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샤쓰』/ 방정환 글, 김세현 그림 / 길벗어린이

▲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도덕 시간. “성냥 한 개비의 불을 잘못하여 한 동네 삼십여 집이 불에 타 버렸으니, 성냥 단 한 개비라도 무섭게 알고 주의해야 하느니라.” 열심히 설명해 준 선생님이 채 교실 문 밖도 나가기 전에 “한 방울씩 떨어진 빗물이 모이고 모여 큰 홍수가 나는 것이니, 누구든지 콧물 한 방울이라도 무섭게 알고 주의해 흘려야 하느니라.” 하고 크게 소리치는 학생이 있다. 선생님은 그것을 듣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돌아선다. “그게 누구야? 아마 창남이가 또 그랬지?” 모든 학생들은 킬킬거리고 웃다가 조용해진다. “예, 선생님이 안 계신 줄 알고 제가 그랬습니다. 다음엔 안 그러지요.” 억지로 골 낸 얼굴을 지은 선생님은 기어이 다시 웃고 말았다. 그리고 아무 말없이 빙그레 웃고는 그냥 나가 버렸다. “아하하하...” 학생들은 일시에 손벽을 치면서 웃어댔다.

어린이날로 유명한 방정환 선생님의 1920년대 소년 소설『만년샤쓰』를 읽다가 요즘 학교의 교실 풍경을 떠올려 본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창남이같은 친구 한 두 명쯤 있을텐데, 입시와 경쟁 열기 가득한 학교 교실에서 이런 상황 가능할까? 정답 찾기에 바쁜 수업에 분위기 망친다고 선생님께 야단맞거나 같은 반 친구들에게 외면당하지는 않을까? 재치있는 답변으로 요즘 유행이라는 ‘아재 개그’를 날리며 웃음바이러스를 퍼뜨리는 학생을 여유있게 받아 줄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어 창남이는 참 좋겠구나 싶다.

▲ 『만년샤쓰』 창남이
고등 보통 학교 1학년 창남이는 반에서 제일 인기가 좋고 쾌활한 소년이다. 창남이가 인기있는 이유는 시원시원하고 유쾌한 성격 때문이다. 모자가 다 해지고, 양복 궁둥이를 기워 입고 다녀도 자신의 곤궁에는 의연하고, 학교 오는 이십 리 길에 여섯 번이나 구두를 고쳐 싸매고 와도 결석 한 번 안 할 만큼 성실하다. 친구들과 선생님은 그의 집안 형편을 짐작만 할 뿐 창남이의 입을 통해 들은 것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창남이가 추운 겨울 교복 안에 셔츠도 입지 않은 채 학교에 오게 된다. 설상가상 그 다음날은 교복 바지도 없이 한복 겹바지에 맨발에 짚신 차림. 이야기를 들어보니 창남이가 사는 마을에 불이 났고, 다행히 갖고 있던 세간과 옷가지 중에서 반만이라도 타다가 남은 것을 창남이와 그의 어머니는 입고 있던 옷만 빼고 모두 길거리에서 떨고 있는 이웃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그러고도 모자라 이웃의 병든 술장수 할아버지께 셔츠를 벗어주고, 창남이는 눈 먼 어머니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교복 바지와 양말까지 벗어주었다는 것이다. 그간의 사정을 알게 된 선생님과 친구들은 살이 터지도록 추운 날 셔츠도 적삼도 안 입은 벌거숭이 맨몸으로 학교에 올 수밖에 없었던 창남이의 용기와 의기에 감동하며 눈물을 흘리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창남이 같은 아이가 있을 수 있나 의심한다. 타인의 어려움에 공감한다고 해도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소설 속 가상 인물이니 가능한 것이 아닐까라며 굳이 현실과의 거리를 확인한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 그런 아이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한가에 대한 고민이다. 창남이네는 외지에 돈 벌러 나가 사는 형님이 있을 뿐 평소에는 눈 먼 어머니랑 둘이 살고 있다. 창남이가 이십 리 먼 길을 걸어 학교에 다니기까지는 본인의 의지도 있었겠지만, 형님과 이웃들의 도움 없이 불가능 했을 일이다. 서로 없는 살림이었겠지만 눈 먼 창남이 어머니가 아이를 키우며 살 수 있었던 마을이 있었다. 마을과 이웃은 창남이에게 큰 울타리가 되어 주었고, 창남이는 어머니의 눈이 되어주고 손발이 되어 주며, 이웃의 이야기며 세상의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전하며 유쾌하고 섬세한 아이로 성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창남이 앞에 큰 불로 어머니와 함께 자신을 키워 준 이웃들이 집도 없이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이 거리에 나앉게 된 처지가 눈 앞에 있다. 창남이의 행동은 어려움에 닥친 이웃을 도와야 한다고 누군가 억지로 가르쳐서 알게 된 지식이 아니라, 몸에 밴 삶이다. 그래서 남아있는 것들이 보잘 것 없는 것일지라도 창남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었던 마음은 자연스럽다.

아이들은 하루의 대분분을 학교에서 보낸다. 이웃과 마을 공동체의 개념이 희미한 요즘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학교는 가족을 떠나 처음으로 사회를 경험하고, 공동체를 경험하는 곳이기도 하다. 태어나고 자란 환경은 제각각이지만 같은 처지 같은 상황을 맞이하며 동등한 인격체로 만나는 유일한 장소. 그래서 제일 순수하고 참된 마음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곳이다. 바라건대 창남이의 의기를 키운 가난한 마을이 있었다면, 사람을 만나고 힘을 얻을 수 있는 곳, 나와 남이 다르지 않음을 배우는 곳이 우리들의 학교가 되면 좋겠다. ‘우정’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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