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쟁이 빅터 아저씨』/ 박민희 글, 그림 / 책속물고기

▲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아들이 올해 고등학생이 되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던 초, 중학교와 달리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 학교에 진학하게 된 아이는 이른 등교 시간과 야간 자율학습으로 밤 11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빡빡한 생활에 몸도 마음도 지치는지 학기초부터 잦은 두통과 구토, 가슴 통증 등을 호소하며 조퇴도 여러 번 했다. 그때마다 아픈 아이의 조퇴 여부를 묻는 담임 선생님의 전화로 마음이 참 복잡했다. 아픈건 아인데 집에 가도 되는지 왜 나한테 묻지? 아침에 학교갈 땐 괜찮아 보였는데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나? 한국의 고딩이 다 그렇지뭐. 결국 감당해야 할 일인데 너무 나약한 건 아닐까? 병원 진료에 건강보조식품을 권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고기 반찬을 아침 밥상에 올려주기도 하고, 가끔이지만 자가용으로 등하교를 함께 하며 한 학기를 보냈다.

드디어 방학. 한 달 남짓한 여름 방학은 대부분 보충 수업과 자율 학습으로 채워지고 진짜 방학은 겨우 일주일뿐이지만, 야간 자율 학습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몸은 한결 가벼워보였고 얼굴도 밝아졌다. 그러나 느즈막하게 일어나 밥은 먹는 둥 마는 둥하고,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에 집중하는 아들 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은 또 복잡하다. 학교는 아이들을 감시와 규제로 종일 붙잡아두고, 집에 와서도 잠자는 시간을 빼고 나면 무엇인가를 한다는게 불가능한 한 학기를 보내고 난 아들 녀석이 이해는 간다. 짬나는 시간 제일 좋아하는걸 하는건 당연하다. 그렇지만 다른 것들을 둘러 볼 여유도 없이 아이의 관심이 오로지 게임뿐인 것 같아 속상하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같은 반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 계곡에도 다녀왔다는데 전혀 관심이 없다.

 
빅터 아저씨의 관심사는 오로지 청소. 쓸고 닦으며 먼지 하나, 실오라기 하나라도 봐 넘기지 못한다. 지저분한걸 싫어해서 뭐든지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으면 화가 난다. 옷장에는 옷이며 넥타이 모자 신발들이 질서정연하다. 날마다 하얀 옷만 입는 깔끔쟁이 빅터 아저씨는 양말까지 빳빳하게 다린다. 조금 과하다 싶긴 하지만 잘 다려진 속옷과 양말을 입는다 생각하니 기분 좋을 것 같고 이해도 된다. 그런데 하얀 옷을 좋아하고 깨끗하고 깔끔한걸 좋아하는 빅터 아저씨가 좋아하는 걸 하고 있는데도 이마에 주름을 만들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이 행복해 보이진 않는다.

아저씨는 친구도 없고 청소 말고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다. 넓고 긴 식탁에 혼자 앉아 밥을 먹는 빅터 아저씨. 커다란 창문에 보이는 것처럼 비가 오고 별이 뜨는 날에도, 화창한 낮과 해지는 저녁에도 가시돋친 선인장 화분처럼 아저씨는 혼자다. ‘하지만 아저씨는 상관없었어. 혼자가 편하고 좋다고 생각했거든.’ 이렇게 사는게 나쁠건 같지는 않지만 외로움을 견딜 자신이 나는 없다.

어느날, 빅터 아저씨는 세탁소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어딘지 조금씩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을 피해 옷을 더럽히지 않고 겨우 사람들 틈에서 빠져나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맙소사! 커다란 토마토가 아저씨를 향해 날아온다. 아저씨는 너무 놀라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허둥지둥 토마토를 던진 남자를 쫒았지만 헛수고였고, 아저씨 앞에 펼쳐진 광경은 토마토를 던지며 즐기고 있는 사람들. 오늘이 바로 토마토 축제날이다. 사람들을 피해 보지만 사람들은 아저씨가 숨은 곳까지 몰려온다. 어느새 새빨갛게 토마토 범벅이 된 아저씨는 너무너무 화가 나서 토마토를 하나 집어서 아무에게 나 던진다. 순간 퍽!하고 누군가 제대로 맞았다.

“어라?” 던지고, 던지고, 던지며 사람들이 토마토에 맞아서 빨갛게 물들면 기분이 좋아지고 절로 웃음이 났다. 지금껏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다. 사람들이 아저씨에게 말을 걸고, 이제 주위 사람들과 어울려 신나게 놀다보니 어느새 축제는 마무리되어 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토마토 범벅이 되었지만,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아저씨는 행복하다.

빅터 아저씨가 변했다. 그림책 앞 면지에 그려진 빅터 아저씨는 날카로운 표정의 쉴틈없이 먼지를 찾아내고 빗질을 하는 모습이다. 반면 마지막 면지에는 색깔 옷을 입고 책도 읽고, 강아지랑 오리랑 함께 놀기도 하고, 꽃향기를 맡기도 하고 편한 자세로 누워 빵을 먹는 빅터 아저씨가 나온다.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 어느 한 순간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지 않을테니 깔끔쟁이 빅터 아저씨는 여전히 하얀옷을 좋아하고 깔끔하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지만 더 이상 나만의 것을 고집하며 ‘이렇게 더러운 걸 어떻게 참는 거지?’ ‘저 사람들은 모두 제 정신이 아니야.’라며 외면해버리고 혼자 외롭게 살지는 않을 것 같다. 서로 다름이 주는 ‘상보(相補)’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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