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우
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그리 멀지 않은 출근길. 걸어가면 30분이 넘지 않고 자전거로는 그 반이다. 예전 운전하여 씽~ 갈 때에는 몰랐다. 길마다, 때마다 다른 냄새가 나는 줄을.

연향 3지구 조각공원 어귀에 자리 잡은 자귀나무는 길게 손 내밀어 그늘도 주고 선선한 향기도 준다. 자주 자귀나무의 냄새를 맡으려 걸음걸이를 부러 늦춘다. 이제는 지나버린 엄청난 올여름이었다. 그 옆을 쓱- 지나는데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어찌나 맑고 투명한 향이었던지!

명말마을을 안고 있는 산을 끼고 돌면 시원한 계곡 바람에 실린 상큼한 사과 향을 맡을 수 있다. 아무리 둘러보고 좋지 않은 시력으로 눈을 찡그려봐도 사과나무는 없다. 향내의 근원은 커다랗게 우뚝 선 바위 절벽이다. 북서풍이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딱 그만큼의 바위절벽에 부딪히면 사과 향을 내나보다. 가끔 맡을 수 있는 그 향기는 느긋한 걸음에 주는 바위절벽의 선물이다. 자연은 그저 그곳에 그냥 있는 게 아니다. 나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봐 달라, 귀 기울여 들어 달라, 깊은 숨 들여 냄새 맡아 달라 ‘때 쓰는 아이’다. 스쳐 지나쳐버리면 작아서 보이지 않는, 쉽게 딴 짓하고 다치는 그런 아이다.

메가박스에서 하이마트로 가려면 야트막한 고개를 넘는다. 아래로는 철길이다. 여수에서 넘어오는 열차가 지나칠 때는 예의 그 따가닥따가닥 쇠끼리 맞닿는 소리와 비릿한 냄새를 남긴다. 이제는 그것 또한 자연이 되어버린 세상에 살고 있다. 인공과 자연이 너무 혼재되어 정확히 구분하는 게 무의미한 세상이다. 100% 자연산이 어디 있으랴.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이고, 인공 또한 자연으로 사라질 뿐이므로.

너른 8차선 대로를 비켜서 골목으로 들어가면 자그마한 천주공원이 나온다. 동성공원보다 작고 사람도 많지 않다. 갑자기 비가 내린다. 빗방울이 제법 굵다. 맨땅에 헤딩하는 제법 굵은 빗방울. 이내 지워질 자국을 남기고 맨땅 냄새를 안고 튀어 오른다. 그래, 이게 바로 땅 냄새였지. 고향 신작로 걸을 때 맡았던 그 땅 냄새와는 뭔가 약간 다르지만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다. 어리던 내가 커버려 땅과 멀어져서 이리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후회는 없다. 조금 있으면 아주 가까워질 것이므로.

한 발걸음의 거리는 한 자, 약 30cm정도다. 이리 가까운 데도 공기의 흐름은 천양지차다. 비단에만 결이 있는 게 아니라 바람에도 결이 있다. 결 따라 흐르는 냄새 또한 달라도 너무 다르다. 동성공원 옆 인도를 걸을 때의 냄새와 공원 안 산책로를 걸을 때의 그것을 비교해보라.

쾌쾌한 자동차 매연과 끈적한 아스팔트의 꾸적한 냄새를 맡다가, 한 걸음 건너 초록 향나무 속으로 들어가 파릇한 내음이 콧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바로 포근해진다. 그쪽 결을 벗어나 이쪽 결로 오는 순간 다르다. 한 척의 차이가 이리 크다.

사람무리의 결 또한 다르지 않으리라. 한 사람의 향내는 그리 크지 않다. 모아모아 여럿이 내는 향내는 큰 결을 이루어 도도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한다. 이쪽과 저쪽의 삶의 모양은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허나 결을 이루어 풍기는 내음과 흐름의 방향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 그래서 선택이 중요하다. 이 쪽이냐 저 쪽이냐, 어느 결을 타고 어떤 흐름에 속해있냐에 따라 풍기는 냄새가 다를 것은 분명하다. 나는 내 주위를 킁킁거려본다. 매연냄새와 나무향 중 무슨 냄새가 내 주위에서 나는지. 그리고 내 속을 들여다본다. 마음결이 얼마나 고운지.

마음결이 비단결이 되기 위해서는 주어진 관성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 그 길지 않은 거리를 매연을 내뱉으며 자동차 타고 허리를 짓누르며 스쳐갈 것인지, 조금 힘에 부치고 빠르지 않지만 주위 풀과 나무, 땅 냄새를 맡으며 오감을 깨우는 느린 걸음을 걸을 것인지는 오직 나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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