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큰 배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교에서 그 의미 그대로의 큰 배움을 찾기란 쉽지 않다. 막 입학한 새내기들은 멋내기에 여념이 없고 친목도모를 위한 술자리도 끊이지 않는다. 이들의 머릿속에 대학은 더 큰 배움을 갈구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지난 3년의 지옥 같았던 고등학교 생활을 보상받는 곳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대학생들만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현상은 어쩌면 당연하다. 대한민국 고3이라면 모두 대학수학능력검정시험을 치러야한다. 이 시험은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가를 판단한다는 본래의 목적과는 상이하게 학생들의 대학 입학뿐만 아니라 그들의 인생까지도 좌지우지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고등학교는 입시위주의 교육을 할 수밖에 없고 학생들은 3년 내내 피말리는 경쟁 속에서 오로지 상위권 대학입학만을 위해 공부한다.

이들에게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는 없다. 학교가 끝나는 시간은 기본 밤 11시. 고3 학생의 주중 평균 수면시간은 5.4시간. 지독하게 공부해보지만 소위 말하는 SKY 그리고 인서울의 문턱은 높고 입학 정원은 고정되어있다. 기성세대들은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대학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공부하기를 강요한다.

한 유명한 사교육 업체에서 낸 광고 문구가 한동안 이슈가 되었었다. 우정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친구들과 어울리지 말고 그 시간에 공부나 하라는 내용이었다. 친구들과의 우정도 포기해야하는 수능과 입시의 노예가 되어버린 이 아이들이 어떻게 대학에 입학해서 더 배우고자하는 욕심이 생길 수 있을까. 자기가 원해서 ‘배움’을 행한 적이 없으므로 대학에서 배우는 것 또한 부모와 이 사회의 강요에 의한 것이고 직장인이 되기 전 단계에 불과한 것이다.

미국 공립 초등학교의 인턴으로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잠시 미국에 있었는데, 한 주립대학교를 방문한 첫날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흔히 보이는 하이힐을 신은 여대생이 단 한명도 없었다. 모두들 운동화에 편한 복장 차림이었고 무거운 책가방을 짊어진 수수한 모습이었다. 이러한 광경은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상반된 대학의 모습에는 많은 원인들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고등학교 체계라고 생각된다.

미국 고등학교는 3시 30분이면 모든 수업이 끝난다. 학원이니 과외니 하는 사교육은 지적 수준이 매우 낮거나 학습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위한 학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해 미국 학생들에게는 많은 자유가 주어지고 공부 이외의 자기가 좋아하는 활동들을 할 수 있다. 이를 통하여 본인의 적성을 찾고,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하여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배운다. 이는 분명히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에게 결여되어있는 부분이다.

미국에서는 대학에 입학하는 이유가 ‘더 공부하기 위해서’이다. 대학에 입학한 10명 중 10명이 모두 그렇다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내가 보기에 열 중 아홉은 ‘大學’을 위해 왔다고 할 수 있겠다. 대학이 존재하는 이유와 일치한다.

우리나라 대학교가 더 큰 배움의 장이 될 수 있고 많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현재 대학생들의 노력도 물론 요구된다. 하지만 더 시급한 것은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교육제도의 틀을 ‘입시위주’에서 ‘자율성과 창의성’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현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순천대학교 영어교육과 3학년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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