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 花 (꽃이 많고), 多 池 (못이 많고), 多 石(井)槽 (돌우물이 많다)

 

조계산은 남도의 명산으로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는 불교문화의 중심이며, 순천사람의 주요한 삶의 터전이다. 
순천시 송광면 출신인 김배선 씨는 약 15년 동안 조계산과 그 주변 마을을 누비면서 주민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한 자료를 토대로,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이 책 주요 내용 중 일부를 김배선 씨의 동의를 받아 순천광장신문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연재한다. 편집국


1. 多花(꽃이 많다)

선암사는 우리나라의 다른 절이나 이름난 정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꽃이 많은, 꽃의 천국이라 할 수 있다. 종류는 물론 그 수를 모두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꽃이 피는 시기도 설한과 인내를 상징하는 600년 홍매가 잔설을 꿰뚫고, 동백과 목련이 봄기운을 재촉하면, 영산홍과 자산홍의 흐드러진 화사가 만화의 시샘을 재촉하여 절이 온통 봄꽃 속에 묻히고 만다.

 
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봄의 꽃 잔치가 시들할 무렵이 되면 보라와 순백의 도라지가 언제나 자연의 섭리를 따르려는 야생화들을 이끌어 빈자리를 메우는가 싶고, 탐스런 수국이 살빛 뽀얀 여인들을 줄줄이 끌어안으며 출렁이는 앞가슴을 함박웃음에 실어 풍만을 자랑 삼는다.

 
이때를 놓칠세라 석류는 모난 주황 입술을 별처럼 내밀고, 이내 배롱나무의 매끄럽게 굽은 줄기는 붉은 양산을 어깨 위에 비스듬히 걸쳐 펴들고 한여름의 긴 녹음을 한들거리니 딴 생각에 깜빡 때를 놓친 야생화마저 수줍은 꽃향기를 나뭇잎사이로 내밀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무더웠던 성장의 열기가 한풀 꺾일 무렵이면 꽃무릇의 애끓는 사랑의 절규는 돋아날 잎을 향해 상사의 이별을 고하게 되고, 드디어 서릿발로 다가올 나목의 어귀를 황백의 국화들이 가로막고 서서 다가오는 담백한 계절을 향해 미소를 보낸다.

사시사철 장소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절 전체가 多花를 이룬다. 이는 한두명 스님의 취향이나 노력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자연과 하나로 살아온 선암사의 역사에 의해 만들어진 아름다운 전통이다.  


2. 多池(못이 많다)

 
선암사는 아름다운 연못이 많기로 소문난 절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지금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자연석으로 아름답게 축조된 연못이 일곱 개나 있었다. 소속 암자인 대각암과 대승암에도 연못이 있었으니 이만하면 선암사를 연못이 많은(池多) 절이라 하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선암사의 연못을 보면 ① 삼인당 연못(선암사 입구) ② 일주문 큰 연못(일주문 좌측) ③ 일주문 작은 연못(큰 연못 위. 지금은 없음-) ④ 창파당 앞 연못 (둘로 나뉘어 사각으로 개축) ⑤ 창파당 아래 연못(공양간. 지금은 없음) ⑥ 천불전 앞 연못(지금은 작은 웅덩이) ⑦ 첨성각 후문 연못(선암사 집수 및 배수지) ⑧ 무우전 앞 연못 등이다.

선암사가 이처럼 연못을 많이 갖게 된 이면에는 선암사가 겪었던 화마의 시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1579년 정유재란 때 왜군의 방화로 건물 거의 전소.
   *  1759년 실화로 건물 40여 동 전소.
   *  1823년 실화로 건물 16여 동 소실.

이후에도 화재 발생으로 방화가 절실했던 선암사로서는 소화수 확보를 목적으로 사찰 내 곳곳에 연못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연못이 지금은 아름다운 경관이 되어 선암사의 일부가 되었다. 그런데 1995년 이후 건축 공사 등으로 연못 수가 줄어들고, 아름다운 원형도 상실되어 가고 있다.  

 

3. 多石槽·多井(돌우물이 많다)

▲ 달마전 석정

선암사는 석조(정)가 많기로 이름난 절이다.

우리나라의 큰절이라면 어느 곳이나 석조가 있지만 선암사처럼 석조를 많이 보유한 곳은 찾아볼 수 없다. 수량뿐만 아니라 규모면에서도 많다. 소형에서 초대형까지 많고, 형태 또한 원형과 사각, 말구유형 등 다양한 모습이다.

1967년까지만 해도 큰절에만 20개가 넘는 석조가 있었는데, 무우전의 홍매화 담장 밑에 있었던 3기(삼탕)가 사라지고, 지금은 소형을 포함해서 14기가 있다. 운수암과 대각암, 대승암에도 석조가 있고,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암자 터에도 석정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

선암사 석조의 위치와 용도를 보면, 개방구역에 설치된 공동 음수용이 3기, 건물의 내부에 있는 대중 공동생활 식수용이 7곳에 11기, 소속 암자(터)에 4기 등 모두 18기가 있다.

석조(석정)는 일반 가정에서는 사용(제작)할 엄두도 낼 수 없는 물을 담아두고 사용하는 비교적 대형인 최고급 용기로서 궁궐이나 관청, 대가 집, 그리고 절과 같은 곳에서만 사용하였다.

선암사의 석조도  대부분 사찰 내의 생활 용기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형태와 구조 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한 생활용기에 그친 것이 아니라 사찰생활문화의 예술성이 깊이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선암사에 이처럼 석조가 많은 이유는 종파적 성격과 관련 있다. 독특한 6당 살림이라는 승려들의 독립된 생활방식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대공양간 체제로 운영되는 다른 절과 달리 선암사는 각기 다른 구역별로 수련뿐만 아니라 공양(취사)을 포함해 모든 일상생활을 나누어 독립된 살림살이를 한 것이다.

따라서 각 당마다 급수시설(1940년경 이전까지는 홈 대 형식)이 필수였고, 대중의 공양과 생활용수 저장을 위한 용기가 필요하였으므로 처음에는 대부분 목조를 제작하여 사용하다가 점차 석조로 바꾸었다.

선암사에서 값비싼 석조를 그토록 많이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선암사의 유구한 역사와 융성했던 사세의 소산일 것이다. 이처럼 선암사의 삼다 중의 하나로 석조가 많음에도 3기를 제외한 모두가 건물의 내부에 있으므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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