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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전환을 위한 조금 다른 생각
김수현  |  webmaster@agora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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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호] 승인 2016.09.10  13: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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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년 초여름에 고향인 순천에 돌아와 올해는 텃밭을 일구며 귀농을 준비하고 있다. 평소 현대 농업(기계와 화학 비료와 농약에 의존하는)의 폐해와 그 지속 불가능성에 대해 익히 들어왔던 터라, 귀농을 준비하며 자연스럽게 바른 농업, 생태적 농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장수군 농민인문학 ‘닦음과 행함’에서 지난 8월 말 1박 2일 일정으로 경기도 양평 문호리 ‘리버 마켓’과 홍천 ‘자연농배움터지구학교’을 탐방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전국 곳곳에서 모여든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이 이번 일정에 함께 했다.

‘리버 마켓’의 신선한 활력
처음 가 본 양평은 산수의 풍광이 그림처럼 어우러진 아름다운 고장이었다. 주말이고 수도권에서 가까워서 그런지 나들이객들로 붐비는 곳이 많았다.

문호리 강변에 널찍하게 펼쳐진 리버마켓은 마치 내가 호주에 살 때 보았던 마켓들을 연상시킬 정도로 서구적이고 세련된 멋과 활력을 풍겼다. 수도권의 높은 구매력으로 뒷받침되는 덕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다.

참가비 일부를 점심값으로 지급받아 이곳에서만 통용되는 지역화폐로 바꿔 밥을 사먹었다. 폭염 속에서 들이킨 얼음 동동 콩국수 한 사발이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었다.

점심을 마치고 ‘리버 마켓’의 대표 감독 ‘캐논 아빠’를 모시고 설명을 들었다. 천막 그늘도 별 소용이 없는 폭염이었지만, 중간에 빠진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진지한 대화가 오갔다. ‘리버 마켓’이 어떤 취지로, 어떻게 시작되었고 성장해 왔는지, 어떤 원리로 운영되고 있는지 들으면서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그저 약간 세련되게 상업적인 마켓 정도로 짐작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민주적-자발적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돈 냄새 맡은 대기업과 건달패들의 유혹과 위협에도 끄덕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대표 감독의 카리스마적 리더십과 ‘끝장 토론’이라 불리는 민주적 총회가 절묘하게 결합돼, 하나의 대안적인 경제 커뮤니티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비록 내게는 여전히 너무 소비적인 마켓의 하나로 보이기도 했지만, 탐욕스럽고 광란적인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난 작은 판매자들과 소비자들의 우애로운 연합이란 모습만으로 충분히 대안 경제의 싹으로서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 탐방의 취지 중 하나가 최대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반생명적인 소비를 줄이는 여행을 하자는 것이었다. 전문 숙박업소가 아닌 마을회관을 빌리고, 미리 먹을거리를 싸 와서 직접 밥을 지어 숙식을 해결했다. 각자가 자기 이불을 챙겨 왔고, 자기 삶을 나누는 10분 발표 시간을 가졌다. 나는 특히 두드러진 발표자가 되고 말았는데, 나의 오랜 우울증 경험과 그 치유의 과정이 어떻게 나를 농적 삶으로 이끌었는지 토로하다가 그만 눈물을 한바가지 쏟아버렸기 때문이다. 쑥스럽기는 했지만 후련하고 감동적이기도 했고, 그 덕에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었으니 후회는 없다. 

먹고 마시는 뒤풀이 대신 요가 수업으로 하루를 마무리했고, 각자가 가진 재주-노래, 시, 판소리, 연주, 요가, 마사지, 농 짙은 유머-를 동원해 서로를 기쁘게 했다. 리버마켓에서 점심 한 끼를 해결할 때 부득이 약간의 일회용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외에는 스무 명 넘는 인원이 1박 2일 여행을 했다고는 믿기 힘들 만큼 적은 양의 쓰레기가 나온 여행이 되었다.

