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은 남도의 명산으로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는 불교문화의 중심이며, 순천사람의 주요한 삶의 터전이다. 
순천시 송광면 출신인 김배선 씨는 약 15년 동안 조계산과 그 주변 마을을 누비면서 주민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한 자료를 토대로,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이 책 주요 내용 중 일부를 김배선 씨의 동의를 받아 순천광장신문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연재한다. 편집국


▲ 김배선 향토사학자

조계산의 송광사 쪽을 ‘송광산’이라 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조계산은 소나무가 울창한 산이다. 송광사 주변 마을에 살았던 50대 이후의 사람이라면 조계산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했던 기억을 잊지 않을 것이다.

취봉선사가 송광사를 이끌 당시(주지: 금당) 복원 했던 대웅전(현 승보전)은 조계산에서 베어낸 소나무로 지었다. 

조계산의 송림은 광복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무단 벌채가 많았다. 이로 인해 썩어 널려있는 소나무의 뼈대인 관솔이 채집되어 옹기가마 화목용으로 수없이 실려 나갔다. 50년대 말에는 소나무 벌채 허가가 많이 나면서 홍골과 국골의 중턱까지 미제 G.M.C가 차 앞 드럼에 감겨있는 와이어에 나무를 매달고 감아 풀면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소나무를 실어 나갔다.

절 아래 마을에 제재소를 설치하여 직접 가공을 하기도 했다. 이 과정을 거쳐 수 년에 걸쳐 조계산의 소나무가 자취를 감추었다.

송광사의 진입로 주변에 남아 있는 몇 그루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1960년대 초반 마지막 벌채가 끝날 때까지 송광사 주위를 뒤덮고 있던 소나무라면 이해를 할 수 있을 듯하다.

송광사의 상징인 우리나라의 대표적 토착 수종인 소나무가 사람들의 벌채와 지구 온난화라는 보이지 않은 힘에 의해 잡목들에게 점령당한 자리에 다시 스스로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대웅전 뒤편 100m 지점에 작은 규모로나마 30~100년 생으로 보이는 500여 그루의 송림이 남아 있다. 이 송림을 처음 봤을 땐 “이만큼이라도 남아있는 것이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보고 또 보았다.
이곳이 송광(松廣)의 전설이 살아남은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했다.

▲  대웅전 뒤편의 송림

그러던 중에 뜻밖의 소나무들이 눈에 거슬렸다.

제법 곧은 놈의 몸통을 보고 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조상의 핏빛을 닮은 금강송의 후예가 아니라 별 쓸모없이 목숨만 질긴 ‘왜송’이 많이 보였다.

“어떻게 왜송이 이곳에까지 뿌리를 내렸단 말인가?” 일부러 심지는 않았을 테고, 크기로 보아 수고가 40m는 되어 보였다. 길 주위를 살펴보니 의병 속에 숨어든 간세들 모양으로 군데군데 한그루씩 박혀 있는 꼴이 몹시도 거슬려 보기가 민망했다. 토종 소나무 밭인 송광사의 치락대(鴟落臺)로 숨어든 왜송의 정체는 일본의 개량 종 ‘리기다소나무’이다. 우리말로는 삼엽송이라고 부른다.

▲  리기다소나무 몸통에 난 잎

6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의 산림녹화 사업이 한창이던 1964년~1968년 사이에 조계산에서 멀지 않은 야산에도 ‘리기다소나무’ 조림단지가 여러 곳에 조성되었다. 그 이후로 여러 해 동안 조림이 계속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지금 크게 자란 삼엽송림은 그 때의 삼엽송 씨앗이 옮겨 왔음을 추정케 한다.

삼엽송의 특징은 우리나라 육송과 비교할 때 이름처럼 잎이 셋이며, 곁가지가 적고, 곧게 자란다.

육송의 껍질은 위로 올라갈수록 비늘처럼 얇고 붉은빛을 띄는 반면 삼엽송은 껍질이 두껍고 검은 빛이며, 나무의 몸통에서 잎이 바로 난다. 삼엽송은 나무를 베어 놔도 자체의 수분이 완전히 마를 때까지 죽지 않으며 수분만 공급되면 계속 살아나는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다.

삼엽송의 용도는 언뜻 보면 나무가 곧아 좋은 재목처럼 보이지만 재질이 좋지 않다. 잡목이나 화목으로 밖에 쓸 수 없다. 고급 재목과는 거리가 먼 나무이다.

재질의 우열을 떠나서 송광사(산)의 상징처럼 자존심으로 남아있는 솔밭에 이와 같은 왜종이 섞여 있는 것은 문제이다. 삼엽송은 번식을 잘하고, 생명력이 좋아 시간이 지날수록 비중이 높아질 게 분명하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삼엽송을 솎아내어 송광사 송림이 松廣의 역사의 증인으로 영원히 남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송광사 송림은 송광사 스님들이 수행으로 밟는 포행길이며, 참배 길이기도 했다. 
 

비룡폭포

▲ 리기다소나무 몸통에 난 잎

송광사 주변의 또 다른 볼거리로 비룡폭포를 들 수 있다. 비룡폭포에 가려면 송광사의 경계에 있는 농막을 지나서 채마밭 입구의 천자암길 삼거리에서 선암사로 가는 등산로를 따라 약 5분 정도 올라간다. 그 곳에서 오른편 개울을 따라 난 숲길로 약 10m를 들어가면 놀랍게도 조계산에서 가장 규모가 큰 폭포가 눈앞에 나타난다.

이 폭포의 이름이 ‘비룡폭포’이다.

시원한 물줄기와 시퍼런 ‘소’를 내려다보면 감동스런 경관을 연출한다. 계곡과 어울린 아름다운 경치도 일품이지만 비룡폭포에서는 결가부좌한 스님을 가끔 만나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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