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기로에 선 예술가들, 작품성 or 경제력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은 학문과 예술 분야 종사자를 적극적으로 후원하여 르네상스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또한 그간 모은 예술품을 사회에 기증하여, 지방의 중소도시에 불과한 피렌체가 오늘날까지도 각국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될 수 있었다. 이러한 메세나 정신이 광주·전남의 예술계에 시급한 상황이다.

▲ 강연하는 박상호 조선대 미술대학장
조선대 박상호 미술대학장이 순수미술을 하는 제자를 설문조사 한 결과, 90%가 훨씬 넘는 이들이 취업을 희망한다고 답했다. 또 1905년에서 1984년까지 태어난 68명 작가 중에서 구상화를 전공하는 비율이 76.5%로 반추상 8.8%와 추상 14.7%를 압도했다. 나이별로 보면, 70대 이상 현역작가의 경우 구상이 66.6%, 반추상 9.5%, 추상 23.8%인 반면에, 70대 이하 현역작가는 90.9%가 구상, 9.1%가 구상화를 추구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박 교수는 “일제 치하라는 암울한 시기에도 소신껏 작품세계를 구축한 이들이 많았던 것과 대조적으로, 지금의 미술계는 팔리는 그림을 위해 작업하는 작가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박상호 학장은 예술가가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메세나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어떠한 제약도 없이 예술가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말레이시아 거부들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시립미술관 본관에서 8월 25일부터 전시회를 열고 있는 정영창 작가는 전남 목포 출신으로 20대 초반에 독일 유학길에 올라 상업성을 떠나 오로지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추구했다. 그 결과 후원자의 부재로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다 2015년에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을 통해 비로소 고국에 널리 이름을 알렸다.

일제강점기에도 우리 지역에서는 메세나 활동이 활발했다. 진도 출신의 의재 허백련은 영암 대지주 현준호의 후원을 받아 1938년부터 광주 무등산 자락에 정착했다. 이에 남종화의 대가인 의재 선생이 예술가이자, 교육자이며 사상가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 무등산에 위치한 의재미술관은 의재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건물 자체의 예술성으로 2001년에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했다.

▲ 의재미술관 전경

메세나 활동이 예술가 개인이 아니라 지역의 미술관을 발전시킨 사례도 있다. 재일교포 2세인 하정웅 씨는 평생에 수집한 예술품 9800여 점을 국내의 국공립미술관, 박물관, 대학에 기증하였다. 소유가 아닌 공유의 개념에 따라 대중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지원한 사례이다. 그는 타고난 심미안으로 신진 예술가를 발굴하고 후원하였다. 

▲ 의재미술관 전경

하정웅 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 공립미술관으로 개관한 광주시립미술관에 피카소와 샤갈, 이우환 등 세계적인 유명 작가뿐만 아니라, 국내외 신진작가들을 포함한 총 2600여 점을 기증했다. 특히 이우환의 작품은 36점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으며, 최근 위작 논란으로 수사할 때에 참고자료로 사용되기도 했었다. 현재 본관에서는 하정우의 컬렉션 중 일부와 그가 후원하여 열린 각종 전시회 포스터,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짐작할 수 있는 사진 및 부인이 기증한 인형들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미술관이 예술가를 후원하는 경우도 있다. 광주시립미술관은 지역 출신 작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해외 미술계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 2009년부터 중국에 북경창작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2014년부터는 국제레지던시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2002년 미국 뉴욕의 퀸스미술관을 시작으로 세계 주요 미술관과 교류 협약을 체결하여 국제교류전을 추진하고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첨단기술, 문화적 다양성, 아시아의 전통을 창조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혁신적인 콘텐츠의 연구·제작을 도모하기 위해 창제작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ACC_커미션 시리즈’는 창제작센터와 국내외서 주목받는 작가의 협업을 통해 작품을 공동 제작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이다.
 


메세나란?
메세나(Mecenat)는 로마제국의 정치가로 당대 시인을 후원했던 마에케나스(Gaius Clinius Maecenas)의 프랑스 발음에서 유래한다. 예술·문화·스포츠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사회적·인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공익사업에 대한 모든 기업의 후원 활동을 의미한다. 1966년 미국의 기업가 데이비드 록펠러가 기업의 사회공헌 예산의 일부를 문화예술 활동에 할당하고자 건의하여 기업예술후원회가 발족하면서 이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다. 한국의 경우 1994년에 한국메세나협회가 설립되었고, 2016년 3월 현재 235개 기업이 회원사로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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