자연농 이야기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양평과 바로 어깨를 맞대고 있는 강원도 초입의 홍천이었다. 홍천에 이번 탐방의 주 목적지인 최성현 농부의 농장이 있었다. 그는 30여 년 전, 환경이니 생태니, 귀농이니 하는 말도 낯설던 때 귀농해 자연농을 연구해 오고 있는, 국내 자연농계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실제로 만나 본 그는 어쩐지 선비나 도인이 연상되는 조용하고 소탈한 사내였다.

둘째 날 아침밥을 지어 먹고 농장 견학을 시작했다. 병풍같은 산들로 안온하게 감싸인 곳에 그의 논밭이 자리하고 있었다. 땅을 갈아엎지 않는 무경운, 일체의 화학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무투입 방식으로 농사 짓고 있는 논밭을 최 선생의 설명과 함께 둘러보고, 논두렁에 둘러앉아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아주 촘촘히 벼를 심은 일반 관행농 논보다 훨씬 넓은 간격으로 벼가 심어진 것이 눈에 띄었다. 벼뿐만 아니라 풀이며, 벌레며, 작은 물고기가 보이는 등, 그야말로 논 생태계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이 가뭄에도 크게 상하지 않은 밭작물도 이채로웠다. 수년 째 갈아엎지 않고 풀로 덮어가며 ‘살리고 모신’ 흙은 검고 기름져 보였다. 잡초(이 말 자체가 무척 인간중심적이다)는 싸워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오히려 농사의 근본이 되는 흙을 지키고 살리는 은혜로운 존재라는 통찰이 새삼 먹먹하게 다가왔다.

   
▲ 자연농을 연구해 오고 있는 최성현 농부의 논
   
▲ 자연농을 연구해 오고 있는 최성현 농부의 밭

문명과 인류의 미래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그가 얼마 전부터 시험 중인 ‘숲밭’이었다. 말 그대로 숲 언저리에 먹을 수 있는 야생초와 뿌리 작물 등을 함께 기르는 형태. 이것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제창되고 있는 개념이라 했다. 그는 “이른바 자연농마저도 실은 파괴에 기반하고 있다. 모든 동식물 가운데 오직 인류만이 부끄러운 먹을거리에 기대어 살아간다” 며, “이러한 숲밭이 어쩌면 산업 문명의 붕괴 이후 인류가 기댈 최후의 유일한 ‘오래된 미래’가 아닐까?” 하는 조심스런 전망을 밝혔다.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터무니없고 현실성 없는 괴상한 이야기로 들릴 것을 익히 짐작한다. 얼마 전까지의 내게도 그랬다. 

   
▲ 자연농을 연구해 오고 있는 최성현 농부와 논 밭을 둘러보고 논두렁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처음 자연농이란 개념을 접했을 때, 나는 솔직히 이 자연농을 추구하는 농부들이 일종의 ‘아라한’, 즉 소승적 태도의 구도자들이 아닌가 의심했다. 속세의 어지러움을 등지고 숲속에 틀어박혀, 철저히 자기완결적인 윤리적 결벽성을 완성해 독야청청하려 드는. 그러나 실제로 만나 본 자연농부 최성현은 그런 선입견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오늘날 한국 땅에서 한 명의 농부로 살아가는 일의 현실적 어려움을 솔직하고 절절하게 토로하는 생활인이고 활동가였다. 그리고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밤낮없이 걱정하는 대승적 구도자이기도 했다.

나도 선학들의 발자취를 좇아 한명의 농부가 되려 한다. 모든 목숨붙이들을 먹이고 기르는 어머니 대지인 흙, 거기에 살포시 깃들어 삼가고 섬기는 마음으로 생명을 돌보는 농부야말로 도(道)에 가장 가까운 존재라 했던가. 인지인위(人智人爲)의 분별지(分別智)에서 나온 농사를 지양하고, 나와 남이 둘이 아닌 자리인 무차별지(無差別智)의 세계로부터 출발해 우리가 잃어버린 온전한 인간다움을 되찾아가는 치유의 농사를 하려 한다.

바로 이 자리에서 명상과 혁명은 하나가 되지 않을까. 

전남녹색당 당원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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