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사/람-16년째 건어물상하는 윤소희씨

 
비오는 웃장날. 우산을 쓴 사람들은 미처 장을 둘러볼 틈도 없이 바쁘게 지나간다.
웃장 아랫장을 오가며 건어물상을 하는 윤소희(40세)씨는 장사한 지 16년이 되었다.
30년째 이어오던 시어머니의 일을 거들다 10년 전부터 도맡아 하고 있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아이 셋을 키우는데다 병환으로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산다. 남편은 목포에서 장애인체육회 일을 하고 있어 금요일 저녁에나 집으로 오는, 주말부부다.
큰 아들은 지적장애 2급으로 이제 스무 살이다. 둘째아들은 운동선수였는데 최근 모델을 꿈꾸고 있다. 막내는 네 살짜리 여자아이다. 윤 씨는 학창시절 탁구 선수였고, 남편은 유도선수였다. 우연히 시작된 만남에 아이(큰 아들)가 들어섰고 그해 스무 살에 결혼했다.

▶ 이른 나이에 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하셨네요.
제가 탁구를 해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여수로 광주로 훈련 다니며 혼자서 생활했거든요. 자유롭게 살다가 스무 살 때부터 시어머니 시아버지랑 같이 사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는 시부모님 세끼 밥 안 차려주면 쫓겨나는 줄 알았어요. 남편은 합숙한다고 학교에 있지, 혼자서 집에 있으려니까 답답해 미치겠더라고요. 밖에 나갈 수 있는 시간이 일하는 시간뿐이었어요. 탈출구를 찾다가 보험회사에 들어갔는데 그때 갑자기 속이 미식미식한 거예요. 둘째를 가진 거였어요. 하지만 한번 일하러 나가야겠다고 맘먹고 나니 집에서 못 있겠더라고요. 일을 하고 싶다 하니 어머니가 “그럼 새벽장에서 나를 도와주라”는 거예요. 집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반갑데요. 그때부터 매일 장에 나갔어요. 그 후로 스트레스 해소방법이 장사였어요.

 
▶ 그 나이에 시장에서 장사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남들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책임져야 할 사람이 너무 많으니 해야죠. 시장에서 장사하는 시간이 그래도 저에게는 가장 재미있는 시간이에요. 시장에 있을 때는 모든 것을 잊어버려요. 삶의 무게를 털 수 있는 시간이에요. 사람 만나는 것이 행복해요. 제 그런 마음을 손님들도 느끼시나 봐요. 만나는 것을 편안해하고 좋아해요.

▶ 장날에 새벽부터 나가면 애들은 어떡해요?
장날은 결혼 안한 남편 친구가 집에 와서 자고 아침에 애들 학원이랑 학교 보내줘요. 막내가 도착할 시간이 되면 시숙님이 오셔서 애들 받아주고 저녁밥을 차려주고요. 우리집은 시어머니랑 인학이(큰 아들) 때문에 시숙님이랑 언니랑 친구들이 도와주러 들락거려서 늘 손님으로 북적여요. 주말에 장이 끼는 날은 너무 좋아요. 애들을 안전하게 봐줄 수 있는 남편이 집에 있으니까. 일하면서도 마음이 편하고요.

▶ 인학이가 있어서 어려움도 많겠지만 가족끼리는 돈독해지겠네요.
아이들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받는 사람도 있다는데, 우리 집은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지내요. 남편이 주말이면 애들 데리고 순천만까지 자전거타고 나가고, 등산하고 가족들과 함께 다니는 것을 정말 좋아해요. 막내 하은이는 낳으려고 생각도 안했는데 생겼어요. 딸인데다, 여자애들이 애교가 많잖아요. 온 집안이 삭막하다가 분위기가 달라졌지요. 둘째가 유도선순데 모델을 해보겠다고 해서 다른 쪽에 신경 쓸 계기를 줘요. 거기서도 재미있고 인학이가 도민체전 수영대회 나가요. 참가하는데 의미가 있지만 사는 것이 재미있어요. 힘든 것만은 아니고. 나 자체가 바쁘게 지내서 좋아요.

▲ 인학이는 인터뷰 도중 끊임없이 엄마의 관심을 끌고자 말을 걸었다. 도민체전 출전하는 이야기가 나오자 신이 나서 전국체전도 출전할거라며 얼굴이 환해진다.

▶ 인학이가 엄마 아빠 닮아서 운동을 좋아하나 봐요.
수영을 좋아해요. 의욕은 있지만 뜻대로는 안 되지요. 체육 쪽으로 가면 좋은데 문제점이 뭐냐면 인지능력에 따라 습득 능력이 다른데 지적장애 급수 구분 없이 통합해 버려요. 분류하기 힘드니까. 그러니 지체장애 3급이 다 장악하죠. 지적장애 2급인 인학이는 열심히 해도 설 자리가 없어요.

▶ 살면서 힘겨운 때가 있을텐데
그냥 무던하게 살아요. 어찌되겠지 하며 사는데 요즘은 시어머니 대소변 실수가 잦아지고, 인학이가 최근 경기증세가 나타났어요. 밖에 다니다가 경기가 나면 2차 사고 때문에 걱정이죠. 최근 인학이가 사람 눈빛을 마주치면 욕을 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중학생들이 그걸 보고 참지 못하더라고요. 장애인이니 이해해 달라고 설명해도 이해를 못해요. 기분 나쁘다는 거예요. 학생들이 떼거리로 몰려다니면서 인학이를 놀려서 괴로웠어요. 우리집이 1층집인데 우리집을 힐끗 들여다보면서 장애인집이라고 놀리고 그럴 때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르기도 하지요. 길거리에서 그 아이들을 만났어요. 애들이 다가오는데 순간적으로 눈물이 확 쏟아졌어요. 저도 모르게 “니가 하는 행동에 온 가족이 상처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소리치며 길바닥에서 펑펑 울어버렸어요. 그 애도 따라 울더라고요.

▶ 장사하면서 보람이 있다면?
최대한 좋은 물건을 가져다 놓아야 해요. 손님들이 “이 집 물건 좋네!” 할 때 뿌듯해요. 저는 손님들하고 부딪치는 것이 좋아요. 단골이 꽤 있어요. 12년째 단골인 어떤 아가씨와 요즘 친하게 지내요. 경상도에서 온 친구인데 남편 친구 중 결혼 안한 사람이 있어 이어주려다가 급 친해졌어요. 애들 때문에 잘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시장사람들이랑 계모임 하는 것도 재미있고요. 저번에 시장에서 관광버스 타고 다른 동네 특화시장 구경을 갔어요. 사람들이 버스가 출발할 때부터 돌아올 때까지 춤을 추며 놀더라고요. 저런 체력이 있으니 장사하는구나 싶었어요.

▲ 탁구선수였던 그녀는 선혜학교에서 1주일에 한번씩 탁구를 가르친다. 섬세한 운동이라 지적장애인은 잘 습득하지 못하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새 실력이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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