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자·의·삶·의·현·장 - 오일장 만물박사 강원석 씨

“못 고치는 거 없어. 사람도 고쳐브러. 애도 만들어분디” 농익은 너스레가 스스럼없이 반긴다. 장날이면 어르신들의 복덕방이 되고 있는 이곳은 순천아랫장 만물수리점이다. 트럭에는 반질반질한 신발이 진열되어 있고, 뒷편으로는 열쇠를 복사하는 기계와 재봉틀을 내려놓고 만물수선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 오일장 만물박사 강원석씨.“만 원이라도 남아서 술 한 잔 사먹을 수 있으면 괜찮애.”
스무살 이전부터 잡화 장사를 시작으로 옹기와 계란 말고는 다 팔아봤다는 강원석씨(71세). 구두장사를 하다가 수리를 함께 한지 30여년 되었다. 양산과 우산은 기본이고, 신발수리, 가방수선 등 조이고, 당기고, 꿰매고, 붙이고, 두드리고. 오랜 세월의 경험이 만들어낸 굴곡진 손마디는 어려울 게 없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절약할 줄을 몰라. 메이커밖에 모르고. 옛날 사람들이야 고무신도 꿰매신던 습관이 남아 있다본께 고치러 와. 그만큼 애끼고 살았제.”

▲ 마디마디 굴곡진 손마디에는 망치에 두들겨 맞고, 재봉틀에 찔리고, 접착제에 벗겨나간 세월이 고스란히 박혀있다.
나에게도 이제는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풍경이다. 덧대어진 구멍난 양말이며, 굵은 실에 꿰매진 바가지, 대바구니, 조각천으로 멋(?)을 냈던 찢긴 치맛자락. 그 풍경들이 늘 창피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쩔때는 할무니들이 쓰리빠나 쌘달을 고쳐달라고 가져오는디 ‘내브러라’ 말하고 싶을 만큼 못 고칠 정도인 것들을 가지고 와. 어찌보믄 그것이 잘못된 거여. 새로 산 것만 못흔께. 요새는 중국산이 많아서 가격이 싼 것들이 많거든. 그것 하나 고친다고 한 시간이 넘도록 일할 때도 있는디 워낙에 물건이 싸븐께 돈을 많이 못 받아. 최고로 비싸봐야 3천원이여.”

“워메. 그럼 하루에 얼마나 버세요?”

“이것도 고치고 저것도 고치고 헌께 누가 보믄 겁나게 번다고 생각하는디 5만원 정도 벌어. 아랫장은 큰장이라 그 정도 되는디 딴디서는 2만원도 벌고 3만원도 벌고해. 왔다갔다 기름값허고 밥값허고 술 한 잔 사묵고 그라믄 되제뭐.”

구례장, 광양장, 옥곡장, 고흥동강장, 보성조성장, 제법 먼거리를 오가며 장사를 하지만 기름값에 재료값을 셈하고 나면 적자일 때가 많다. 하지만 남을 때도 있으니 괜찮다고 한다. 재래시장이 어려워지면서 시장상인들은 힘겹다.

▲ 만물박사님의 손길을 거치면 못 고쳐지는 것이 없다. 버려질 우산도 새롭게 다시 태어난다.
우산 하나가 수선의 손길을 찾아 왔다. 우산 살대 하나가 끊어졌다. 끊어진 살대 하나를 고치기 위해 열 한 개의 살대를 풀어야했고 열 두 개의 스프링을 조여야했다.

“2천원 3천원이면 고쳐서 다시 몇 년을 쓸 수 있는디.”

자식들에게 고쳐쓴다고 하면 미친 짓이라고 해서 자식들 몰래 가져와 고친다고 한다.

 그리 안해도 살아요!

“60년 후반에 비닐우산이 나왔어. 이렇게 좋은 우산은 70년 후반에 나왔거든. 그때 이 우산이 을메나 귀했다고. 근디 요즘에는 이것이 썩은 게값이 되붓어. 젊은 사람들은 돈 만원 주고 다시 사불지 고쳐 쓰덜 안해. 돈 만원을 아주 쉽게 생각해. 근다고 만원 벌어오라믄 그것도 못해.” 옆에 앉아 기다리시던 어르신이 요즘 젊은 사람들의 무절제함이 못내 걱정이다.

“대한민국이 앞으로 어려워질지도 몰라. 절약할 줄을 모른께. 자식들이랑 밥을 묵을 때도 나는 밥알 한 톨까지 다 묵어야 다 묵었다고 하는디, 손지들 보믄 다 묵었다는 밥그릇에 밥이 많이 남아 있어. 그런 시상이 돼부럿당께. 남기지 말고 묵으라허믄 ‘그리 안해도 살아요’라고 해. 많이 벌어서 적게 써야 부자가 되는 것이제, 적게 벌어서 많이 쓰믄 절대 안돼. 글믄 쪽박 차는 것이여!”

▲ 두드리고, 조이고, 당기고 망치질 소리가 흥겹다.
“신발이 중요해. 굽이 닳아지거나 이상이 있으믄 걷는 것도 삐딱허니 안 좋고 몸도 상해. 신경통이 와브러. 그래서 신사들은 신발을 옷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했어.”

신발을 미리 뒷굽과 바닥을 붙여서 신으면 오래도록 새신처럼 신을 수 있단다. 모르는 사람은 다 닿도록 신는데 그러기 전에 때 맞춰서 갈아줘야 좋다고 한다.

“여자들도 가방만 이쁘믄 된다고 생각허는디 그것이 아니여. 신발은 차에 비유허믄 타이어여 타이어. 타이어에 문제가 생기면 차가 위험허잖애. 긍께로 항상 신발은 가방보다도 더 신경써야되는 것이여.”

“오일장이 죽어분 건 테레비 때문이여. 테레비에서 몽땅 다 팔아븐께 누가 장에 오것어. 집에 앉아서 전화만 한 통 허믄 다 살 수 있는디. 돈을 줘도 살 줄 모르는 노인들이나 오일장에 오제”

홈쇼핑을 이야기하신다. 세상은 편해졌다. 어르신 말씀처럼 전화 한 통, 인터넷에서 손가락 한 꼼지락만 하면 집에 앉아서 물건을 받아볼 수 있는 세상이다. 소통은 없다. 흥정도 없다. 해질녘 ‘떨이’도 없다. 그저 선택만 있을 뿐이다.

▲ 30여년 함께 한 공구함. 죽을 때까지 함께 할 만물박사님의 공구함이다.
오일장을 지키고 계시는 강원석 만물박사님. 상처투성이 되어 가는 재래시장 이곳 저곳도 꿰매고, 붙이고, 조이고, 당기고, 고쳐서 다시 새롭게 오랜 세월 함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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