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백남기 추모대회에 다녀오다

서울대병원장례식장 1호실. 故 백남기 농민의 빈소이다. 그는 2015년 11월 14일 저녁 6시 50분에 집회 중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 뇌사상태로 317일 동안 사투를 벌이던 그는 지난 9월 25일 오후 1시 59분에 운명을 달리했다. 경찰과 정부는 그를 전문 시위꾼으로 몰아부쳤지만 지난해 11월 14일 집회는 ‘쌀값 보장, 쌀 수입개방 반대’를 외치던 전국 농민들의 집회였다.

그가 사망한 지 벌써 10일이 되었지만 장례를 언제쯤 치를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다. 그의 사인을 두고 물대포를 쏘아 그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찰이 사망원인을 밝혀야겠다며 부검을 신청하고, 법원이 유가족과 협의를 거쳐 부검하라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 지난 10월 2일 대학로에서 열린 故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 장면. 3만 여 명이 운집한 이날 행사에서 참가자들은 “국가폭력을 자행하는 살인정권을 끝장내자”는 구호를 외치며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광화문까지 행진했다.

국가폭력에 사망한 故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지난 10월 2일(일) 오후4시 백남기 농민이 안치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 대학로에서 ‘故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를 열었다. 순천에서도 백남기 농민과 함께 활동했던 순천농민회 회원들과 추모대회 참가를 신청한 시민 100여 명이 전세버스를 빌려 추모대회에 다녀왔다.

추모대회에 참석한 순천농민회 김광옥 별량지회장은 “내가 38세에 별량지회장을 맡았는데, 벌써 70세가 되었다. 나도 백남기 농민을 따라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을 자책하게 된다”고 슬퍼했다.

 

순천여성농민회 남임 부회장은 “백남기 농민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임대료만 하루 350만 원이라고 해 여성농민들이 음식 지원과 모금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한 뒤 “작은 힘이라도 하나하나 모아야 대안이 된다”고 힘을 북돋았다.

기막힌 나라. 물대포 맞고 뇌사에 의사는‘병사’판정
참가자들“세월호, 백남기…국가폭력, 지금도 진행 중”
유족“경찰이 죽여 놓고 부검 신청, 누가 동의하겠나?”


순천을 출발한 추모객들은 먼저 서울대병원장례식장의 故 백남기 농민의 빈소를 찾아 합동조문을 하였다. 故 백남기 농민의 빈소에는 전국에서 몰려드는 조문객들이 발디딜 팀이 없어, 30명 단위로 합동조문을 했다. 순천 조문객들이 장례식장을 찾았을 땐 40여 명의 고등학생들이 “어르신을 이렇게 보내드릴 수는 없습니다”, “백남기 할아버지를 잊지 않겠습니다”는 문구의 플래카드를 들고 단체로 조문을 와 눈길을 끌었다. 

 

故 백남기를 조문한 뒤에는 서울대병원 앞 도로인 대학로에서 오후 3시부터 ‘성과퇴출제 폐지와 공공기관의 공공성 강화’를 내걸고 파업 중인 공공기관 노조 파업을 지원하기 위한 국민대회가 열렸다. 

사회를 맡은 참여연대 안진걸 사무처장은 “참 이상한 나라다. 물대포에 쓰러진 사람을 병사라고 우기고, 집권여당 대표가 단식을 한다”고 말한 뒤 “돈보다 생명을, 재벌 배불리는 민영화 저지를 위해 나선 공공기관 노조의 파업을 응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계속된 故 백남기 추모대회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농민회원과 노동자들 3만 여명이 모여들었다. 백남기 농민과 함께 카톨릭농민회 활동을 해 왔던 정연찬 회장은 “고인을 애도하기도 아쉬운 시간에 경찰로부터 시신을 지켜야 하는 기가 막힌 현실이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집회 때 물대포를 맞아 구급차로 서울대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사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다’했는데, 더 이상 사인을 밝힐 게 있나?”며 “그가 사경을 헤맬 때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통곡했다.

 
이날 추모대회에 유가족 대표로 참여한 故 백남기 농민의 둘째 딸 백민주화 씨는 무대에 올라올 때부터 울음을 삼키며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그의 말을 듣던 집회 참가자들이 함께 울먹이며 집회장도 울음바다로 변했다. 백민주화 씨는 “왜 부검에 동의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수술 직후 뇌사상태와 비슷하다고 했던 주치의는 사망진단서에 ‘병사’라고 표기하고, 표기의 실수는 인정하지만 수정할 수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인의 증거가 넘쳐나는데, 어느 자식이 아버지의 시신을 또 다시 수술대에 올려 정치적인 손에 훼손시키고 싶겠는가.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두 번 세 번 죽이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故 백남기 농민의 장례식장에는 세월호 유가족이 빈소를 지키고 있다. 세월호 침몰 900일이 되도록 아들 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밝히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국가폭력에 국민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기막힌 현실.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에 참석한 세월호가족대책위원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그저 추모의 눈물 한 방울 보태려고 오늘 추모대회에 왔는가? 이제 추모의 눈물을 분노로, 연대로 바꿔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바로 내가 세월호에서 죽고, 물대포에 죽고 있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 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바로 나이고, 바로 우리”라고 강조했다.

이날 추모대회를 개최한 故 백남기 대책위는 전국민 행동강령을 제안했다. 전국에서 시국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백남기 진상규명 특검 도입 서명운동과 함께 추모집회 참석과 함께 특히 경찰의 백남기 농민 시신탈취 시도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모대회 참가자들은 대학로에서 추모대회를 마친 이후, 지난해 11월 14일 故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쓰러진 종로와 광화문까지 시가지 행진을 하고 임시분향소에 헌화한 뒤 행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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