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젊은 태양’의 <결혼>을 보고
“오늘 만나는 여인은 미인일까”. “상대는 나의 청혼을 받아들일까”. 남자(주진석 분)는 호화 저택 주인 행세를 한다. 하지만 그는 빈털터리다. 피아노, 피아노 연주자, 양복, 구두 및 각종 액세서리 모두 약속 시간이 되면 되돌려주어야 한다. 사기꾼의 청혼 전략은 성공할 수 있을까?
공연은 초반부터 관객의 관심과 호기심을 유도하는데 성공했다. 빌리기 놀이가 무대에서 객석으로 확장된다. 배우와 관객이 나누는 능청과 익살 버전의 빌리기 전략, 배우는 실제 관객의 넥타이를 빌리는데 성공한다. 그 넥타이로 위기를 모면하는 공모 놀이 역시 연극성 확장에 기여한다.
이 연극의 매력은 빼앗기는 과정에서 감추기와 들통나기, 그 줄다리기 양상이 다채롭다는 점이다. 감추려는 전략, 들통 날 수밖에 없는 상황, 이게 느림의 그림으로, 어떤 경우는 급박한 상황으로 무대화된다. 창의적인 정보 차이 전략, 관객은 공모 놀이의 맛을 무한대로 즐긴다.
너스레의 겉 그림은 느림과 여유다. 그러나 그게 가짜 너스레라는 것을 알기에 관객이나 당사자 모두 마음이 급하다. 이들 공히 긴박 정서를 주체 못한다. 물건 빼앗기기, 전략 카드 실종, 그리고 피 말리는 상황, 하인(박왕민 분)의 대응은 협박에서 점차 폭력으로 돌변한다. 스릴과 서스펜스의 연극성이 우러나온다. 하인을 향한 남자의 태도, 겉으로는 센 척하지만 둘 만의 세계에서 굴종과 비굴함이 연출된다. 무너짐은 질펀한 희극성을 자아낸다.
사기꾼 남편에 대한 트라우마, “내 딸만은 사기꾼에게 시집보낼 수 없다”, “상대 남자가 빈털터리 사기꾼일 때 재빨리 돌아오겠다”며 엄마 앞에서 맹세까지 했다. 이 남자, 매너 좋다. 얼굴도 잘 생겼다. 그런데 알고 보니 빈털터리 사기꾼이다. 문지혜의 가창력과 호소력이 발라드 선율로 빛을 발한다. 농익은 허스키함,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허우적거림이 농밀하게 무대화된다. 탄력적인 반응 연기는 이 뮤직드라마의 장악력 제고에, 흡인력 고양에 결정적 기여를 한다. 인물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일깨운 박선영의 탄력 선율 연주 역시 공감과 공명 우주 확장에 결정적 기여를 한다.
인생, 좀 빌려 달라. 귀한 시간, 기분 좋게 공유한 후 돌려 드리겠다 한다. 와이셔츠마저 빼앗긴 남자의 모습 애처롭다. 덤이라는 애칭 인생, 빌림이란 인생철학, 이를 내 인생에 적용하여야 할 실제 상황, 문제는 내 몸과 마음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딜레마, 머뭇거림, 결국 자리를 뜨는 여인(문지혜 분), 남자의 가슴앓이 호소가 발라드 선율로 무대화된다. 관객 모두, 가슴이 미어짐을 주체 못한다. 되돌리는 여자의 발걸음, 숨죽임, 마주하는 두 남녀, 뜨거운 전율과 감동, 두 남녀의 재담과 위트가 순간 공감의 행복 아우라를 확장시킨다. 주진석의 공연 장악력, 무대와 객석을 자유자재로 오가면서 빌리기 놀이와 익살의 맛을 자연스레 공유케 했음은 이 공연의 또 다른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