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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대웅전 앞마당의 배롱나무
김배선  |  webmaster@agora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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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호] 승인 2016.10.22  17: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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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은 남도의 명산으로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는 불교문화의 중심이며, 순천사람의 주요한 삶의 터전이다. 
순천시 송광면 출신인 김배선 씨는 약 15년 동안 조계산과 그 주변 마을을 누비면서 주민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한 자료를 토대로,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이 책 주요 내용 중 일부를 김배선 씨의 동의를 받아 순천광장신문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연재한다. 편집국


 

 

   
▲ 보조국사 지팡이 (향수원) (왼쪽 하단), 향수원 명판 (하단 오른쪽)

 

 

   
▲ 김배선 향토사학자

국어사전에서 소개하는 배롱나무는 아래와 같다.

‘부처꽃과의 낙엽 소교목. 잎은 마주나고 긴 타원형으로 윤이 난다. 7~9월에 붉은색, 흰색 따위의 꽃이 가지 끝에 원추(圓錐) 꽃차례로 피고, 열매는 타원형으로 10월에 익는다. 중국이 원산지이다’

배롱나무는 예로부터 남부 지방의 정원수로 귀히 여겼다. 남도의 유명 정원에는 반드시 아름다운 배롱나무를 중요한 위치에 심었다. 담양의 식영정이나 선암사의 삼인당처럼 연못 안에 꾸민 인공 섬에도 배롱나무를 심어 조형미를 뽐낸다.

요즈음은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순천에서 여수로 가는 국도 17호선이나 부산에서 진해로 가는 낙동강변 등 남도 곳곳의 도로변에 조경수로 심은 곳이 많아 배롱나무의 붉은 꽃을 많이 볼 수 있다.

꽃의 이름 나눔이 부처(?)꽃 이어서 그런지 이 지방 절마다 배롱나무 한 그루 없는 곳이 없다. 송광사 역시 종각을 지나 계단 위로 올라서면 유난히 넓은 대웅전 앞마당 좌우로 나이 듬직한 배롱나무 두 그루가 우산처럼 가지를 펼쳐 세우고 대웅전을 향하여 서 있다. 아름다운 붉은 꽃을 100일 동안 피워내니 찾는 사람들마다 차례로 그 옆에 기대어 추억을 남기려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배롱나무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은 (목)백일홍, 쌀밥나무, 간지럼 나무 등 오래도록 어울려 살던 사람들이 특성에 따라 지은 정겨운 이름이 있다. 첫째, ‘백일홍’은 배롱나무의 꽃을 백일 동안 볼 수 있다는 데서 생겨난 이름이다. 둘째, ‘쌀밥나무’는 나락(벼)을 심고 나서 배롱나무 꽃이 세 번 피고 나면 꽃이 질 때 쌀밥을 먹는다고 하여 쌀밥에 대한 애절한 소망과 함께 붙여진 이름이다.

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젊은이들이 쌀밥에 대한 애절함을 어떻게 이해할까? 얻어들은 말에 따라 “잡곡밥도 못 먹었다”거나 “생일이나 제사, 명절 때가 아니면 쌀밥은 구경도 못했다”는 말도 있었다. 또는 “할아버지 밥에만 쌀이 조금 섞였다” 등의 말이나 글로 쌀밥에 대한 애절함을 이해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조석끼니를 안칠 수 없는(끓이기 어려운)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밥은 굶고 살지는 않는다는 집에서도 밥을 지을 때가 되면 한 바가지 보리(쌀)에 가운데 한(반)줌의 쌀을 얹어 젖 뗀 아이의 순쌀밥을 반 공기 떠내고 이어 어르신 밥 한 그릇을 떠내고 나면 나머지 식구들의 밥에는 쌀 한 톨 눈 씻고 찾아보려 해야 찾을 수 없으니 아이들한테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가?

상을 들이기 전에 젖 땐 아이의 밥 한술을 먼저 떠주면 서로들 먹이겠다고 숟가락을 들고 나서고 그릇을 차지한 녀석은 먹이는 숟가락을 후후 불면서 한번, 간장에 끝을 적신 다음 또 한 차례 반쯤은 덜어 삼키니 이 재미로 그릇 차지 다툼이 아니었던가? 이를 뻔히 아는 어머니였기에 매 번 호통은 오락가락 하건만 귀에 들릴 리 만무하다. 비어 버린 그릇을 향해 아쉬운 입맛만 다시곤 한다. 밥상 앞에 앉으면 아이들의 눈은 연신 할아버지의 밥그릇만 흘끔거리니 이놈의 눈치 밥이 어찌 넘어갈까?

할머니는 그릇을 들어 미리 한술씩 나누어주고 말지만 할아버지는 반쯤에서 수저를 놓고 자리를 뜨고 만다. 잰 놈이 앞서 차지하려 드니 어머니가 먼저 그릇을 챙겨 차례로 한술씩 나누어주고 자신은 바닥과 언저리에 붙어 있는 몇 톨의 밥풀을 도려 삼킨 후 애들 그릇으로 눈이 한바퀴… 배롱나무가 아닌 쌀밥 나무는 이토록 애절한 사연을 안은 채 사시사철 허옇게 수북한 부처님의 공양을 건너보며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간지럼 나무이다.

배롱나무는 노간주(노각)나무나 모과나무처럼 목질이 질기고 단단하며 껍질이 매끄럽다. 거기다 잔가지가 매우 섬세하여 밑 둥을 가볍게 건드려도 나무 전체가 흔들린다. 작은 진동도 작은 나뭇가지에 전달되는 것이다. 배롱나무의 흔들림을 보기 위해 아이들은 나무 밑 둥을 간지르며 꼭대기 이파리가 흔들리는 것을 신기한 눈으로 확인하곤 한다.

“소녀야, 이 나무 간지럼 잘 탄다”

소년은 구부린 채 하늘 끝과 소녀를 번갈아 보며 나무의 허리 밑 둥을 연신 간지르기 시작했다.

나무의 하늘 이파리가 가늘게 흔들렸다.

“저거 봐! 간지러워서 움직이잖아?”

“피~이 거짓말! 나무가 뭐 간지럼을 다 탄데? 바람이 그런 거지~이”

“아니야 바람이 어디 불어~? 이 나무는 간지럼 나무야!”

간지르는 손과 달리 소년의 눈은 소녀의 눈 속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연인들이여, 백일홍의 꽃잎에서만 멈추지 말고 간지럼 나무의 진동을 타고 사랑의 전달을 시험해 보는 것 또한 아름다운 사랑 나눔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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