1960년대를 조용한 혁명의 시기라 부른다. 한국은 4․19혁명이 일어나고, 1961년 박정희 집권이 시작된 시기에 퀘벡에서는 조용한 혁명이 일어났다.

우리나라는 이승만 독재정권이 학생들에 의해 무너지고, 민주당 정부가 들어선 뒤 개혁적인 정책을 실행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 박정희가 3000명의 군인들과 쿠데타로 집권했다. 당시 혼란에 지친 사람들은 군인들이 집권하길 잘했다는 세력도 있었다. 수출입국이라는 구호아래 수많은 가난한 농촌 출신 노동자들이 저임금을 받고 경찰 곤봉을 맞으며 산업화에 투신했다. 퀘벡은 이승만과 비슷한 보수정권이 무너지고 퀘벡의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새로운 민주당에 들어갔다. 이들은 그동안 영국의 지배에 눌려왔던 박탈과 설움을 몰아내고 “우리 운명의 주인이 되자”며 주정부 주도의 근대화를 본격적으로 이끌었다.

1960년 당시 한국은 전 국민이 일치단결해도 모자랄 판인데, 박정희는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을 국론분열세력이라며 탄압했다. 반면 퀘벡은 진보정당으로 정권교체하고 사회운동을 합법화 하면서 지역사회 공동체운동을 정당하게 인정해 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퀘벡의 한몫으로 경제적 시민권을 인정한 것이다. 퀘벡은 지역사회 공동체 운동을 하는 사람도 경제성장을 함께 하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지역사회 주민들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한국 보수 정치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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