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은 남도의 명산으로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는 불교문화의 중심이며, 순천사람의 주요한 삶의 터전이다. 
순천시 송광면 출신인 김배선 씨는 약 15년 동안 조계산과 그 주변 마을을 누비면서 주민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한 자료를 토대로,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이 책 주요 내용 중 일부를 김배선 씨의 동의를 받아 순천광장신문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연재한다. 편집국



一無 御間門(어간문이 없고),
二無 柱聯(주련이 없고),
三無 四天王門(사천왕문이 없다.)     

무 어간문(無 御間門)

▲ 선암사 대웅전 무 어간문

▲ 김배선 향토사학자
 ‘선암사 대웅전에는 어간문이 없다’
어간문을 사전에서는 방과 방 사이에 달린 문이라 풀이하는데, 절에서는 대웅전의 앞 가운데 칸을 어 칸이라 부른다. 이 문을 어간문이라 하고, 이 문 앞에 서면 부처님의 상호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어간문을 궁궐에 비유하면 왕만이 드나들 수 있는 가운데 큰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절의 대웅(보)전을 보면 5칸이나 3칸으로 문(창호)은 대부분 4분합이지만 규모가 작은 곳은 2분합인 경우도 있다. 선암사 대웅전은 3칸에 모두 4분합문으로 빗살문이며 교창은 달려있지 않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선암사의 대웅전에 어간문이 없는 것이 아니다. 가운데 문이 있어 필요에 따라 여닫고 있다. 선암사 대웅전에 어간문이 없다고 하는 것은 문의 실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선암사의 어간문(중앙 문)을 자세히 보면 하단에 자주색으로 단청된 창틀모양이 있다. 이것은 창틀이 아니라 사람들의 어간문 출입 금지를 알리기 위해 설치한 약 56cm 높이의 ‘머름’이다. 머름을 설치한 것은 사람들 스스로 부처님의 통행문인 어간문의 존엄을 지키자는 뜻이고, 선암사 대웅전 출입은 모든 사람이 좌우의 옆문으로 드나든다. 다른 절의 대웅전과 비교되는 선암사 대웅전의 ‘무 어간문’의 실체이다.

천오백년의 역사를 지닌 선암사 불법대전의 신성한 본존 앞에서 무 어간문이라는 겸양의 실천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의 어느 절에서도 만날 수 없는 여행길의 아름다운 현장이다. 

무 주련(無 柱聯)
▲ 만세루 주련
주련의 한자어는 주(柱)는 기둥이며, 연(聯)은 늘어뜨린다는 의미와 옛날 중국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시를 지을 때 한 사람이 한 구(구절)씩 지은 다음 이를 합하여 완성시킨 시의 형태를 말하기도 한다. 국어사전에서는 ‘기둥이나 벽에 써서 붙이는 글귀’라고 풀이한다.

우리나라의 정자나 사찰, 향교. 서원 등의 기둥에 좋은 글귀를 판자에 세로로 쓰거나 새겨 교훈적 의미로 매달아 두는 것이다.

그러나 선암사 대웅전에는 주련이 없다. 뿐만 아니라 모든 전당에도 주련을 달지 않는 것이 전통이다. 이는 깨달음과 관련이 있다. 

‘개구즉착(開口卽錯)’. 즉, 입을 여는 것은 곧 혼란이요, 뒤섞임이니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 말은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주련도 글로 표현한 말이므로 정신으로 이루려는 공과 무의 바탕을 눈을 통한 혼란으로 뒤섞는 다는 것이다.

▲ 만세루 주련
선암사(대웅전)에 주련이 없는 것은 깨달음을 구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스스로 인식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혼란의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깨달음의 본질인 ‘무(無)’를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다. 현재 선암사 건물 중에는 유일하게 대웅전 앞 강당 건물인 만세루에만 4개의 주련이 걸려 있다.  

만세루 주련은 병인년(1986년) 9월(주지. 신용곡 스님) 금강경의 글을 따서 만들었다. 그 뜻은 ‘외외당당 만법왕 (巍巍堂堂 萬法王)’ 높고도 당당하신 만법의 왕이시어, ‘삼십이상 백천광 (三十二相 百千光)’ 만하신 삼십이상 백천광명 비추시니, ‘막위자용 난득견 (莫謂慈容 難得見)’ 자비로운 그 모습 보기 어렵다 하지 말라, ‘불이기원 대도량 (不離祇園 大道場)’ 기원의 대 도량을 떠나지 않았었네.

만세루의 주련은 광주의 서예가 근원 구철우 선생의 글씨를 1987년 10월 순천의 심남섭 선생이 새겨 네 개의 주련을 제작하여 대웅전의 기둥에 걸었다. 하지만 2003년 대웅전을 해체 보수하고 나서 선암사의 전통을 이어야 한다는 스님들의 의견에 따라 만세루에 걸게 되었다.


무 사천왕문
선암사에는 사천왕문이 없다. 사천왕은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이며, 속세의 잡귀가 불세계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지킴이 이다. 절을 구성하는 많은 불당들 중 하나 혹은 몇몇의 당을 두거나 두지 않는 것이야 절 마다의 특징이거나 사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불문(부처님의 세계)을 지키는 호위병(신)은 좀 다르지 않을까 싶다. 특히 우리나라 불교의 제31 본산인 선암사에 사천왕(문)이 없는 것은 왠지 특별한 사연이 있을 것 같다.

선암사 아랫마을의 연세 지긋한 처사님에게 다음과 같은 전설을 들을 수 있었다.
“옛날 선암사를 지을 때 사천왕을 모시려고 건물을 짓는데 세우기만 하면 무너지고, 또 짓기만 하면 무너지고 말아 도저히 사천왕문을 세울 수가 없었다. 고민을 하던 중 스님(도목수)의 꿈에 도사가 나타나서 ‘선암사에는 사천왕을 세우지 말라’ 하므로 하는 수없이 사천왕문 세우기를 포기하고 그 때 만들어진 사천왕상을 송광사로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이웃 절과 관련지어 만들어 낸 이야기이다. 선암사에 사천왕문이 없는 것은 선암사 터가 갖는 조건이나 다른 공간과의 배치, 또는 종파적 특성의 결과로 보여진다. 구전되고 있는 송광사 사천왕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선암사 주지를 지낸 혜운 노장 스님의 말에 따르면 선암사에도 일주문과 종고루 사이에 사천왕문이 있었으나 화재로 소실된 후에 다시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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