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꼬깽이』등은 우수한국만화에 선정
처절한 상황에서도 농담잃지 않는 인간성 부각

나는 1971년에 고흥에서,『꼬깽이』의 그 꼬마처럼 8남매의 한 명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동네 소리꾼이었다. 7살 때까지 살다가 서울로 이사했다. 그 낯선 대도시에서 부모님은 사기를 당해 모든 재산을 잃고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내 작품『아버지의 노래』에는 그 때의 경험이 담겨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반 학생이 70명 정도였는데, 반 전체가 ‘미술반’으로 지정이 되면서 그림을 처음 접했다. 형편이 어려우니 미술학원에 갈 수도 없었지만, 중학교 1학년 때 화가의 꿈을 가졌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예술은 죽어서도 남는다는 생각에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세종대학교 회화과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하지만 아무 배경도 없고, 가난하며, 여자인 나에겐 벽이 많았다. 그래서 22살이 되던 1994년 4월에 홀로 프랑스로 떠났다. 나를 전혀 모르는 곳에서 미술만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프랑스로 간 것은, 중학교 미술 선생님이 프랑스로 유학을 가신데다, 내가 19C 인상파 화가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 지난 10월 29일(토)부터 11월 1일(화)까지 순천문화예술회관 제1전시실에서 노무현재단 전남지역위원회가 주최로 김금숙 작가의『지슬 』원화 전시전이 열렸다. 사진은 즉석에서 만화 캐릭터를 그려가며 사인회를 하고 있는 김금숙 작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비행기 삯을 마련했다. 부모님도 도와주셨지만, 뻔한 집안 살림을 알던 터라 프랑스에서도 아르바이트를 그만 둘 수 없었다. 그러다 만화를 접했다. 스트라스부르그 고등장식미술학교에서는 조각을 전공했는데, 재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실력만 있다고 해서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조각은 재료비가 부담스런 반면, 만화는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되었기에 만화가가 되었다.

지금의 남편 로익 정드리는 친구의 옆집에 살던 이웃이었다. 그는 조부모 때부터 레스토랑 사업을 해서 그런지, 요리사가 아님에도 요리를 좋아하고 무척 잘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날 먹여 살리고 있다. 프랑스인 남편 덕분에 프랑스 문화를 더 잘 알 수 있었는데, 로익이 아내의 나라인 한국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 했다. 한국 여행을 다녀온 후 더 알고 싶어 하기에, 우리 부부는 무작정 2010년 10월 말에 귀국했다. 원래는 잠깐 있다 돌아갈 계획이었는데, 일을 하다 보니 지금까지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살고 있다.
 

▲ 남편 로익 정드리와 함께.


이번에는 벨기에 전시전을 끝내고, 올해 9월에 한국에 왔다. 내가 처음 프랑스로 떠났을 때에는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나약한 존재였지만, 지금은 누군가를 보살펴 줄 수도 있는 ‘어른’이 되었다.

해외에서는 이미 알려졌는데, 작년에 서울시와 서울애니메시션센터가 발표한 ‘우수 한국만화 도서’에『꼬깽이』(보리)와『판소리 춘향가』(길벗스쿨)가 어린이 부문에,『지슬』(서해문집)은 청소년과 성인 부문에 선정이 되었다.

『아버지의 노래』처럼 내 작품이 한국이라는 특정 국가를 배경으로 하지만, 해외에서도 두루 호평을 받는 이유는, 그 안에 우리 인간들의 보편적인 삶과 정서를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슬』은 제주 출신 오멸 감독의 동명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를 원작으로 한 만화이다. 김금숙 작가가 특유의 수묵화 기법을 사용하였다.


오멸 감독의 동명 영화가 원저인 만화『지슬』은 수묵화로 그렸다. 실은 수묵화를 전공한 적도 없어 세종대의 동양화 전공 교수를 찾아가 배우려 했다. 그런데 그 분이 “이미 자네 스타일을 가졌으니, 굳이 배울 필요가 없네”라고 말씀했다. 만화가인 내가 보기에 만화에서 중요한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작가가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고, 사회를 보는 ‘시각’이 중요하다. 그래야 삶의 모습을 더 잘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에 왔을 때 정리되지 않는 역사가 많았는데, 지금도 여전하다. 근래에 작고하신 고 백남기 농민은 아버지처럼 느껴졌는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에 기가 막혔다. 작년 11월 30일 자 블로그에 그 분이 일어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그림을 한 컷 그렸던 적이 있다. 그림 속 손자는 딸 백민주화 씨가 낳은 아들이다. 우리는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고, 역사도 그 산물이다. 그 속에 사람들의 상처와 아픔은 현재 진행형이다.

내 어머니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는데, 6·25 때 북에 남겨진 언니를 생각하며 평생을 슬퍼했다.

『지슬』은 제주 4·3사건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을,『할아버지와 보낸 하루』는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히로시마 원폭 피해를 받은 이들, 그리고『미자언니』는 위안부 할머니의 사연을 담았다. 이들은 모두 역사 속에서 무자비한 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평범하고 선량했던 우리 이웃의 아픔이다. 나는 역사가도 아니고, 학습만화가도 아니어서 어떻게 예술적으로 다가갈까 고민한다. 또 폭력을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처절한 상황에서도 소박한 삶의 재미와 농담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고자 한다. 

지금 준비하는 만화는 위안부 할머니 사연을 피해자인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보며, 폭력에 의해 어떻게 인간이 파괴되고, 인생이 바뀌며, 어떻게 치유되는 지를 담고자 한다. 직접 현장 답사를 하고, 할머니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원래는 1권으로 계획했는데 그 사연을 담기에 지면이 부족해 완성된 1권은 출판사에 넘기고, 현재 2권을 작업하고 있다.

지난번에는 베트남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피해지역을 돌아보고 생존자와의 만남을 기록했다. 이 이야기도 때가 되면 세상에 태어날 것이다.『지슬』은 동명 영화가 유명해지기도 전에 출판사 측에서 연락이 왔는데, 나와 잘 맞을 것 같다며 작품을 권유했다. 영화를 보니 감독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모습이 나와 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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