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요가 수행자의 결혼과 이혼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주인공 김민우와 함께 인도 요가 스승들의 답을 들어 볼까요?
 

▲ 장용창

베다 니케탄 아쉬람에서 요가 철학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달마난다 선생이었다. 1953년생으로 오십대 초반인 그는 바가바드기타의 주인공 아르주나처럼 무사인 크샤트리야 계급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십대초반부터 군인 학교를 다니기 시작해, 삼십년 동안 군인 생활을 했다. 요가의 길을 가겠다고 군인 생활을 그만 두고 리시케시에서 지낸지 십년쯤 지났지만, 가끔 자기를 구루(스승)이라고 부르는 서양인들을 만나면, 자기는 아직 구루가 아니라고 겸손하게 말하곤 했다. 머리와 수염을 기른 달마난다 선생은 제주도의 한주훈 선생이랑 비슷한 모습이라고 김민우는 생각했다.

김민우가 처음 강의에 들어갔을 때, 달마난다 선생은 두 시간의 강의를 끝낸 후 의례적으로, 질문이 있냐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자, 김민우가 손을 들어 물었다. “저는 요가 수행도 하고 싶은데, 결혼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요가 수행을 못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는 것은 요가의 깨달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급한 마음, 급한 행동은 김민우의 가슴에 살아 있는 에너지였다.

“아, 젊은이(Boy)! 오늘 처음 왔지? 제발 내 강의 좀 듣고 질문 좀 해주게. 누가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요가를 못한다고 하던가? 결혼과 육아야말로 깨달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네. 내 강의를 첫 주부터 들어보시게.” 젊은이(Boy)라는 호칭은 모욕적인 말이었다. 우리 말로 치면 애숭이같은 의미로, 어려서 아무 것도 모른다는 뜻을 품고 있었다. 김민우는 그래도 기뻤다. “그 정도 모욕이야 들으면 좀 어떤가? 저 답이야말로 내가 찾던 명쾌한 설명이 아닌가? 게다가 첫 주부터 들으면 저 설명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알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가?”

답을 주는 스승이 있다면 모욕도 참아내는 김민우의 태도는 사실 요가의 스승들이 가장 반기는 <열망을 품은 요가 제자>의 전형적인 자질이었다. 예를 들어, 19세기에 벌써 미국으로 건너가 요가를 가르친 비베카난다(1863-1902)가 처음 요가를 배우러 스승들을 물색하러 다니던 때가 있었다. 레슬링 선수였던 그는 유명한 요가 스승들을 찾아가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이 말하는 하느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시요. 그러면 내가 당신의 제자가 되겠소”라고 요구했다. 그가 찾아간 유명한 스승들은 아무도 증명하지 못했고, 레슬링 선수는 그 스승들을 들어올려 내동댕이쳐버렸다.

그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스승은 라마 크리슈나(1836-1886)였다. 신을 증명해 보이라는 비베카난다의 요구를 듣고 라마 크리슈나는 그를 강으로 데리고 갔다. “내가 신을 보여줄 테니, 물 속으로 들어고 가능한 한 오랫 동안 숨을 참고 있어보게.” 비베카난다가 일 분 넘게 물 속에 있다가 나오려고 할 때, 라마크리슈나가 올라타서 머리를 물 속으로 쳐넣어버렸다. 비베카난다는 숨을 못 쉬어 물을 먹었지만, 레슬링 선수의 실력을 발휘해 일어서고는 불같이 화를 냈다. “뭐야? 날 죽이려고 작정했어?” 라마 크리슈나가 이에 답했다. “죽음이 두려운가? 살고 싶은가? 하느님을 만나고 싶은 열망이 살고 싶은 욕망보다 더 커질 때, 하느님이 먼저 자네를 찾아올 걸세.”

비베카난다는 그 자리에서 라마크리슈나의 제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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