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요...

안녕하세요. 저는 중학교 2학년 딸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너무나 놀라운 일이 있어서요. 아이와 이야기도 못 해보고, 먼저 문을 두드립니다.

우리 아이의 방을 청소하다가 찢어진 종잇조각들이 널려 있는 것을 보았어요. 뭔가 했더니 ‘죽고 싶다’는 내용이더라고요. 깜짝 놀라서, 책상을 뒤져봤죠. 일기장을 발견했는데, 거기는 더 심각한 얘기가 있더군요. ‘사는 것이 힘들다. 바보 같고 못생긴 내가 싫다. 세상은 살기 너무 팍팍하다. 차리리 죽는 게 낫다. 죽어서 이 세상에 없는 게 낫겠다. OO가 죽으면 우리는 함께 할 거다’ 정말이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어요. 집에서는 평상시에 특별한 일이 없었어요. 가끔 짜증을 부리기는 했지만 이제 사춘기니까 신경질을 부리려니 하고 가볍게 생각했죠. 사실 성적이 그리 좋지는 않아요. 반에서 중간 정도 하지요. 그래도 열심히 하라고만 했지 심하게 야단을 치는 편은 아니거든요. 만약 이걸 제가 아는 척 했다간 왜 제 책상을 뒤지느냐고 난리를 칠 것 같고요. 그래서 진짜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쩌나 싶고,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워요. 자꾸 딸아이 눈치만 보게 되고 제가 속이 타서 죽을 지경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이가 유서를 갖고 다녀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러면 어떨까요

안녕하세요, 어머님. 우연히 따님의 속마음이 적힌 쪽지를 보고 얼마나 놀라셨을까 싶네요. 아는 척 하자니 괜히 더 안 좋은 결과를 낳을까 봐 걱정이 되고, 모르는 척하자니 가슴이 답답하고. 어쩔 줄 몰라 혼란스러워하시는 어머님이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이가 학교생활을 비교적 잘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지를 어머님이 몰랐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셨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청소년들이 자살을 생각할 때는 다음과 같은 상황들이 많다고 합니다. 사춘기 때의 특징은 높은 감수성, 충동성, 자기 중심성을 들 수 있지요. 이때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든 만큼 큰 스트레스를 만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자살하는 아이들을 살펴보면, 자신의 고민을 가정이나 학교에서도 표현할 수 없었고, 해결책을 찾는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깊은 절망감과 좌절감만 늘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아이들은 자살을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여긴다고 합니다. 자살하는 아이들의 유서를 살펴보면 대개 죽음의 세계를 낙관적으로 그리고 있으니까요.

자살 충동을 느끼는 청소년 중에는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성공 경험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교생활에 흥미를 갖지 못하고, 교사나 친구들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며, 학교 부적응 현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허황한 사회 분위기, 화려한 물건들을 보여주는 언론매체들이 청소년들을 비현실적인 환상, 가치관 혼란 상태에 빠뜨리게 하기도 합니다.

따님이, ‘OO가 죽으면 함께 죽겠다’는 글을 썼다고 하셨지요. 자살 충동이 있는 청소년들이 모이게 되면, 친구의 문제를 쉽게 ‘자기화’하여 상승한 감정을 자제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고민을 또래를 통해 소극적이고 파괴적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또래에서는 충동적인 행동이 표출되기 쉬우며 다양한 의견과 토론이 존재하기 어렵지요. 그러다 보니 문제에 대한 해결능력이 제한적이게 됩니다. 혼자서는 망설여지지만 여러 명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되면, 자살 충동은 배신할 수 없다는 집단최면에 빠져 동반자살을 행동화하게 된다고 합니다.

어머님이 생각하시기에 집에서나 학교에서 별문제가 없는 것 같더라도, 따님이 느끼기는 어렵고 고통스러운 부분이 분명 있을 겁니다. 굳이 “네가 쓴 유서를 보았다.”라는 말을 하시기보다는, 요즘 학교생활은 어떤지, 힘든 건 없는지, 따뜻한 관심을 보이시는 것이 급선무일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이의 고민과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털어놓을 창구를 빨리 만드는 일이 중요하거든요. 꼭 엄마가 아니어도 아이가 평소에 잘 따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볼 수도 있겠고요.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옆에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면 문제행동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님이 이번에 유서를 발견하시고 놀라고 힘들어 하신 만큼 아이가 이때까지 느껴왔던 고통과 절박함은매우 컸을 것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아이와 대화를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조연용 순천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센터장
순천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 (국번없이) 1388/www.scyouth1388.or.kr / (061)749-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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